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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말금 "6년 직장생활·서른에 배우 도전…'찬실이' 공감돼요"(인터뷰)

[N인터뷰]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 역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2020-03-01 05:50 송고 | 2020-03-02 15:34 최종수정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주연배우 강말금이 26일 뉴스1과 가진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2.26/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주연배우 강말금이 26일 뉴스1과 가진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2.26/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나이 든 캔디 아닙니까?"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감독 김초희)에서 찬실이 역을 맡은 배우 강말금(41)이 영화 속 자신의 캐릭터 찬실이를 유쾌하게 설명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감독 김초희)는 감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백수 신세가 된 영화 프로듀서 찬실이가 인생 최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씩씩하게 맞서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한국영화감독조합상, CGV아트하우스상, KBS독립영화상),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영화 속 찬실이는 무척 씩씩한 캐릭터다. 10년간 함께 했던 감독이 세상을 떠나고, 모아둔 돈도, 연인도, 직장도 없이 하루아침에 빈털털이 백수가 됐지만 나름대로 위기를 타계하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렇게 사랑했던 영화 없이 살 수 있을까', 근본적인 고민을 하는 동안 절친한 여배우의 집에서 가사도우미 아르바이트를 하고, 젊은 감독에게 반해 그와의 로맨스를 꿈꾸기도 한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주연배우 강말금이 26일 뉴스1과 가진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2.26/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주연배우 강말금이 26일 뉴스1과 가진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2.26/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찬실이와 저 그리고 감독님까지 세명의 공통점이 있어요. 그런 공통점을 가진 여성들이 많을 거예요. 40세가 됐고 열심히 일 했는데 생각보다 커리어가 부족하고, 돈을 아무리 벌어도 좋은 집을 구할 수 없어서 산동네에 살고, 결혼을 못 했는데 이제 하려고 보니까 너무 늦고. 그러면 이번 생에 후손은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되죠. 체력은 떨어지고요. 영화에서는 가족들 얘기까지 구구절절 안 나오지만, 그런 상황들은 동일하죠."

이제 배우 생활 14년차에 접어든 강말금은 아직 대중에게는 낯선 얼굴이다. 김초희 감독은 그런 그를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윤여정과 윤승아, 김영민과 배유람 등 유명 배우들이 캐스팅 된 영화의 '타이틀롤'이다. 강말금은 "연극을 시작할 때 나를 본 사람들은 지금 내가 인터뷰를 하고 이러는 것에 너무 놀랄 것 같다"며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저는 연극배우가 되고 나서도 입을 못 떼서 오랫동안 무대에 못 섰던 사람이에요. 저 같은 사람이 영화에서 어떤 인생을 대변하는 역을 할 수 있는 것은 온전히 김초희 감독님, 김도영 감독님 같은 새로운 여성 감독님들의 등장 덕이에요. 그분들은 새로운 바람이에요. 너무 좋아요. 운이 좋게 그런 분들을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82년생 김지영'을 연출한 김도영 감독의 단편 영화 '자유연기'에서 강말금은 육아에 지쳐있는 배우 역할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자유연기' 속 강말금을 유심히 본 김초희 감독은 자신의 첫 장편영화 주인공으로 그를 택했다.

"메일이 하나 왔고, 시나리오가 첨부돼 있었어요. 메일의 내용은 정동진에서 '자유연기'라는 단편을 보고 나서 일주일간 당신이 계속 생각이 났다. 그래서 연락을 드렸다, 하는 거였어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제작 상황을 짧고 정확하게 얘기해주셨고 언제부터 제작에 들어가고 예산은 얼마라고 말해주셨어요. 시나리오 읽으시고 생각 있으시면 연락 달라고요. 이렇게 내용이 정확하면 배우는 좋아요. 그냥 '만나볼래?' 하면 애매하잖아요. 주신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너무 좋았고, 지원금으로 제작했는데 여러군데서 1등상을 받은 시나리오였어요.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할 수 있든 없든 간에 무조건 해야한다고 생각했죠."
배우 강말금이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언론시사회에 참석해 환하게 웃고 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인생 최대의 위기, 극복은 셀프! 행복은 덤! 씩씩하고 '복' 많은 찬실이의 현생 극복기를 담은 작품이다. 2020.2.17/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배우 강말금이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언론시사회에 참석해 환하게 웃고 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인생 최대의 위기, 극복은 셀프! 행복은 덤! 씩씩하고 '복' 많은 찬실이의 현생 극복기를 담은 작품이다. 2020.2.17/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다음날 김초희 감독과 강말금은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고, 영화를 찍기로 했다. 우연히 두 사람 모두 부산 출신이라 통하는 것이 더 많았다. 김초희 감독은 강말금을 만난 후 찬실이가 지방 출신이라는 설정을 더했고, 강말금으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사투리를 쓰도록 했다. 시투리를 넣으니 찬실이의 캐릭터가 더욱 사실적이고 생생해졌다.

"사투리를 쓰는 게 친근한 느낌이 있죠. 또 부산 사투리는 억양만 있는 게 아니라 부산 사람들의 성격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해요. 부산 사람들에게는 특유의 외강내유가 있거든요. 감정을 못 숨기고, 모두가 그런 건 아닌데 깍쟁이가 못 되는 성격이 있어요. 찬실이는 딱 그래요. 숨기지 못해서 상황이 어색해지고 하는 성격인 게 사투리와 맞는 것 같아서 하고나니 좋았어요.(웃음)"

속에 있는 것들을 숨기지 못하는 찬실의 캐릭터는 유쾌하고 사랑스럽다. 강말금의 '리얼'한 사투리와 생활연기는 영화 속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들이 주인공 찬실을 응원하게 만든다.

"찬실이의 후회와 설렘이 공감됐어요. 찬실이의 후회는 '내가 왜 일만 하고 살았을꼬' 하는 거잖아요. 저는 저의 30대 후반에 후회를 했어요. 그 후회는 일에 대한 건 아니었어요. 37세 38세쯤 됐을 때 청춘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았고, 조금 있으면 폐경이 오고 그렇게 되면 내게 후손이 없게 되는 거란 사실을 절절하게 깨달았어요. 지금 후손을 만들고 싶어도 아무 준비가 안 돼 있는데, 거기서부터 후회가 됐어요. 사람이 성년이 되고 노년이 돼서 죽는 걸 이론적으로는 알았지만 이럴 줄은 몰랐죠. 우리는 피고 지는 꽃 같은, 70년살이 풀 같은 존재라는 걸 절절히 느꼈어요."

14년 전 연극배우로 데뷔한 강말금은 늦깎이 배우였다. 대학 졸업 후 6년간 무역회사에 다녔던 그는 서른 살 6월에 회사를 그만두고 극단에 들어갔다. 오랫동안 유예했던 꿈을 되찾기로 결심한 시간이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 컷 © 뉴스1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 컷 © 뉴스1
"오래 망설였어요. 대학 때부터 연기를 하고 싶었으니까요. 저는 국문과를 나왔지만 국문과보다 극회를 더 자주 들락거렸어요. 극회에서 공연을 하다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바로 시작하지 못했어요. 여러 집안 사정이 있었거든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 딱 3년만 하자고 했는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6개월 안에 얼마짜리 적금을 들고, 얼마는 엄마를 드리고, 하는 틀이 생기고 나니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못 그만두고 계속 하게 됐어요."

그렇게 마음 속에 못이룬 꿈을 품고 살다보니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고 있는 일에 마음을 두지 못했고, 커리어를 발전시키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강말금은 그때를 돌아보며 "낮에는 업무를 하며 허망한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보냈다. 내가 게으름뱅이가 됐다"고 했다.

"그렇게 살다보니 20대 후반에는 도저히 회사를 다닐 수 없는 정신상태가 됐어요. 부산에서 다니다가 상사에게 '제가 상태가 안 좋습니다'라고 말했어요. 아마 진단을 받으면 우울증 같은 게 아니었을까 추측해요. 상사가 '회사를 그만두라'고 말하지 않고 서울에 자리가 있으니 가보라고 해서 서울로 와서 독립을 했고, 어머니와 떨어져 살다보니 감시의 눈초리가 없어서 저지를 수 있었어요. 저의 20대는 좋은 사람이나 새로운 일을 만나지 못해 거의 정체 상태였어요."

서울에 올라와 배우를 하고 나서부터 우울증은 바로 사라졌다. 좋아하는 일을 시작했지만 쉬운 길을 간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쓴 사투리를 고쳐야 했고, 대학시절 했던 극회와 다른 방식에 적응해야 했으며, 위축돼 있는 자신의 모습을 하나씩 바꿔 나가야 했다.

"배우를 하면서 초반 몇년간 만난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가져요. 극단에서도 서른이나 된 사람을, 말도 느리고 발성도 좋지 않고. 대학 때는 발성 큰 사람이었지만 20대를 거치면서 사람이 쪼그라들어 있었어요. 그렇게 자신감이 없는 사람을 (극단이)받아주셨어요. 그래서 상당히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죠. 저는 모방을 잘하지 못하는 관념적인 인간이에요. 서울말이 잘 안 되고 쑥스러워서 항상 대답이 늦어졌고 밤엔 속상해서 술 먹고 이렇게 시작했죠. 그래서 인터뷰를 읽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또 제가 화도 잘 못 내는 성격이에요. 감정 표현에 제약이 있어 일부러 화를 막 내고 다니고 싸움하고 그런 짓도 했어요."

그렇게 5년간 고군분투한 끝에 연극으로 돈을 벌어 먹고 살 수 있는 배우가 됐다. 강말금은 찬실이처럼 자신도 "인복 하나는 끝내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말금의 인생에는 그를 늘 후원하고 지지해주는 이들이 있었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주연배우 강말금이 26일 뉴스1과 가진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2.26/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주연배우 강말금이 26일 뉴스1과 가진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2.26/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주연배우 강말금이 26일 뉴스1과 가진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2.26/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주연배우 강말금이 26일 뉴스1과 가진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2.26/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이런 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인복이 있어요. 초희 감독님만 해도 인복이에요. 초희 감독님 덕에 윤여정 선생님과 연기했죠. 그 뿐 아니라 제가 오래 꽃을 피우지 못하고 고군분투 하고 있을 때 도와준 사람이 정말 많아요. 너무 잘하는 배우로 활동하는 분들과 연기도 많이 했네요. 제가 학교를 나왔나요, 무엇이 있나요, 아무 것도 없는 저를 아껴주는 상대 동료 배우들에게 고마워요. 특히 저는 한예종 출신 연출가, 배우들과 많이 연기했는데 그분들이 얼마나 큰 경쟁률을 뚫고 그 학교에 들어갔나요?"

'말금'이라는 독특한 예명도 실은 그 인복 덕에 얻었다. '말금'은 사실 대학시절 국문과 친구의 닉네임이다. 

"대학 때 시를 쓰던 국문과다 보니 친구가 닉네임으로 쓰다 버린 것을 사겠다고 해서 받은 거예요. 그런데 그 친구가 제가 연극하는 4년간 용돈을 줬어요. 그 액수가 컸기 때문에 제가 안정적으로 돈을 벌고 나서는 끝났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용돈을 주는 국문과 언니가 있어요. 문학평론하는 분인데, 후원의 개념으로 주세요. 함께 공부하던 책에서 '파트롱'(예술의 보호자, 후원자)이라는 단어를 배웠는데, 그 때 다들 미래를 얘기하면서 '내가 돈 벌면 너에게 주겠다' 얘기를 했었는데, 그때를 잊지않고 저에게 후원을 해주셨어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주연배우 강말금이 26일 뉴스1과 가진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2.26/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주연배우 강말금이 26일 뉴스1과 가진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2.26/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주연배우 강말금이 26일 뉴스1과 가진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2.26/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주연배우 강말금이 26일 뉴스1과 가진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2.26/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강말금은 "촬영장에 많이 가는 것"이 배우로서 당장의 바람이라고 했다. 연극에 이어 영화 배우로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고, 더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해 촬영장과 친해지고 싶단다. 

"저는 스스로 잘하는 배우가 아니고 좋은 면이 있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할 게 많은 것 같아요.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촬영장에 많이 가고 싶어요. 연기의 본질만 생각하고 관객으로서 감동 받은 좋았던 것만 생각하고 연기를 하러 가지만 막상 촬영장에 가면 여러 상황이 있어요. 그 속에서 어떻게 자연스럽고 진실한 연기를 찾을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어요. 성공과 실패의 통계가 나와야할 것 같아요. 그래서 현장에 많이 가고 싶습니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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