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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줍는 어르신' 사라진다…中이 불러온 '폐지대란' 내막

中에 팔던 50만t 막히니…민간 수거체계 흔들
종이류 '공공관리' 언급한 정부…재발방지 될까

(세종=뉴스1) 김혜지 기자 | 2020-02-18 06:10 송고 | 2020-02-18 09:40 최종수정
(자료사진) 2018.2.1/뉴스1

최근 서울 강남 일대 아파트를 중심으로 폐지 수거 거부 움직임이 일면서 '폐지 대란' 우려가 고개를 들었다. 이는 오랜 기간 유지된 '민간중심' 폐지 재활용 체계가 '공공관리'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란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18일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달 수도권 아파트 65개 단지에 예고된 폐지 수거거부 움직임은 일단락됐다. 폐지 수거운반 업체 23곳이 모두 수거거부 의사를 철회했다.

앞서 환경부는 민간 수거업체가 조속히 수거거부 예고를 철회하지 않으면, 지자체 중심의 공공수거체계로 전환하겠다고 경고했다.

예고 철회까지는 공식적으로 만 하루가 주어졌다. 수거업체들은 철회 의사를 각 지자체에 통보해야 아파트와 맺은 수거 계약을 삽시간에 잃지 않게 됐다. 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공문을 보내 주민들이 내놓은 폐지를 수거해 가겠다고 밝혔다.

◇여전한 폐지대란 불씨

사태는 지난 2018년 1월1일, 중국 정부가 환경 규제 강화를 위해 품질이 조악한 혼합폐지 수입을 금지하면서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중국에 매년 적게는 30만톤, 많게는 50만~60만톤의 폐지를 수출하고 있었다. 당장에 50만톤 정도의 수요가 비게 된 상황.

중국에 폐지를 수출하던 다른 나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국제적인 폐지 초과공급 사태가 불거졌고, 폐지 가격은 급락했다.

해외에서 생산되는 고품질 폐지 가격이 더 급격한 속도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심지어 올 들어선 국산 폐지 가격이 ㎏당 130원 수준이라면, 품질이 우수한 수입 폐지 가격이 80원 정도에서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국내 제지업계는 수거업체가 폐지를 모아 압축상에 넘기면, 이를 각종 처리를 거쳐 제지회사에 판매하는 구조를 띠고 있다. 제지사들이 굳이 값비싼 국산 폐지를 쓸 필요가 없어지자, 중국이 거부한 규모 이상의 폐지가 수거상과 압축상 재고에 쌓이게 됐다.

수거업체들은 "폐지를 거둬봤자 손해만 본다"고 아우성을 쳤다. 류정용 강원대 제지학과 교수는 "흔히 ㎏당 20~30원씩 손해를 본다고들 한다"며 "액면 그대로를 믿을 순 없지만, 이전보다 수익성이 급격히 낮아졌다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폭발한 업계…"수거도 제조도 힘들다"

결국 서울 아파트 절반가량(120만가구)에서 재활용 폐기물을 수거하는 '공동주택 재활용가능자원 수집운반협회'가 나섰다. 이들은 지난 3일 "제지사의 재활용 종이 반입거부로 유통이 불가능하다"며 수거거부를 선언한 뒤, 10일부터 본격 실천에 옮겼다.

그러나 환경부 관계자들은 정부가 이번 사건 이전까지 아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업계 간에 자율협약을 맺도록 해, 수입 폐지보단 국내 폐지를 우선 매입하도록 독려했을 뿐 아니라, 지난 2018년 폐기물 대란 당시에는 재활용 품목 가격을 시세와 연동하도록 하는 지침을 제정해 수거 단가를 현실화하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단기 처방만으로는 부족했던 부분이 (이번 사건으로) 불거져 나온 것"이라고 인정했다.

또 환경부는 이번 사건 직후 해결책으로 폐지 수입 제한을 언급했으나, 이번에는 제지사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섰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국산 폐지의 가격이 아닌 품질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제지사 측에서는 국산 폐지가 재활용을 여러 번 거친 탓에, 섬유질이 한계점까지 짧아져 골판지 같은 단단한 제품을 만들지 못한다고 말한다. 국산 폐지를 쓰려면 반드시 천연펄프가 남아 있는 미국·일본산 폐골판지(AOCC·JOCC) 등을 섞어 강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그러한 부작용 방지를 위해) 수입물량 중 불필요한 폐지를 중점적으로 제한하는 방향으로 우선 실태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제지업체가 울며 겨자 먹기로 국산 폐지를 쓰는 상황이었으며, 이를 언제까지나 강요할 수는 없다고 봤다. 류 교수는 "이번 수거거부는 어쩌면 진작 일어났어야 했다. 업계 내부가 상당히 곪은 상태"라고 우려했다.

고물상에서 폐지 가격 정산 후 세어보는 어르신. 2018.4.5/뉴스1

◇해법은 '분급'과 '생산자 책임'

전문가들이 꼽는 가장 근본적 해결책은 '정확한 분급'과 '생산자 책임제도'다.

류 교수는 "가정 등 배출원에서부터 종이를 정확히 분류해 폐지의 품질을 높일 수 있다면 중국에 다시 수출 가능하므로 확실한 대책이 되는데, 이는 골판지는 골판지로, 흰 종이(인쇄용지)는 흰 종이로 배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조를 정착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에 급한 불을 뺄 순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사실 폐지 재활용 문제는 결자해지(結者解之)를 해야 한다"며 "흰 종이를 생산한 측에서 흰 종이를 재활용하고, 골판지를 만든 쪽에선 골판지를 재활용하게 하면 된다"고 비유했다. 기업이 재활용까지 염두에 두고 제품을 생산하며, 버려진 제품은 회수해 원재료로 활용하는 것. 이것이 생산자 재활용 책임 제도(EPR)다.

류 교수는 "그렇게 하면 골판지에 흰 종이가 섞여 품질이 떨어지는 현상을 막고, 자원 낭비를 현격히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이러한 체계가 일찍이 다져지지 못한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유독 폐지만 민간중심 재활용 체계를 오랜 기간 유지해 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어르신들이 폐지 수입으로 근근이 생활하는 걸 뻔히 알는데, 공공이 개입해 재활용 체계를 손댈 수 없는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폐지 단가 하락으로 리어카 끄는 어르신이 활동하기도 어렵게 됐다. 공공이 나설 차례가 됐다는 신호다.

환경부도 이에 공감한다. 김효정 환경부 자원재활용과장은 "배출자의 선별 의무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부 아파트에서 공짜라는 이유로 종량제 봉투에 버릴 쓰레기를 박스 안에 넣는 행위 등을 개선해야 한다"며 "지자체와 홍보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또 "유리병을 비롯해 다른 재활용 품목에 도입한 EPR을 종이류에 조기 도입할 계획"이라며 "그간 폐지가 유가성을 띠어 재활용이 자율로 됐기에 정책 개입이 거의 없었지만, 작년부턴 상황이 달라졌다. 공공관리의 계기로 삼겠다"고 덧붙였다.


icef0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