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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스틸러] 박성연, '82년생 김지영' 김팀장님을 아시나요(인터뷰)

"대학로 연기의 신? 몸둘 바 모르겠어"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2019-12-13 07:00 송고 | 2019-12-13 08:10 최종수정
박성연 / 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바야흐로 '신스틸러'(Scene stealer)를 넘은 '심스틸러'(心 stealer) 시대다. '심스틸러'는 단순히 특정 장면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선보이는 것을 뛰어 넘어, 혼신을 다한 스크리 속 연기로써 관객들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때론 그 파급력이 주연에 버금갈, 아니 넘어설 때도 있다. 

'심스틸러'의 기본은 탄탄한 연기력이다. 여기에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났을 때 진정한 '심스틸러'가 탄생한다.

관객들의 마음을 빼앗는 '심스틸러'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요즘 영화계이기에, 뉴스1은 다양한 성향의 '심스틸러'를 집중조명하고자 [心스틸러] 시리즈를 준비했다. 허심탄회한 인터뷰를 통해 '심스틸러'의 스크린 안팎 희로애락을 고스란이 전하며, 이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한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82년생 김지영'에서 김팀장을 연기했던 박성연(44)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지영)에는 엄마와 딸, 언니와 직장동료, 선배까지 우리 시대 여러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그 중 남성 위주의 사회 구조 속에서 생존한 '알파걸' 김팀장은 평범한 여성이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지키기 위해 어떤 것들을 감내하고 사는지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프로페셔널한 태도로 일을 처리하면서 남녀차별적인 발언에는 따끔한 일침을 놓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김지영을 누구보다 이해해주는 이 인간미 가득한 이 캐릭터는 여성들의 존경심을 끌어올리는, 모종의 매력이 가득했다.

김팀장 역할을 맡은 이는 베테랑 배우 박성연이다. 연극계에서는 연기파로 이름을 날렸고 영화계로 영역을 확장한 후에는 '마리 라띠마' '카트'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곡성' '가려진 시간' '그래, 가족' '원라인' '독전' '탐정: 리턴즈' '우리 지금 만나' '양자물리학' '82년생 김지영'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또 최근에는 드라마 '어비스' '아스달 연대기' '시크릿 부티크' 등에 출연해 남다른 존재감을 보였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던 카리스마를 벗고 만난 자연인 박성연은 내공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희고 가녀린 얼굴 안 검은 두 눈이 생기있게 반짝였다. 오랫동안 한 가지 열망만을 좇아 살아온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빛이었다. 한때 박성연은 영화 출연을 '시급이 센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할만큼 연극에 모든 것을 걸었었다. 하지만 영화 '카트'를 통해 영화만의 매력을 느껴 발을 들였고, 이제는 TV에도 출연하게 됐다. 자신을 '신인 탤런트'라고 거침없이 소개하는 모습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치열하고 지독하게 연기 하나만을 좇았다는 박성연의 모습은 영화 속 김팀장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었다. 존재만으로 비슷한 길을 가는 이들에게 힘이 되는 여자, 어딘지 존경하고 싶어지기까지 하는 여자, '심스틸러' 박성연을 만났다. 
박성연 / 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박성연 / 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82년생 김지영'이 흥행에 성공했다. 길을 걸으면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

▶알아보는 분들은 별로 없다. 평상시에 내가 화장을 안 하고 다닌다. 그냥 지나다니는 흔한 동네사람처럼 다녀서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친한 동생들과 동대문에서 '82년생 김지영'을 봤다. 극장에서도 못 알아보시더라.(웃음) 주변분들이 영화를 보시고 나서 너무 재밌다고 연락이 많이 온다. 영화 찍고 연락을 제일 많이 받은 게 '독전'이었는데, 지금이 훨씬 더 연락을 많이 받는다.

-얼굴은 낯이 익으나 박성연이라는 배우를 모르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 자기 소개를 한다면 어떻게 하고 싶나.

▶자기 소개 하는 게 힘들다.(웃음) "75년생 박성연이에요, 어릴 때 연극에 미쳐서 연극 배우로 살다가 죽고 싶었어요. 그래서 연극을 하게 됐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영화를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영화를 하는 게 힘들었다. 카메라 울렁증도 있다. 그런데 연기적으로 연극과는 또 다른 지점들이 있더라. 그러면서 점점 더 넓혀가고 있다. 그렇다면 신인 배우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드라마도 하게 됐다. 신인 탤런트다.

-데뷔작은 뭐였나.  

▶'오구'라는 연극이었다. 영화는 '박하사탕'이다. 94학번인데 졸업 하기 전에 '박하사탕' 공개 오디션을 봤다. 대학교 때 단편 영화를 찍었는데 그때 내가 찍은 단편들이 잘 됐다. 그래서 연극 배우를 꿈꾸는 연극학도였는데, 단편 영화가 잘 되고 이러고 있으니까 '박하사탕' 오디션도 한 번 볼까 하고 봤는데, 결국에는 떨어졌다. '영화는 아닌가봐, 난 연극 배우야.' 하고 연극에 매진했다. 조연으로 계속 몇차까지 갔다가 떨어졌는데 나중에 마지막 소풍가는 장면에 나온다. 거기 공원들 중에 한 명이었다. 그때 한참 극단생활을 할 때였는데 극단 생활이 힘들었다. 3박4일 촬영을 한다면서 연락이 왔다. 한다고 했다. 작은 역할이었지만 한다고 했다.
박성연 / 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박하사탕'이 영화 데뷔작이었다니 놀랍다. 촬영은 어땠나.

▶힐링이 됐었다. 재밌었다. 그 이창동 감독님과 작업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렇게라도 참여하게 돼서 좋았고, 부담이 전혀 없었다. 소풍가는 장면이어서 놀고 노래부르고 했다. 배우 조한철 오빠도 나온다. 마지막 장면에 둘러앉는 장면이었다. 나는 화면에 크게 잡히는 게 부담스럽고 싫더라. '원경에서 잡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도망가듯이 '저요' 하고 일부러 카메라와 먼 배역을 맡았다.

-그러면 가장 처음 해 본 대사는 뭐였나.

▶소풍 장면이니까 신이 나서 노래를 불렀다. 지나가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조감독이 '선배님 노래를 부르시면 안될 것 같습니다. 저작권 때문에요'라고 해서 허밍으로 내 마음대로 아무 거나 불렀다. 연극에서는 저작권 개념이 없을 때였는데 영화에서는 몰랐으니까 신나서 부르다가 놀랐다.

-생애 첫 상대역은 누구였나.

▶첫 영화는 대학교 때 찍은 조범구 감독님의 단편 영화 '장마'다. 거기서 정우혁 오빠와 호흡을 맞췄다. 연락은 안 한다.(웃음)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

▶어릴 때는 상업적인 영화보다는 컬트 영화를 한동안 좋아했다. '성스러운 피'(산타 샹그레)라는 영화의 강력한 이미지들이 좋아해서 20대부터 30대까지는 그 영화가 내게 최고의 영화였다. 나이를 먹다보니 나도 보편성을 갖게 되더라. 사회화가 되고 하니 요즘 베스트로 꼽는 영화는 '우리들'이다. 너무 좋았다. '우리집'도 보고 싶은데 아직 못 봤다. 힐링 영화였다. 영화로 힐링 받을 수 있구나 싶더라. 내 최애 영화다. 윤가은 감독님 연락 주세요.

-좋아하는 배우는 누구인가.

▶조니 뎁이다.
박성연 인스타그램 캡처 © 뉴스1
-기존 나온 영화들 중에서 '스틸' 해오고 싶은 배역도 있나.

▶뭘 하고 싶다거나 '이런 역할 하고 싶어, 저런 역할 하고 싶어'하는 건 아닌데 전에 드라마 감독님과 미팅할 때 그 감독님이 그런 질문을 하신 적이 있었다. 그 때 이렇게 잠깐 생각해보니 생각나는 배역이 하나 있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영화 '헤이트풀8'에서 여죄수 역할이다. 그 역할을 해보고 싶다.

-잘할 것 같다. 센 캐릭터인데, 지금까지 영화에서 센 캐릭터도 줄곧 잘 소화해왔다.

▶시켜달라. 그런데 내가 순한 역할도 잘 한다. 그런데 순한 역할은 눈에 안 보이더라. '가려진 시간'이나 '원라인'에서도 순박한 역할을 했었다. 그런 역할은 확 안 들어온다. '카트'에서도 심약한 애기 엄마 역할을 했었다. '카트'를 좋아하는 분들은 그 장면을 기억한다. 그렇지만 그런 역할은 잘 기억 못 하시고, 매치를 못하신다. 그런데 카리스마 역할을 해도 잘 모르시는 것 같다.(웃음)

-지금까지 많은 역할에서 '신스틸러'로 활약했다.

▶'신스틸러'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왠지 어감이 그 장면에서 너무 내가 돋보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떤 분이 '82년생 김지영'에서 내가 김팀장을 연기한 것을 보고 댓글을 달아주셨는데 '영화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주셨다'는 댓글을 달아주셨다. 감사했다. 좋아하는 칭찬이다. 신스틸러 말고 다른 단어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감사하지만 그렇다.

-그 중에 기억에 가장 기억에 남는 역할은 무엇일까.

▶'독전'의 수화 통역사 역할이다. 그건 잠깐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연습을 엄청 많이 했고, 대사만 외워서 하려고 했는데 감독님이 그 수화를 다 외우게 하셨다. 농아 남매와 같이 연습했다. 수화를 나도 다 할 수 있고, 그 수화를 보면서 동시 통역을 할 수 있을만큼 연습하게 하셨다. 그 신을 찍을 때 대사를 외우지 않고, 농아 남매가 찍은 장면을 보고 실제로 동시 통역을 했었다. 재밌더라. 수화 통역 선생님도 너무 좋으셨던 게 기술적인 것으로만 가르쳐 주시는 게 아니라 수화에 대한 기본 개념 원리부터 잘 설명해 주셨다. 배우라는 직업이 그래서 좋다. 여러가지 해서 힘들었다가 아니라 그 역할을 하면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다른 것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역할을 하다보니 수화가 굉장히 특별하게 다가오더라. 뉴스를 볼 때도 수화 통역사들이 통역하는 걸 보면 전에는 지나쳤던 게 내 눈에는 '저분은 저렇게 하시네' 하면서 보이더라. 수화 통역 하시는 분들도 캐릭터가 있더라. 보는 눈이 넓어졌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포스터 © 뉴스1

-김도영 감독은 배우 출신이고, '82년생 김지영' 전에도 아는 사이였다고 들었다.

▶김도영 감독과 10년전에 '과학하는 마음' '그 숲의 심연'이라는 연극을 했었다. 김도영 감독님이 배우니까, 같이 공연을 했는데 그때 내가 35살이었고, 언니가 40살이었다. 그때 그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선배 배우다. 연기를 나에게 없는 다른 색깔로 우아하게 하시더라. 그때 한참 내가 대학로에서 '연기 좀 한다'는 얘기를 듣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다른 배우들에게 뭐랄까…함부로 조언해주고 '이렇게 해봐' 이랬었는데 도영 언니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배우들마다 비밀의 정원이 있는데 그 정원을 함부로 하지 않아야 한다, 지켜줘야 한다'고. 내 행동이 떠오르면서 비밀의 정원은 내가 함부로 건드리거나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배우가 어떻게든 찾아가는 과정이 있다. 물론 공연이 임박하면 어쩔 수 없다.(웃음) 나는 그 말 때문에 언니가 멋있어 보이더라. 안 그대로 연기 잘해서 멋진 언니였다. 이후로는 작업을 같이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82년생 김지영'에 출연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가끔 가다가 공연 보러 오시고 늘 예뻐해주셨는데, 사실 김도영 감독님이 '82년생 김지영'을 한다는 기사를 읽긴 했다. 일부러 연락을 안 했다. 너무 하고 싶을까봐. 연락 안 하고 있었는데 그냥 속으로 연락이 왔으면 좋겠다, 연락이 왔으면 좋겠다 하고 있었는데 연락이 온 거다. 어떤 역할이든 좋았다. 나는 도영 언니가 상업 영화의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영화 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단편을 찍고 어떤 과정을 거치며 여기까지 왔는지 잘 알아서 언니한테 전화 왔을 때 지나가는 역할이라도 하겠다, 행인1이라도 하겠다고 했다.

-김도영 감독이 박성연을 두고 '대학로 연기 신(神)'이라고 칭찬을 한 기사를 읽었다.

▶그분(신)이 오셨으면 좋겠다.(웃음) 연기 신이 빙의 됐으면 좋겠다. 기사를 보고 감사하다고, 카카오톡을 했다. 그 기사를 읽고 소녀 몸둘 바 모르겠다. 연기 신이라니요. 소녀 황망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다. 너무 감사하다.

-연출자와 배우로 만난 건 처음이지 않나.

▶너무 좋았다. 내가 연기를 할 때 어떤 주문이 없었고, 처음에 리딩할 때 캐릭터를 잡는 부분에서 내가 어떤 캐릭터를 잡아서 읽으니까, 너무 좋아하시더라. 그 캐릭터를. 그리고 합의가 되게 잘 됐다. 예를 들어 원래 지영이가 자기 병을 알고 나서 '회사를 못 다닐 거 같아요'라고 얘기하는 장면에서 원래 시나리오에는 '기다릴게'라고 하는 대사가 있었다. 지영이가 '다 나으면 연락드릴게요'라고 하면 김팀장이 '기다릴게' 하는 대사가 있었는데 그 장면을 리딩할 때 하지 맙시다, 하고 내가 바꾸자고 했다. 이 말을 하지 않는 게 현실적이라고. 얘기가 잘 됐다.

-그 장면에서 인상깊었던 김팀장의 대사가 있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김지영의 상황을 이해하는 대사다. 그 부분도 박성연의 의견이 들어갔나.

▶그 대사는 원래 있는 거고, 나도 정신과 진료는 받는다. 감기 때문에 병원을 찾는 것보다 그런 정신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안다. 정신과에 가보니 심각한 분은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분은 없더라. 다 나 같은 분들이다.

-캐릭터를 연기할 때 주안점을 둔 것은 어떤 부분이었나.

▶전형적이지 않아야겠다가 첫 번째였다. 그건 감독님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전형적인 직장 상사였다면 나를 캐스팅 하지 않았을 수 있다. 나도 전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외향적으로도 그렇고. 그런 역할을 한번도 대중들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 내가 이해하는 선 안에서 직장 상사로서, '워킹맘'으로서의 어떤 것들, 그런 대사가 있다. '나는 엄마로서 자격도 없고 내가 좋아보이냐고. 네 눈에는 나 사실 좋은 아내 아니고, 좋은 엄마 아니고 우리 엄마한테는 불효녀다'라는 대사. 그건 아마 사회 생활하는 여성들이라면 대부분 느낄 것이다.
박성연 / 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영화에서 김팀장이 광고주들을 다루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긴장감이 도는 순간, 장난스럽게 분위기를 풀면서도 자기 의사를 전달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그 장면은 내가 사실 두 가지 버전으로 준비했었다. 왜냐하면 광고주 하고는 갑과 을의 관계다. 내가 회사의 팀장이고, 갑과 을의 관계고 그 얘기가 나오는데, 슬쩍 '어퍼 컷'으로 한 번 날려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을은 갑과 같이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약간 그런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두 가지 버전 중에 하나는 상대가 '남자로 태어났어야 하는데 말이야'라고 하면 그냥 바로 '회의 시작 하시죠' 해서 양이사를 웃게 만든다. '회의 시작하시죠' 했을 때 양이사가 풀려야 그 회의에 집중이 될 거다. 김팀장이 가진 프로페셔널함을 보여주는 신이다. 그런데 그걸 그렇게 표현하지 않아도 읽힐 수 있게 하는 장면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 속 장면이 나왔다. 원래 더 했는데 조금 죽이셨더라.(웃음)

-김팀장은 '알파걸'이었다. 그런 역할에 공감했나.

▶그런 면이 없진 않다. 있긴 있다. 왜냐하면 연극할 때 극단 생활을 했다. 프로젝트 팀으로 작품을 만났을 때 내가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인데도 어쩔 수 없이 김팀장처럼 끌고 푸시하고 받쳐주고, 채찍을 줬다가 당근 줬다가 그렇게 많이 하는 부분이 있다. 엄마나 아내로서는 내가 아직 미혼이고,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들은 상상하면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실제로 24년차 워킹맘 분이 김팀장 역할을 보고 울컥했다고 SNS에 글을 올렸라. 실제 아기를 낳고 28일만에 복귀하셨다고 했다. 댓글을 달았다. '리스펙트 한다'고. 너무 존경한다고. 나는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없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거 여태 하고 살았는데 내가 저 상황이면 저렇게까지 해낼 수있었을까. 나는 못 했을 것 같다. 슈퍼우먼을 못 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최근 인스타그램을 열었더라.

▶ 원래는 '양자물리학'을 홍보하려고 시작했었다. 우물정 자 해시태그도 잘 몰라서 홍보를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사이에 영화가 내려갔다. 영화가 재밌어서 잘 될 줄 알았는데 아쉽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몇 명 없다. 신기하다. 다른 SNS 같은 경우는 지인만 보게 막아놓고 친구 신청도 지인만 받아서 그들과 소통하지 않나. 내가 모르는 분들, 관객들과 소통한 적이 없는데 인스타그램을 하니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나를 찾아오셔서 김팀장 이야기에 너무 공감하시고 연기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해주시더라. 댓글을 달았다. 그분은 내가 댓글을 단 걸 캡처해서 올리셨더라.(웃음) 다는 못 달 것 같다. 그래도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관심이 너무 감사했고, 내가 연기한 그 역할이 많은 분들이 공감하셔서 좋더라. 행복하더라. 정말 다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이 감사하더라.

-'82년생 김지영' 캐릭터 중에 제일 공감가는 캐릭터는 뭐였나.

▶나에게는 미숙도 있고, 지영도 있고, 김팀장도 있고, 혜수도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싸고 펼쳐진 젠더 갈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82년생 김지영'을 페미니즘 영화로 보고 영화를 보기 전 '악플'을 다는 네티즌도 일부 있었다.

▶어떤 작품이든 다 그렇다. 딱히 나는 체감이 안 됐다. 그래서 잘 모르겠다. 호불호는 있다. 나만 해도 어떤 영화를 보면 갑자기 성질이 나는 영화가 있기도 하고, 공감되는 영화도 있다. 그걸로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자기 표현인데. 다만 남을 해하는 표현은 지양하면 좋겠지만 딱히 그렇게 예민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82년생 김지영'은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의 공세 속에서도 계속해서 흥행을 했었다.  

▶순위로 일희일비 하고 싶지 않다. 그 작품을 보고 공감하고 위로가 됐다. 시사회 때 처음 보고 나서 '아 우리 엄마, 우리 이모들 보여줘야겠다' 했다. 사실 오빠 한명 있는 남매인데, 오빠와 우애좋게 지내는 편이 아니다. 가족들 생각이 가장 먼저 나더라. 이 영화는 그런 힘이 있다. 가족 생각이 먼저 났기 때문에. 아버지 생각도 났다. 아버지를 못 보여드렸다. 몸이 안 좋으시기 때문이다. 엄마랑 이모들을 같이 보여드렸다. 굉장히 많은 이야기 꽃을 피우시더라. 세 자매가. 너무 뿌듯했다. 너무 고맙다고 하시더라. 물론 딸과 조카 모습 보는 게 제일 좋으셨겠지만 말이다.
'독전'  스틸 컷 © 뉴스1
-'양자물리학'에서 실무관 역할도 너무 잘했다. 욕망 가득한 공무원이면서 평범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중성이 돋보였다.

▶'양자물리학' 얘기를 너무 얘기하고 싶었다. 아무도 안 물어봐서.(웃음) 원래 그 캐릭터는 '양자물리학' 초반에 남자로 설정됐다. 감독님이 남자로 가면 너무 심심하고, 평이해질 거 같아서 여자 캐릭터로 바꿨는데, 박해수와 이창훈이 나를 추천한 거다. 감독님이 '독전'을 보셔서 일사천리로 캐스팅이 됐다.

-두 배우와 친분이 있었나.

▶이창훈은 같은 작품을 하지는 않았는데 연극판에서는 서로 '저 배우 너무 좋다' 그랬다. 창훈이도 '저 선배님 너무 좋다' 이런 친분이 있었다. 박해수는 같이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학교 후배다.

-공무원인데 굉장히 이기적인 캐릭터였다. 평범한 사람의 얼굴을 한 악인이었다.

▶그 캐릭터에 관해서 꼭 얘기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내가 예전에 관공서에 가서 그런 공무원을 만난 적이 있다. 너무 서럽더라. 돈이 없어서 못 낸다고 하는데, '그럼 내지 말고 집에 가라'고 하면서 귀찮아 하더라. 상처 받았다. 내가 직접 만난 그 공무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거기에 조금 새로운 모습을 보태 마트에서 장보는 엄마의 캐릭터를 보여줬다. 장을 보다가 납치를 당하는 거다. 다른 데서 납치 당하는 거였는데 그 싸가지 없는 캐릭터, 얄미운 캐릭터도 누군가의 엄마다, 라는 걸 표현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 원래는 수영장에서 납치를 당했어야 하는데 마트에서 장보고 납치 당하는 게 어떻겠느냐 했더니 감독님이 그 의견을 반영해주셨다.

-'양자물리학'의 흥행 성적에 대한 아쉬움이 있겠다.

▶흥행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왜냐하면 영화가 재미가 없었다면 모르겠는데 재밌어서 기대하는 부분이 있었다. 케미스트리도 너무 좋았고, 영화도 통쾌하게 잘 나왔다. 실관람평을 읽어보면 재밌다는 평이 많았는데, 그리고 나도 재밌게 봤다. 내가 나오는 장면에서 웃은 게 처음이다. 보통은 내가 나오는 장면에서 안 웃게 된다. '양자물리학'에서 처음이 웃었다. 하하하. 표정이 너무 웃겼다.
'양자물리학'  스틸 컷 © 뉴스1
-배우 박성연 말고, 인간 박성연의 모습은 어떤가.

▶게으르고 몽상가다. 멍 때리기를 잘 한다. 일상 생활에서 박성연은 그거 말고는 귀엽고. 애교가 많은데 또 아무한테나 애교를 떨진 않는다.(웃음) 어릴 때 연극을 시작하면서 미친듯이 했다. 그럴 때는 여유도 없었고 유쾌하지도 않았고, 늘 심각하고 예민하고 뜨겁고 이렇게 20대, 30대를 보내고 나니 그 온도에 내가 나가떨어지더라. 어느 순간 놓는 방법을 택했다. 내가 살려고. 내가 살기 위해서 놓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러면서 성격이 훨씬 더 유쾌해지고 쾌활해지고 긍적적이 됐다.

-긴장을 많이 하고 살았나 보다.  

▶엄청 심했다. 연기를 너무 잘하고 싶었고, 매 작품, 한 공연 마다 늘 계속 해내고 싶은 거다. 100이면 100을 해내고 싶은 게 컸다. 그런 욕심이 컸다.

-인생에서 터닝포인트가 있었다면.

▶세 가지가 있다. 어느 날 문득 '네 개의 문'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그 작품 전과 후로 배우로서의 삶이 나뉜다. 그 작품 전에 나는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내가 만족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 역할을 잘했어 할 수 있나'의 기준으로 살았다. 그 작품 이후로는 내가 어떤 작품과 어떤 역할을 하면서 타인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고, 영향을 줄 수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배우의 어떤 사회 임무를 알게 되고, 배우로서 성장하게 된 계기였다.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사회인으로서도. 에전에는 하고 싶은 예술을 너무 잘하고 싶은 아이였다면 이제는 달라졌다. 첫번째 터닝포인트다.

두번째는 영화 '카트'다. '카트'는 노동 문제를 다룬 영화기도 하고, 여성 노동자들이 많은 영화기도 한데 한편으로 내가 그 전에 공연 계속하면서 영화에서 1,2회차 단역을 할 때여서 영화에 대해 흥미로 매력도 못 느꼈을 때다. '카트' 작업하면서 카트는 수십명 나오는 배우들이 연극 판에서 실력 있는 배우들이었다. 거기에 이정은 언니도 있었고, 좋은 배우들이 많았다. 그분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이 좋았다. 30회차를 같이 찍었다. 한 편을 같이 찍은 셈이다. 그러면서 영화를 이해하게 됐다. 그전에는 별로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날 왜 단역 취급해' 하는 게 있었다. 당연히 단역이니까 단역 취급했을 것이다.(웃음) 그래도 싫었다. 나는 연극 배우로 살거야, 영화는 아르바이트로 하지 뭐, 그랬는데, '카트'를 하면서 우리 영화, 우리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더라. 영화로는 그런 게 처음이었다. 공연은 내가 단역하든 주인공하든 우리 작품이었다. '카트'는 영화에 눈을 뜨게 해준 작품이라고 해야하나, 영화에 애착을 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작품이었다.

세 번째는 공황 장애다. 2년 전에 공황장애가 왔었는데, 공황 발작을 겪으면서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죽지 않지만 죽을만큼 공포스럽더라. 그때가 6개월 정도 공연도 못 하고 영화도 못 찍고 아무 것도 못 했다. 죽을 수도 있구나, 나 이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나니까 겁 많고 두려움도 많고 낯선 사람과 잘 못지내는 성격이었는데 공황장애 이후로는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어느 날 내가 갑자기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이왕 언제 죽는지 모르는데 이것저것 해보고 죽자는 생각이 들었다. 컨디션이 나아지고 나서 운전 면허에 처음 도전했다. 기계치라서 43살에. 면허 따고 면허가 생기니 작은 경차를 사서 돌아다닌다. 마치 내가 사회의 일원이 된 것 같더라. 평생 인도로 다니고, 버스 타고 , 택시 타던 내가 운전대 핸들을 잡고 도로 중간을 가고 있는 거다. 내가 사회의 물결 속에 들어가 있는 구성원이 된 것 같았다.(웃음) 공황 장애가 심장이 빨리 뛰면 안돼서 화를 내면 안 된다.  긍정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게 나에게 가장 큰 터닝 포인트다.

-공황 증세는 지금은 나아진 것인가.

▶지금도 계속 약을 먹고 있는데, 괜찮다. 빨리 완치되는 게 아니다. 공황을 안고 즐겁게 살려고 한다. '공황인'들 함께 해요.(웃음) 공황 장애를 앓으면서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까 말씀드렸지만 어떤 강박이 있었다. '배우로서 꼭 해내야해. 이건 내가 못 하면 관객을 모독하는 거야' 이랬는데 이후로는 내가 살아야겠더라. 대사를 하다 실수해도 실수 할수도 있지 뭐 하면서 놓는 방법을 그때 더 많이 알게 됐다. 그러니까 훨씬 굉장히 긍정적인 객관성이 생겼다.
박성연 / 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생각의 변화가 연기에도 영향을 미치나.

▶영향이 있다. 나는 초심을 잃지 말자는 생각을 싫어한다. 초심을 잃어야한다. 초심을 잃고 중심만 잡으면 된다. 초심은 나에게 너무 뜨거워서 감당하기 어려워 버린지 오래됐다.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지 못해 무조건 들이대고 파고들고 하는 식으로 연기해왔다면 이제는 아니다. 아름다운 거리를 두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 상대와도 많은 것을 주고 받을 수 있다.

-연기할 때 행복한가.

▶그렇다. 너무.

-언제 연기를 시작했나.

▶중학교 때 아동극단부터 시작했다. 예고에서 연극영화과를 했고, 대학도 전공이 연극영화과다. 내가 연극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이 10대 때였다. 그때 결심하지 않았다면, 나이를 먹고는 내 성격에 이쪽으로 방향을 못 틀었을 것 같다. 연기를 하면서 성장했고, 연기를 하면서 사람이 돼가고 있다. 여전히 앞으로도 연기를 하면서 갈 거다. 성숙해질 것 같다. 나는 신인 탤런트다.(웃음)

-영화를 기피하다가 다시 도전하게 된 이유는 뭐였나.

▶기피까지는 아니고, 연극에 충성하고 싶었다. 연극 배우로 살다가 연극 배우로 죽고 싶었다. 그런데 연극 배우로 살다가는 굶어죽겠더라. 사실은 영화를 일당 센 알바로, 1~2회차 단역으로 나도 자부심 없이 그렇게 시작했는데 '카트'를 하면서 영화 단역도 하다 보니까, 아는 사람이 넓어지고 많아지고 하더라. 스태프가 먼저 와서 '무슨 역 하셨죠?' 하고 알아봐주니 좋더라. 처음엔 카메라 울렁증이 싫었다. 그래서 더 싫었다. 이제는 없어졌다. 아직도 조금 있는데 편안해질 것 같다. 지금은 영화가 너무 매력적이다. 연극에서 표현할 수 있는 연기 영역과 다른 부분이 있다. 영화에는 강력한 클로즈업이 있다. 눈으로 하는 연기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하는 것, '82년생 김지영'을 보면서도 느꼈다. 그래서 좋다.

-앞으로 영화와 드라마도 더 많이 할 예정인가.  

▶연락 기다리겠다. 좋은 드라마와 영화에 매력적인 역할이 있으면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로 연락 달라. 연극도 계속 할거다.

-배우로서 목표나 소망이 있다면 무엇인가.

▶좋은 작품의 기준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좋은 작품을 만나는 것, 좋은 동료들을 만나는 것,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여서 앞으로도 좋은 사람으로 완성되지는 않을 거다. 모두가 마찬가지겠지만.(웃음) 배우로서 엄청난 꿈은 없다. 먹고 살 수 있으면 된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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