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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한국은행의 '라스트리조트' 역할을 許하라

(서울=뉴스1) 민정혜 기자 | 2020-03-26 06:40 송고 | 2020-03-26 09:49 최종수정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2020.3.20/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2020.3.20/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경제가 당장 파탄날 위기에 놓였다고 치자. 정부가 쏟아낸 경기 부양책만으론 역부족이다. 우리 경제가 최후의 순간 의지할 수 있는 라스트리조트(Last Resort)는 어디인가. 다름 아닌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어야 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미국 경제가 흔들릴 조짐을 보이자마자 지난 15일 시장의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제로금리'를 결정했다. 23일엔 무제한 양적완화도 선언했다. 기업어음매입기구(CPFF)를 통한 1조달러 규모의 기업어음(CP) 매입 계획을 발표했고,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꺼내지 않았던 회사채 매입 카드까지 서둘러 포함했다.
연준의 행보를 지켜보던 경제주체들의 시선은 한은으로 쏠렸다. 돈을 찍어내는 한은이 기업의 신용경색을 막기 위해 연준처럼 회사채와 CP를 매입해 마지막 버팀목이 돼 달라고 요구했다. 2008년 당시 꺼내 들었던 카드로는 실물부문에서 시작된 코로나발19 위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불안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한은도 시장의 기대를 모르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부응하지 못했다. 최근 한은은 회사채와 CP를 직접 매입하는 방안이 한은법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대신 한은은 금융기관에 유동성을 지원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전시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시중은행 뒤에 숨은 꼴"이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너무 소극적이고 안일하다"는 뼈아픈 평가도 잇따랐다.

한은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발권력을 행사하는 중앙은행은 정책수행 과정에서 국민의 부담이 되는 손실 위험을 떠안아서는 안 된다는 기본 원칙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는 연준 등 대부분의 중앙은행이 준용하고 있는 원칙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두 중앙은행의 행보를 갈랐을까. 연준은 비상시 정부와 의회의 동의를 얻어 CPFF 등 중간 기구를 만들어 CP 등을 매입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 연준이 손실 위험을 지는 게 아니라 정부가 손실을 보증해 준다. 결국 한은법 개정 등 제도적 환경 개선이 선행돼야 한은이 연준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셈이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상황에서 경제주체들이 생각하는 한은의 역할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한은의 가장 강력한 통화정책 수단인 기준금리는 연 0.75%로 실효하한에 닿아있다. 실효하한은 기준금리를 더 낮추면 효과보다 오히려 더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단계다. 한은이 새로운 전통적·비전통적 통화 및 신용 정책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은이 스스로 역할을 재정립하고 한은법 개정을 위해 정부와 의회 설득에 나서야 한다.

2008년 대규모 양적완화로 전통 이론의 종말을 선언했던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경제위기와 그 여파에 대한 회고록에서 "이 나라의 경제적 안녕이 강력하고 창의적인 대응을 요구했을 때 연준 정책 입안자와 직원들은 종종 신랄한 비판과 비난에 직면했지만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도덕적인 용기가 필요했다"고 밝혔다. 회고록 제목은 '행동하는 용기'다.


mj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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