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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아빠 후광, 베이징대 졸업장"…다 버리고 딤섬 요리사 왜?

[제2의인생]⑪박성열 골드피쉬 대표 "中 떠돌며 딤섬 맛 배워"
"맛 안 나오면 가게 문 닫고 연구…'장인 정신'이 인기 비결"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2020-02-17 08:30 송고 | 2020-02-17 09:24 최종수정
편집자주 청년실업 100만시대에 잘나가는 대기업이나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우는 30·40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억대' 연봉조차 마다하고 사표를 쓰는 이들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그런가하면 거친 가사를 읊조리던 래퍼가 '과거'를 정리하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그에게 아쉬움은 전혀 남지 않았을까? <뉴스1>은 다양한 '이력'을 갖고 '제2의 인생'을 도모하는 이들을 만나 시대의 풍경을 그려봤다.
박성열 골드피쉬딤섬퀴진 대표 겸 총괄셰프가 12일 서울 압구정 1호점 주방에서 뉴스1과 인터뷰 후 촬영을 하고 있다.2020.2.12/뉴스1© 뉴스1 최동현 기자

'소문난 집은 악천후에 가보라'는 말이 있다. 궂은 날씨에도 찾는 발길이 많아야 진짜 맛집이라는 소리다.

지난 12일 찾은 서울 압구정 '골드피쉬딤섬퀴진'이 그랬다. 후드둑 떨어지는 비에 전염병 '코로나19'까지 겹쳤으니 보통 궂은날이 아니었지만, 골드피쉬 현관에는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무섭게 '만석' 공지가 붙었다.

몰려든 손님 틈에서 딤섬(点心)을 맛봤다. 마감 시간이 지나서야 명함을 건넸다. 박성열 대표(39)는 "소룡포와 쇼마이 맛이 어땠냐"며 빙긋 웃었다.

명문대 졸업장과 번듯한 직장, 든든한 배경까지 버리고 혈혈단신 중국으로 건너가 바닥부터 시작한 남자. 박 대표의 이력은 독특하다. 

◇匠人정신으로 빚은 딤섬…"맛없으면 가게 문 닫고 연구"

"담백하죠? 딤섬 하나 만드려면 속 재료 준비하는 데만 사흘이 걸려요"

박 대표는 '유명 셰프'라는 말에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는 2012년 첫 가게를 내자마자 기다란 대기줄이 생길 만큼 실력파다. 독보적인 딤섬 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언론 인터뷰 요청도 숱하게 받았다.

골드피쉬의 딤섬은 중국 광둥의 정통 조리법을 따르지만 특유의 느끼함 없이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자랑한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대나무 찜기 뚜껑을 열자 '소룡포'가 육수를 가득 머금은 물방울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젓가락으로 얇은 피(皮)를 콕 찌르자 맑고 담백한 육수가 터졌다.

소룡포는 콜라겐이 듬뿍 들어갔기 때문에 그냥 먹어도 쫀득하지만, '생강채 간장'에 찍어 먹으면 상큼하고 짭조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생강채를 넣어 만든 간장은 딤섬의 느끼함을 잡기 위해 박 대표가 개발한 소스다.

탱탱한 살이 터질 듯한 '쇼마이'도 별미다. 소룡포가 촉촉한 맛이라면 쇼마이는 새우와 돼지고기로 교자피를 꽉 채워 쫀쫀한 맛을 자랑한다.

골드피쉬의 남다른 딤섬 맛은 박 대표의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에서 나왔다. 간판 메뉴 중 하나인 '새우 딤섬' 맛이 마음에 들지 않자 2주 동안 가게 문을 닫고 새우 딤섬만 연구했을 정도다. 개업 8년이 지난 지금도 매달 전 직원이 모여 요리를 맛보며 품평회를 하고 있다.

꾸준한 조리법 연구와 집착에 가까운 품질 관리도 자랑거리다. 박 대표는 "딤섬의 느끼한 맛을 줄이기 위해 핵심 재료인 '돼지기름'을 완전히 빼고 수율(水率)을 조절해 담백한 딤섬을 구현했다"며 "한 점의 딤섬을 내놓기 위해 사흘 동안 '소'를 만들고 있다"고 귀띔했다.

서울 압구정 골드피쉬딤섬퀴진 '소룡포'(왼쪽)와 '쇼마이'.2020.2.12/뉴스1© 뉴스1 최동현 기자

◇'금수저' 버리고 中으로 간 반항아…요리사 '꿈' 이뤘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틈날 때마다 딤섬 맛집을 찾아다녔습니다. 광저우, 심천, 홍콩을 돌면서 유명하다는 딤섬은 다 먹어봤죠"

깔끔하고 담백한 딤섬과 달리, 정작 박 대표 본인은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모두 맛보며 살았다.

그는 대기업인 CJ대한통운 박근태 대표이사(CEO)의 아들이다. 중국 최고의 대학인 베이징대를 나와 싱가포르 유명 물류회사에 입사한 엘리트다. 동시에 음식점 주방을 전전하면서 어깨 너머로 음식을 배운 '바닥 출신'이기도 하다.

박 대표가 금수저와 흙수저를 오가는 '두 가지 삶'을 산 이유는 순전히 '꿈' 때문이었다. 그는 "부모님의 뜻대로 일류대학을 나와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갔다. 하지만 요리사의 꿈을 버릴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첫 직장을 6개월 만에 뛰쳐나와 '요리사가 되겠다'고 선언하자 집안의 지원이 뚝 끊겼다. 역경의 시작이었다. 제주와 서울 음식점 주방에서 설거지부터 배웠다.

딤섬을 배우러 간 중국은 더 혹독했다. 취업 비자가 없어서 무보수로 1년 반을 일했다. 처음 들어간 호텔 주방에서는 텃세에 밀려 쫓겨나듯 나와야 했다. 박 대표는 "길거리 딤섬 집을 찾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요리를 얻어 배웠다"고 회상했다.

간절함이 통한 걸까. 중국에서 연을 맺은 요리사의 소개로 광저우에서 소문난 고급 레스토랑 '하이윈쉔'에 들어갔다. 전처리(식자재 손질)부터 반죽, 칼피(칼로 딤섬 피를 뜨는 기법)까지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요리학교'였다.

박 대표는 "하이윈쉔에서 요리를 배우면서 광저우, 심천, 홍콩에서 이름난 딤섬 집을 모두 찾아가 맛을 연구했다"며 "골드피쉬 딤섬에 다양한 중국 지역 특색이 담긴 이유"라고 웃었다.

◇"골드피쉬, 한·중 글로벌 외식 전문 브랜드가 목표"

"돈을 빌리러 갔더니 '사업기획서를 가져와라'고 하시더라고요. 사업 타당성을 검토받고 나서야 자본금을 빌릴 수 있었죠"

만 3년 만에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가 던진 말은 '사업기획서를 들고 와라'는 주문이었다.

박 대표는 "아버지 앞에서 사업계획과 예상 수익을 시뮬레이션으로 발표했다"며 "사업 타당성을 인정받고 나서야 3억원 빌려 자본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엄한 아버지였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든든한 우군이다. 박 대표는 "처음에는 못마땅해하셨지만 사업이 성장하면서 조금씩 인정해주셨다"며 "임대료가 올라 쫓겨났을 때 '계속 도전해 보라'고 격려하신 분도 아버지였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사업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박 대표는 새 브랜드 론칭을 준비하고 있다. 사업 영역을 넓혀 골드피쉬를 글로벌 외식 전문 브랜드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CJ푸드빌에서 마케팅 업무를 보던 사촌 동생도 가세했다.

박 대표는 "10년 내에 골드피쉬를 한국의 대표 중식 브랜드로 만들고, 중국으로 진출해 한식 사업을 펼치고 싶다"는 계획도 내놨다. 

"골드피쉬의 정신은 '진심을 다해서 만든 요리'입니다. 지금은 딤섬뿐이지만, 언젠가 중국 8대 요리를 한국에 선보이는 것이 저의 비전입니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