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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마지막"…세상에서 가장 슬프지만 따뜻한 성탄 파티

서울 적십자병원 호스피스 병동, 말기암 환자에 '뜻깊은 선물'
"그동안 따뜻한 한마디 못해 미안"…환자·가족 손잡고 눈시울

(서울=뉴스1) 서혜림 기자 | 2019-12-24 06:30 송고
서울적십자병원 호스피스 병동 '크리스마스 파티'(2019.12.23) © 뉴스1 서혜림 기자
서울적십자병원 호스피스 병동 '크리스마스 파티'(2019.12.23) © 뉴스1 서혜림 기자

크리스마스 이브를 하루 앞둔 월요일, 서울 종로구 소재 한 병원 꼭대기 층에서는 산타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쩌면 마지막 크리스마스일 수 있는 이들을 위해서다.

23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 11층 호스피스 완화병동에서는 환자들 10여 명과 의료진 10여 명, 봉사자 15여 명이 로비에 모여 크리스마스를 기리는 작은 파티를 열었다. 이곳은 더 이상 치료가 어렵고 회복 가능성이 없어 연명치료를 중단한 말기암 환자들이 있는 호스피스 병동이다.

밝은 조명 아래 샛노란 풍선들이 가득한 공간 안에서 봉사자들의 합창과 우쿨렐레 공연, 매직쇼 등이 이어졌다. 환자들은 빨간 산타모자와 루돌프 모자를 쓰고 공연을 흐뭇하게 때론 아쉬운 눈으로 쳐다봤다.

봉사자들이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라는 가사의 합창을 부르고 있을 때, 한 어르신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눈시울이 벌게진 환자들도 몇몇 보였다. 병상에 누운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할아버지는 "여보"를 되뇌었다.

남은 날들이 얼마 없을 때는 작은 기념일과 가족들의 관심이 제일 소중한 모양이다. 환자들은 큰 파티 홀에서 시끌벅적하게 회식을 하지 않아도 가족 한 명만이라도 옆에 있는 것으로 행복해 보였다. 합창도 크리스마스 마술쇼도 이들에게는 한없이 특별한 어쩌면 마지막 기념일이었다.

"둘이서 크리스마스를 수십 년 같이 보냈어. 오늘도. 이제 그이 보낼 때도 같이 있겠네. 내가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줘야 하는데 그게 안 돼서 마음에 맺혔어. 그래도 남편 끝까지 편안하게 계시다가 즐겁게 갈 수 있길 매일매일 기도해."

김모씨(73)는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병상에 누운 남편의 손을 꼭 잡고는 크리스마스 공연을 지켜봤다. 다정한 말을 수십 년간 해왔지만 그래도 보내려니 더 따뜻한 말을 못해줘 아쉽다며 빙긋 웃었다. 그는 매일같이 병원에 와서 남편을 간병하고 있다.

간호사와 자원봉사자들의 우쿨렐레와 노래 공연가 막마지에 달할 무렵 이를 보던 이상미씨(37, 가명)는 다시 병실로 몸을 옮겼다. 병실에 가보니 이씨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이씨는 "크리스마스는 더 밝은 날이 됐으면 좋겠다"며 "그래도 찾아와 주고 함께 위로해주는 사람이 있어 삶에 대한 의지가 생긴다"고 병상에 누워 쉬었다. 자궁경부암 말기인 이씨는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진통주사를 맞고 있다.

서울적십자병원은 지난 2017년부터 연명치료를 중단한 말기암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전문 병원을 열었다. 이곳에 있는 환자들은 말기암 등으로 대부분 6개월 남짓한 삶을 선고받고 마지막 연명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마지막 삶을 연명할 수 있게 진통주사를 놓거나 암을 제외한 다른 질병을 치료한다.

이진숙 적십자사 호스피스 병동 수간호사는 이날 "여기 계신 분들이 어느 정도 삶이 연명될지는 모르겠지만 성탄절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일부로라도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드리고 싶어서다"라고 말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는 올해로 3년째 열리고 있다.

현재 적십자사 호스피스 병동에는 3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말기암 환자가 입원해있다. 공공병원인 서울적십자병원은 공동간병실을 운영 중이며 형편이 어려운 말기 암 환자(급여환자)를 위해 후원금으로 간병비를 보조해주는 서비스도 지원하고 있다. 

서울적십자병원 호스피스 병동 '크리스마스 파티'(2019.12.23)© 뉴스1 서혜림 기자
서울적십자병원 호스피스 병동 '크리스마스 파티'(2019.12.23)© 뉴스1 서혜림 기자



suhhyerim77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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