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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일고시원 화재 1년 ①] "우린 한달만에 잊혀"…보상 한푼도 못받은 유족들

관심 순식간에 꺼지며 수사·보험처리도 덩달아 지지부진
"도의적 책임지겠다"던 건물주 감감무소식…너무 지쳤다"

(서울=뉴스1) 유경선 기자, 류석우 기자 | 2019-11-09 07:00 송고 | 2019-11-09 09:01 최종수정
지난해 11월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 고시원 화재현장 앞에 희생자들을 기리는 꽃이 놓여 있다./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지난해 11월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 고시원 화재현장 앞에 희생자들을 기리는 꽃이 놓여 있다./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1년 전 2018년 11월9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에서 발생한 국일고시원 화재는 2시간 만에 7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월 30만원 안팎의 월세로 입주할 수 있던 고시원에는 주로 고령이거나 일용직에서 일하며 형편이 넉넉지 못한 이들이 살고 있었다.

11월9일은 '소방의 날'이었다. 바로 그날 발생한 후진적 화재에 사회는 공분했다. 고시원에는 2평 남짓한 방이 한 층에 20칸 넘게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복도 폭은 1m 정도에 불과했다. 화재에 매우 취약한 구조였지만 스프링클러는 설치돼있지 않았고 비상벨도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창문이 없는 방은 화재에 더욱 속수무책이었다. 이 화재로 '창문값' '최저주거기준' '소방대책' 등의 주제가 사회에 던져졌고, 주거취약계층의 열악한 주거실태에 각성이 이는 듯했다.

고시원 건물 주인으로 밝혀진 하창화 한국백신 회장은 "법적 책임과는 별개로 피해자분들에게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정치인들도 너나없이 현장을 찾았다. 많은 것이 금세 해결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국일고시원은 빠르게 잊혔다. 건물주 하 회장의 '도의적 책임'은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화재 1년을 앞둔 고시원 건물은 외관을 정비하기는 했지만 창문 주위에 아직 그을음이 검게 남아 있다. '임대'라고 적힌 현수막이 몇개월째 외벽에 걸려 있을 뿐이다.

8일 종로구 관수동 옛 국일고시원 건물에 임대 현수막이 붙어 있다. 2019.11.8/뉴스1© 뉴스1 류석우 기자
8일 종로구 관수동 옛 국일고시원 건물에 임대 현수막이 붙어 있다. 2019.11.8/뉴스1© 뉴스1 류석우 기자

◇"우리는 순식간에 잊혔다"…사고 흔적에 1주기 추모제도 불발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사고 직후 고시원에 쏠렸던 눈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1년 후의 현실을 못내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어느 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1년이 지나가면서 이들은 사고의 잔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년이요? 우린 한 달 만에 잊혔어요. 진이 다 빠졌어요."

화재 1년을 하루 앞둔 8일 국일고시원 인근에서 만난 김순만씨(59)는 헛헛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불이 시작된 301호의 두 칸 옆인 303호에 살고 있었다. 손으로 창문을 더듬어 찾아 겨우 탈출했고, 그 과정에서 옆방 창을 두드리다가 뜨겁게 달궈진 창틀에 화상을 입었다.

국일고시원 화재 당시 왼손에 화상을 입은 303호 거주자 김순만씨(59)/뉴스1© 뉴스1 류석우 기자
국일고시원 화재 당시 왼손에 화상을 입은 303호 거주자 김순만씨(59)/뉴스1© 뉴스1 류석우 기자

왼손에 입었던 화상은 다 나았지만, 손은 아직도 뜨거움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아직도 라면을 끓여먹을 때 뜨거운 걸 잡으려면 겁이 난다"며 "어디를 가면 제일 먼저 창문과 스프링클러가 있는지를 확인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11월 초가 되니 자연스럽게 생각이 나고, 겨울이 된 게 겁이 난다"며 "1년이 다됐는데 다들 어떻게 사건이 아직 해결이 안 되나 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화재 1주기가 돼서 추모제를 준비하려 했지만 유가족과 피해자분들이 너무 지쳐 함께하기를 어려워하셨다"며 "빨리 일이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했다.

◇관심 꺼지며 수사·보험처리도 지연…"우리는 어디에 하소연하나"

국일고시원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지면서 사건 수사와 유가족 보험처리도 같이 멈춰섰다. 책임소재를 가려낼 수사는 8개월째 검찰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보험사는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보험처리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다.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건물주로서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던 하창화 회장으로부터 아무 연락도 받지 못한 상태다.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떠들썩했던 관심이 식었기 때문에 사건 수사와 보상 문제 진척이 더디다고 믿고 있다. 화재로 아버지를 잃은 A씨는 답답한 마음에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글을 올리기에 이르렀다. 

'종로고시원 화재 사건 그후 1년째 무소식'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10월12일 글을 올린 A씨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시간이 지나며 관심이 꺼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너무 진행이 더뎌 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이 글에서 A씨는 "사건 발생 후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진행은 지지부진하고 유가족에게는 정보전달도 안 해준다"며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법을 모르는 우리는 어디에 하소연을 해야 하느냐"고 적었다.

우체국에서 일하던 형을 여읜 조모씨(30)는 "처음에는 기자도 많이 오고 장관도 오고, 잘 마무리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도 했다"며 "윗분들은 그렇게 많이 신경써줄 것처럼 얘기했으면서 이제는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 알 수 없게 됐다"고 속상함을 숨기지 못했다.

조씨는 이어 "화재가 났으면 건물주든 소방공무원이든 누가 됐든 사과가 먼저라고 생각한다"며 "문자나 전화를 하나라도 받은 분이 한 분도 없다"고 꼬집었다.

2018년 11월9일 국일고시원 화재 현장/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2018년 11월9일 국일고시원 화재 현장/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도의적 책임" 말한 하창화 회장 감감무소식…"아무도 연락 못받아"

건물 소유주인 하창화 회장은 화재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책임을 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것보다 큰일이 어딨겠느냐"며 "법적인 책임과 별개로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하 회장으로부터 사과한다는 연락을 받은 피해자나 유족은 한 사람도 없다. 감당하겠다던 '도의적 책임'도 행방불명이다. 대신 그는 고시원장이던 구모씨(69·여)에게 화재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배상하라고 통지했다. 하 회장은 구씨가 신청해서 선정된 서울시의 스프링클러 설치 지원을 거부한 바 있다.

조씨는 "(하 회장으로부터) 받은 연락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A씨도 "지금 건물주는 자신은 아예 잘못이 없고 고시원장에게 받을 게 있다고 몰아가고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피해자와 유가족을 지원하고 있는 권성근 변호사(법무법인 승운)도 "(하 회장에게서) 따로 연락이 오거나 한 건 없었다"며 "우리 쪽에 한번 물어볼 수는 있을 텐데 과연 책임을 지실까 생각이 들기는 한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채 흐르는 시간은 고시원장이었던 구씨에게도 고통이다. 그는 비상벨 등 화재 관련 시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책임(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으로 입건됐다. 구씨는 화재 당일 "속상해서 어떡해. 내가 그 사람들 불쌍해서 반찬도 갖다 주고 죽도 끓여 줬는데. 난 죽어도 괜찮은데 어쩌면 좋아"라며 현장에서 오열했었다.

구씨의 동생은 뉴스1과의 통화에서 "언니가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고, 당시 일은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고 눈이 감기지 않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한다"고 전했다.

"건물주가 돈이 있는 사람이어도, 집세를 엄청 많이 올려서 언니가 힘들어했어요. 빗물이 줄줄 새도 고쳐주지 않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언니는 계약이 끝나는 11월 말일만 기다렸는데, 9일에 불이 난 거예요. 재계약을 안 하려고 11월 말일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2018년 11월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 고시원 화재현장 앞에서 주거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고시원·쪽방 등 화재사고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2018년 11월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 고시원 화재현장 앞에서 주거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고시원·쪽방 등 화재사고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kays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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