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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쿨파]천안문 30주년, 학살 주범 리펑 스러지다

(서울=뉴스1) 박형기 기자 | 2019-07-24 11:31 송고
2017년 제19차 공산당 당대회에 참석하고 있는 리펑. 마지막 공식석상의 모습이다 - 바이두 갈무리
2017년 제19차 공산당 당대회에 참석하고 있는 리펑. 마지막 공식석상의 모습이다 - 바이두 갈무리

올해는 천안문 30주년이다. 30주년을 맞아 중국에서 기념식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공교롭게도 천안문 학살의 주범 리펑 전 총리가 22일 베이징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다.
신화통신은 부고기사를 통해 “리펑 주도로 중국 공산당이 천안문 사건의 혼란을 잠재움으로써 이후 중국 경제가 쾌속 성장할 수 있었다”며 “리펑은 중국 공산당의 위대한 전사였다”고 평가했다.

◇ 총리-전인대 의장 역임은 리펑이 유일 : 리펑은 2차례 총리를 연임하고, 우리의 국회격인 전인대(전국인민대표자대회) 상무위원장을 지낸 뒤 2003년 정계를 은퇴했다.

총리와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모두 지낸 인물은 중국 현대사에서 리펑이 유일하다.

리펑은 1928년 10월 상하이에 있는 프랑스 조계에서 태어났다. 리펑의 부친은 공산 혁명 초기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무장투쟁을 벌이다 체포돼 참수당한 리옌쉰이었다.
◇ 리펑 저우언라이의 양자 : 리옌쉰은 건국 이래 죽을 때까지 총리를 역임해 ‘영원한 총리’라고 불리는 저우언라이와 ‘절친’이었다. 리펑은 아버지 사망 이후 저우언라이의 양자로 입양됐다.

맨 왼쪽이 저우언라이, 가운데가 저우언라이의 부인인 덩잉차오. 저우언라이와 덩잉차오 사이에 있는 인물이 리펑. - 바이두 갈무리
맨 왼쪽이 저우언라이, 가운데가 저우언라이의 부인인 덩잉차오. 저우언라이와 덩잉차오 사이에 있는 인물이 리펑. - 바이두 갈무리

당시 태자당이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그도 소련에 유학했다. 그는 모스크바 전력 공학원에서 전력 공학을 전공했다.

그는 귀국 후 양부 저우언라이의 후광을 업고 공산당 엘리트코스를 밟은 뒤 1987년 중국 최고 권력기관인 중앙당 정치국 상무위에 입성했다.

그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 맞서 ‘조롱(鳥籠,새장)경제’(시장을 새장에 가두는 방법으로 공산당이 경제를 통제해야 한다는 이론)를 주창한 보수파의 거두 천윈의 뒤를 잇는 보수파의 거물로 성장했다.

◇ 천안문 사건 강경 진압 주도 : 그러던 중 1989년 천안문 사건이 발생했다. 덩샤오핑은 5월 17일 공산당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정치국 상무위를 소집했다. 당시 상무위원은 다섯 명이었다.

1989년 천안문 광장 시위 - 바이두 갈무리
1989년 천안문 광장 시위 - 바이두 갈무리

그는 이 자리에서 계엄령 선포 여부를 다섯 명이 투표해 결정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덩의 집에 모인 인물은 자오쯔양, 리펑, 후치리, 차오스, 야오린이었다. 자오쯔양 혼자 계엄령에 반대했고, 리펑과 야오린은 찬성했다. 나머지 두 명은 기권했다. 보수파인 리펑 진영의 승리였다.

주도권을 쥔 리펑은 학생들의 시위를 난동으로 규정하고 강경 진압했다. 그는 5월 20일 CCTV에 직접 출연, 베이징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리펑 일파는 6월 3일 밤 인민해방군 27군을 동원, 천안문 광장의 시위 군중을 무차별 살상한 끝에 6월 4일 완전히 굴복시켰다.

이후 리펑은 천안문 학살의 주범 또는 원흉이라는 멍에를 뒤집어써야 했다.

천안문 사건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전형적인 민주화 운동 탄압이라는 지적과 함께 만약 중국 공산당이 시위를 진압하지 않았더라면 중국도 소련처럼 붕괴됐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삼협댐 건설 총사령관 : 리펑과 관련해 또 하나의 논란거리가 삼협댐이다.

리펑은 소련에서 전력 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전력공업부 부장(장관)을 지내는 등 대부분 전력 분야에서 복무했다. 그는 일찍부터 전력 부분에서 일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삼협댐 건설을 총지휘했다.

그러나 삼협댐은 환경파괴는 물론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삼협댐에 가둔 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지층이 변동해 최근 중국에서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삼협댐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리펑의 이력에서 볼 수 있듯 그는 중국 전력 산업의 ‘황제’였다. 그의 후광을 업고 그의 일가가 지금도 중국 전력산업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들 리샤오펑은 전력회사인 화넝그룹의 이사장을 맡은 뒤 2016년부터 교통부 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딸 리샤오린은 칭화대학과 MIT를 나온 뒤 아버지의 배경을 업고 전력회사를 설립, 중국 전력계의 황태자로 군림하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중국 정치 엘리트를 연구하고 있는 에드워드 프리드만 교수는 리펑의 생애와 관련,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리펑은 개혁개방을 반대하는 보수파의 거두였다. 그런데 그의 가족은 개혁개방으로 가장 큰 이익을 챙겼다. 지금도 리펑 일가는 중국의 전력산업을 지배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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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o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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