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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미스터트롯'과 찰리 채플린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2020-03-26 12:00 송고 | 2020-03-26 19:11 최종수정
찰리 채플린의 1921년 작품 '키즈'
동네 마트, 치과 병원, 둘레길 쉼터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가만히 노래 멜로디에 귀 기울인다. 익숙한 트로트다. '미스터트롯'의 가수 임영웅, 영탁, 이찬원, 정동원 등이 부르는 노래다.

'미스터트롯'은 진 임영웅, 선 영탁, 미 이찬원으로 3개월에 걸친 대단원의 막을 내렸지만, 그 후폭풍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일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미스트롯'의 재미를 맛본 뒤 '미스터트롯'을 손꼽아 기다렸고, 첫 회부터 빼놓지 않고 시청했다.

준결승은 경연자들이 남진 주현미 설운도 세 사람의 곡을 선택해 부르는 '레전드 미션'으로 치러졌다. 그때 설운도는 경연자들이 자신이 부른 노래를 부를 때마다 이런 촌평을 했다. "내 노래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내가 더 배우게 된다."
 
실력이 있어도 뜨지 못하는 이유
 
'미스트롯' 때도 그랬지만 '미스터트롯'을 시청하면서도 또 한 번 확인했다. 이른바 무림의 고수(高手)들이 진짜 많다는 사실을. 이미 정상급 실력을 갖췄으면서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해서, 적당한 무대에 설 기회가 없어서, 뛰어난 스승을 만나지 못해서 무명 가수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가수들이 의외로 많았다.

'레전드 미션' 때 선곡을 잘못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경연자들이 여럿 있다. 평범한 시청자 입장에서도 왜 저런 곡을 골랐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이찬원의 경우는 자신의 능력치를 최대한 보여줄 수 있는 선곡을 하곤 했다. 젊은 날 가수의 꿈을 꿨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맞춤형 선곡을 해준 결과다. 경연자들은 작곡가 조영수와 가수 장윤정을 비롯한 마스터들의 촌철(寸鐵) 지적을 받으며 회를 거듭할수록 쑥쑥 성장했다.

진으로 뽑힌 임영웅이 TV에서 말했다. "이 프로그램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어머니와 차를 타고 가다가) "제 인생에 이런 일이 있을 줄 정말 꿈에도 상상 못 했습니다. 미스터트롯 시청자들에 감사합니다."(축하무대)  

대학생인 이찬원은 이런 말도 했다. "결승까지 올라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고, 마스터들에게 제대로 된 평가를 한번 받아보는 게 소원이었다."

그렇다. 지상파에서는 오래전에 아이돌 가수들에 밀려 트로트 가수들이 설 자리가 없었다. 김동건의 '가요무대'와 송해의 '전국노래자랑'이 근근이 명맥을 유지했다.

'미스터트롯'이 없었으면 임영웅은 여전히 일요일 낮에 방영하는 '전국노래자랑'의 초청 가수에 머물렀을 것이고, 한강공원에서 열 명도 안되는 청중들 앞에서 쓸쓸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을 것이다. '막걸리 한 잔'으로 스타가 된 영탁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받쳐주어야 한다. 하나는 재능이다. 사람은 얼굴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저마다 다른 재능을 타고난다. 어떤 사람은 그 재능이 일찍 터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재능이 진흙에 묻어 잘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노력이다. 꾸준한 노력이 재능과 결합할 때 비로소 실력이 된다.

그럼 실력만 갖추면 누구나 다 성공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 실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재능과 노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생겨야 한다.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주는 무대가 있어야만 실력이 빛이 난다.
  
찰리 채플린에게 기회를 준 사람들
 
20세기 통틀어 최고의 배우 한 사람을 꼽으면 누구일까? 찰리 채플린(1889~1977)이다. 파리에서 에펠탑이 태어난 해, 런던에서 찰리 채플린 세상에 나왔다. 채플린이 주연하고 제작한 무성영화들은 지금 봐도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찰리 채플린이 정상에 이르는 과정을 되짚어 보면 한 사람의 성공에는 여러 단계에서 결정적인 은인이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나라나 삼류 연예인은 먹고살기 힘들다. 찰리 채플린의 부모는 삼류 연예인이었다. 어머니는 뮤직홀의 배우였고, 아버지는 가수였다. 공연 포스터 맨 밑에 이름이 들어갔지만 거기까지였다.

찰리의 아버지 찰스가 단골로 다니던 술집. 찰스가 앉던 자리에 액자를 붙여놓았다. 조성관 작가
채플린이 아역배우 시절 살던 집에 붙어있는 플라크. 조성관 작가
사글세를 전전하던 중에 찰리 채플린을 낳다 보니 출생신고도 안했고 생가도 불분명하다. 세계적 명사 중에 생가 확인이 안 되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 찰리 채플린이다. 두 사람은 이혼한다.

어머니가 두 아들을 맡았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에게 정신질환이 나타났다. 어머니가 병원에 수용되면서 여섯 살 찰리와 아홉 살 시드니는 보육원에 보내진다. 어머니가 건강을 되찾자 채플린은 집으로 온다. 어머니가 다시 발작을 일으키자 이번에는 아버지에게 보내진다. 아버지 찰스는 아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아들이 남을 흉내 내는 데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배우가 되면 길이 열릴 수도 있겠다고 판단한다. 비록 자신은 가수로 빛을 보진 못했지만 아버지는 배우에 필요한 재능이 뭔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아들을 아역 극단에 들어가게 한다. 찰리는 2년간 아역 배우를 한다. 정신이 돌아온 어머니는 찰리를 극단에서 나오게 했고 찰리는 이발사 조수, 심부름꾼 등 갖가지 허드렛 일을 한다. 자칫 배우의 길에서 멀어질 뻔한 순간, 이번에는 형 시드니가 동생에게 용기를 준다. "너는 계속 배우를 해야 한다."

찰리는 런던의 블랙모어극단을 찾아간다. 극단은 마침 순회공연작인 '셜록 홈스'의 급사 빌리 역을 찾고 있었고, 그는 빌리 역으로 캐스팅된다. 순회공연에서 찰리는 주목을 받고, 마침내 연극의 본고장인 웨스트엔드의 무대에 서게 된다. 그의 나이 열여섯이었다.

웨스트엔드에서 배우의 기본기를 다진 찰리에게 또 다른 도약의 기회를 준 것은 이번에도 형 시드니였다. 형은 그를 무성희극단인 카노극단에 추천했다. 찰리는 2년만에 카노극단의 주연배우가 된다. 스물한 살에 웨스트엔드의 톱 배우 반열에 올라섰다. 연극배우로 꽃길이 펼쳐졌다.  

1910년 찰리는 카노극단의 주연배우로 미국 순회공연을 떠난다. 1912년 두 번째 미국 순회공연을 떠난다. 1913년 필라델피아 공연 때였다. 키스톤 영화사 사장 맥 세넷이 그를 발견했다. '물건이 될 것 같다.' 맥 세넷이 계약을 제안하면서 찰리는 무성영화라는 새로운 무대에 올라섰다.

1914년, 두 번째 영화 촬영을 앞두고 찰리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캐릭터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찰리는 영화사 의상 창고에 들어갔다. 몇 시간 뒤에 그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던 캐릭터가 되어 나왔다. '떠돌이'였다.

맥 세넷이 찰리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우리는 '떠돌이'를 과연 만날 수 있었을까. 런던 웨스트앤드 출신의 배우가 할리우드에서 무성영화라는 무대에 올라서자 펄펄 날았다. 할리우드에는 그처럼 아역배우부터 기초를 다져온 희극배우가 없었고, 그처럼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삶의 비애를 많이 겪은 희극배우도 없었다. '키즈'는 찰리의 어린 시절을 투영한 무성영화다.  

레스터 공원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셰익스피어와 채플린(왼쪽), 찰리 채플린 동상. 조성관 작가


희극은 비극 위에 꽃피는 예술이다. 런던 웨스트엔드의 레스터공원에 가면 런던이 아니면 불가능한 동상 두 개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비극의 황제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희극의 황제 찰리 채플린의 동상이다.    

무명의 설움을 곱씹던 가수들이 '미스터트롯'이라는 새로운 무대가 주어지자 마치 새장에 갇혔던 새들처럼 지금 훨훨 날아다닌다. 팬들은 저렇게 노래를 잘하는 가수들이 왜 지금까지 그늘에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열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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