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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 티센크루프와 독일의 주주행동주의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19-11-25 07:01 송고 | 2019-11-25 09:24 최종수정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News1
티센크루프(ThyssenKrupp)는 독일의 엘리베이터 제조회사로 잘 알려져 있지만 철강과 엔지니어링이 모태인 기업이다.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1999년에 티센과 크루프가 합병해서 탄생했다. 이 합병은 1997년에 크루프 측이 규모가 더 큰 티센을 적대적으로 인수하려고 하다가 은행권과 노동계의 개입으로 저지된 사건에서 발단이 되었다.
티센은 1891년에 설립됐고 크루프는 역사가 더 오래돼서 1811년에 설립되었다. 2018년 매출액이 508억 달러로 독일 15대, 글로벌 215위 기업이다. 종업원은 약 16만 명이다.

티센, 크루프 두 회사 다 사업영역 때문에 보불전쟁 이래로 전시에 독일군이 사용하는 장비와 물자를 대량 생산했다. 크루프는 세계 최초로 강철 포신의 대포를 제작한 회사이기도 하다. 히틀러는 한 연설에서 독일의 청년들이 “크루프의 강철처럼 견고해야 한다”고 한 적도 있다.

티센은 창업자의 장남이 나치 전범으로 처벌받아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고 차남은 애당초에 독일을 떠나 헝가리로 가서 살았기 때문에 사실상 2세대에서 가업이 단절됐던 회사다. 2차 대전 후 연합군 점령당국에 의해 해체된 후 재설립됐다.

크루프는 창업자의 5세까지 경영이 승계됐다가 1967년에 후사가 없었던 5세의 타계 후 그 이름(Alfried Krupp)을 딴 공익재단에 가족 보유 지분 전량이 귀속되었다. 크루프 패밀리에는 형제간 경영권 승계는 없다는 규칙이 있었다. 이 재단은 현재 티센크루프의 20.9% 최대주주다.
티센크루프의 2대 주주는 스웨덴의 투자회사 세비앙(Cevian) 캐피탈이다. 13.7% 주주다. 소프트하고 건설적인 행동주의 펀드로 알려져 있다. 세비앙은 티센크루프가 지나치게 사업이 다양하고 복잡한 구조를 취하고 있어서 업계 경쟁회사들에 비해 실적이 저조하다고 보고 회사의 구조재편을 요구해왔다.

티센크루프는 철강 외에도 잠수함, 화학플랜트, 자동차 부품, 조선 등의 사업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대규모 투자계획이 공개된 TKMS는 2005년에 HDW를 인수한 회사인데 214급 잠수함 건조로 잘 알려진 HDW는 1838년에 설립되었고 양차 대전 때 독일 해군의 고성능 유보트를 생산했던(2차 대전 때만 64척) 유서 깊은 조선사다.  

티센크루프는 2017년 9월에 인도의 타타스틸과 유럽지역 사업을 통합하기로 하고 암스테르담에 50대 50의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새 회사는 유럽 2위의 철강회사가 될 계획이었다. 양사간의 공식 계약은 2018년 6월에 체결되었다. 경영진은 이 딜을 통해 주주가치가 증대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의 경영진에 문제가 있다고 본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Elliott)이 등장한 것은 2018년 5월이다. 엘리엇은 타타와의 합작이 지나치게 타타 측에 유리하다고 비판하면서 다른 방식의 구조재편을 요구했다. 회사의 고참주주들 조차 행동주의 주주들을 지지하면서 경영진을 비판하는 지경이 되었다.

7월에 CEO와 감사위원회 의장 레너가 동반 사퇴했다. 레너는 물러가면서 자신을 압박한 엘리엇을 '사이코 테러리스트'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회사 경영진이 엘리엇에 시달린 나머지 심리치료까지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2018년 9월, 티센크루프 경영진은 회사를 철강과 소재 부문, 엘리베이터를 포함하는 산업재 부문 두 사업 부문으로 분할하기로 결정한다. 두 사업 부문이 각각 보다 효율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을 갖추게 되어 전반적인 수익성을 높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 때문에 회사의 주가가 30% 가까이 하락했다. 상당 기간 침묵하던 엘리엇도 분할계획에 우려를 표명했다. 2019년 5월 분할계획은 결국 취소됐다.

2019년 10월에 CEO가 메르츠로 교체되면서 엘리베이터 부문 매각 계획이 공표되었다. 엘리베이터 부문은 티센크루프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다. 뉴욕의 원 월드트레이드센터도 티센크루프 엘리베이터를 쓴다. 경쟁사 핀란드의 코네와 몇몇 사모펀드가 관심을 보이고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기업가치는 약 165억 달러에 상당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행동주의 사례가 2018년에 11건을 기록했다. 자본시장의 발달이 낙후되었던 독일도 이제 주주행동주의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글로벌 펀드들이 독일의 제도와 기업문화에 대한 이해를 서서히 높여가면서 공격 대상도 독일 30대 기업(DAX 30)으로 규모가 커지고 있고 복합기업그룹과 ESG 측면에서 저조한 회사가 대상이 되고 있다. 티센크루프 사례는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지금까지의 독일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주주행동주의 사례로 기록된다.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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