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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강국의 오명 '악플 천국'…'소수의 악플러' vs '침묵하는 다수'

[인터넷의 민낯, 무법천지 혐오공화국]②"악플근절"..인터넷 사업자들 자정노력
완전히 막기엔 역부족…"악플 문화, 굉장히 후진적"

(서울=뉴스1) 박병진 기자 | 2019-10-21 06:45 송고
편집자주 올해로 인터넷 서비스 상용화 20주년과 모바일혁명 10주년을 맞았다. 그간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천지개벽의 '온라인 세상'이 현실화됐다. 누구나 자유롭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공론장'이 마련됐고 때로는 억울한 일을 해결해줄 '현대판 신문고' 역할도 톡톡히 했다. 검색포털, 전자상거래, SNS, OTT 등 기존에 없던 신산업도 만개했다. 반면 역기능도 심각하다. 온라인 공간이 익명성 뒤에 숨어 내면의 증오를 배출하는 '하수구'로 변질되면서 예전같으면 보지 않아도 될 인간 군상의 '민낯'에 여과없이 노출되고 '혐오'가 일상화되고 있다. 무차별적인 '댓글테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혐오문화는 신뢰체계마저 무너뜨려 사회 전체를 멍들게 한다. 사이버 인격살해가 난무하는 무법천지 혐오공화국, 비상구는 없을까.
지난 14일 경기 성남시 수정구 심곡동 소재 자택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된 가수 겸 배우 설리(25·본명 최진리). © News1

또 하나의 꽃이 졌다. 가수 겸 배우 설리(25·본명 최진리)가 세상을 등졌다. 고인은 활동하는 내내 악성 댓글(악플)에 시달렸고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기술(IT) 강국' 대한민국의 또 다른 이름은 '악플러의 천국'이다. 댓글창은 혐오 표현을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악플을 견디지 못한 연예인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은 사실 새롭지 않다. 혐오의 일상화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모습이다.

◇"악플이 여론의 전부 아닌데"…'소수의 악플러', 혐오의 일상화 조장

지난 2017년 9425명을 대상으로 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개월 동안 인터넷 뉴스·토론 게시판에 댓글이나 글을 작성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8%에 그쳤다. 1주일에 1회 이상 댓글을 쓰는 사람의 비율은 불과 2.1%였다. 악플뿐 아니라 댓글 자체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소수의 이들 '악플러'(악플을 다는 사람)의 비방과 분노는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한다. 소수의 '키보드 워리어'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세상이 마치 대다수 사람들의 의견인 것처럼 변질되고 혐오를 조장한다. 악플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 역할을 하고 '침묵하는 다수'의 선의의 의견은 거세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전체 댓글에서 악플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지 않다. 지난해 가을 한국사회언어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이정복 대구대학교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지난해 6월11일부터 7월2일 사이 네이버 뉴스 기사 가운데 정치, 경제, 사회·문화, 세계·IT 분야별로 댓글이 많이 달린 기사 24개를 분석한 결과 욕설 댓글은 총 920개로 전체(8만4070개)의 1% 수준에 불과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통계를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에 건전한 사람이 훨씬 많고, 무질서를 조장하는 사람은 극소수인 게 팩트"라며 "악플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거칠고, 모욕적이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다 보니 주목을 더 받을 뿐"이라고 말했다.

체감과 달리 실제 악플을 다는 사람의 수는 우리가 체감하는 것보다 훨씬 적다. © 뉴스1
체감과 달리 실제 악플을 다는 사람의 수는 우리가 체감하는 것보다 훨씬 적다. © 뉴스1

◇어두운 그림자 "악플 잡아라"…인터넷 사업자들의 자정노력

인터넷에 무차별적인 댓글테러가 넘쳐나고 혐오가 일상화되면서 국내외 인터넷 사업자들도 자정 노력에 애쓰고 있다.  인터넷 기술이 낳은 '부작용'도 기술로 극복하겠다는 순수한 의지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욕설·비속어 자동치환 기능과 '상처 없는 댓글 세상 만들기' 캠페인을 각각 지난 2012년과 2015년 적용했다. 이에 따라 네이버 뉴스에 욕설이 담긴 댓글을 작성하면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함께 담아주세요', '당신의 댓글, 소리내어 읽어보셨나요?' 등의 캠페인 문구가 담긴 팝업창이 뜬다. 이를 무시하고 댓글을 작성할 경우 해당 욕설은 OOO 부호로 자동 치환돼 표시된다.

네이버는 또 지난 4월부터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해 악플을 탐지하고 자동으로 숨겨주는 '클린봇'을 네이버 스포츠와 쥬니어네이버, 네이버 웹툰 등에 적용해오고 있다. 향후 네이버는 클린봇을 네이버 뉴스 등으로 확대 도입할 계획이다. 포털 다음을 운영하는 카카오 또한 거친 비속어를 음표 기호로 자동 변환하는 '욕설 자동치환 기능'을 지난 2017년 7월 다음뉴스 댓글에 적용했다.

글로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비슷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지난 7월 '댓글 취소' 기능을 도입했다. AI가 악플을 탐지해 작성자에게 '모두가 즐거운 인스타그램을 함께 만들어주세요' 등의 문구를 보여줘 스스로 댓글을 취소하거나 더 순화된 표현을 쓰도록 유도한다.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는 지난 2017년부터 머신러닝 기술을 적용해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을 위반한 댓글을 삭제하고 있다. 지난 2분기 유튜브에서 삭제된 댓글은 총 5억3775만9344개에 달했다. 이 중 99.3%가 자동 신고 시스템에 의해 감지된 댓글이었다.

인스타그램의 댓글취소 기능 © 뉴스1

◇완전히 막기엔 역부족…"악플 문화, 굉장히 후진적"

다만 이러한 노력도 악플을 완전히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언론이나 정치권의 '감시'를 받는 대형 인터넷 사업자들은 자정노력에 나서지만 더 큰 문제는 사실상 완전한 '익명게시판'을 운영하는 일베, dc인사이드, MLB닷컴 등 온라인 커뮤니티다. 정보 교류와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등장한 온라인 커뮤니티는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책임없는 자유'가 난무하는 악플의 온상지가 된 지 오래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악플을 모니터링하고 있고, 고소를 할 때도 있지만 악플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연예인이 직접 악플을 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글을 쓰기도 하지만 사실상 동정에 호소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악플러의 수가 많지 않음에도 악플의 영향력이 큰 이유를 언론의 확대재생산과 '침묵하는 다수'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한국의 악플 문화가 후진적이라고 지적했다.

구 교수는 "자극적·부정적·폭력적인 것만 부각해 우리 사회의 큰 문제인 것처럼 전하는 언론의 보도 행태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남성이 '여혐'을 한다거나 여성이 '남혐'을 하는 게 대표적인 경우로 실제보다 더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직접 악플을 남기지 않아 통계에는 잡히지 않지만 남의 악플을 즐겨보는 일종의 '잠재적인 악플러'들이 많다"며 "통계적으로 몇 명이 악플을 달았느냐 보다 악플의 대상이 얼마나 사회적인 불이익을 받는지를 따져봤을 때 우리나라의 악플 문화는 굉장히 후진적"이라고 지적했다.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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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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