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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홍콩의 가치는 ‘자유’와 ‘자치’

(서울=뉴스1) | 2019-07-11 10:08 송고 | 2019-07-11 10:14 최종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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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여권만 있으면 홍콩 여행이 가능하다. 중국 당국의 비자를 받지 않아도 된다. 홍콩은 중국의 영토이지만 중국 본토와 다른 체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엔 중국 본토에 없는 서구 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있다. ‘자유’와 ‘자치’다. 영국 식민통치의 유산이다. 식민지 유산이 자유와 자치라니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사실이 그렇다. 중국은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돌려받을 때 50년간(2047년까지) 식민지 시대 시행했던 홍콩의 자치를 보장한다는 약속을 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유연한 통일정책인 일국양제(一國兩制), 즉 한 나라 두 체제를 홍콩에 적용한 것이다. 그 덕분에 국제사회는 홍콩을 마치 하나의 국가처럼 생각한다.

그 홍콩이 지금 두 달째 난리다. 소위 범죄 혐의자를 중국본토로 강제 송환할 수 있게 하는 송환법안에 반대하는 홍콩인들의 데모사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9일 100만 명이 시위에 참여한 이래 사태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주에는 일부 과격 시위대가 홍콩 입법원을 점검하는 사태로까지 악화했으나 홍콩인들은 마치 3년 전 한국의 촛불시위처럼 평화인 데모로 자제력을 발휘하고 있다.

송환법을 추진한 것은 중국 공산당 수뇌부가 홍콩의 최고 행정책임자로 세운 캐리 람 행정장관이다. 송환법 입법의 도화선은 홍콩의 한 청년이 여자 친구와 함께 대만여행을 갔다가 그 여자 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돌아온 살인사건이다. 람 장관은 그 살인혐의자를 대만으로 송환하기 위한 명분을 내세워 송환법을 추진했지만, 홍콩의 야당과 시민운동가들은 중국 공산당이 홍콩인들의 정치적 자유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항의 시위에 나섰고 홍콩 시민들이 대거 동조해서 거리로 나선 것이다.  

시위 중심세력은 송환법의 철회와 람 장관의 사임을 요구했다.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람 장관은 처음 송환법 추진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가 지난주에는 “송환법은 죽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안폐기와 장관직 사임 요구에 일체 언급을 피했다. 람 장관의 상전인 중국공산당 수뇌부가 데모대의 요구를 수용할 뜻이 없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송환법 반대 시위 사태는 사실상 홍콩 민주화세력과 중국 공산당의 힘겨루기로 서방 언론들은 분석한다. 이미 일부 데모군중의 요구에서 드러났지만 홍콩 시민의 요구는 단순한 송환법 폐기를 넘어 홍콩의 민주화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눈과 귀는 중국 공산당이 홍콩을 어떻게 손볼 것인지에 쏠려 있다. 최종 결정권을 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홍콩사태에 대해 아직까지 일체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다만 공산당 기관지가 2013년 시 주석의 언급, 즉 “이상과 신념이 흔들렸기 때문에 소비에트가 해체됐다”는 말을 최근 보도함으로써 홍콩사태의 확산을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비쳤다.

홍콩은 지금 뜨거운 감자다. 홍콩의 민주화세력의 관점에서 송환법은 일종의 자유를 억누르기 위한 ‘트로이 목마’다. 마찬가지로 중국공산당에게 자유와 보통선거를 통한 자치를 부르짖는 홍콩시민의 요구는 중국본토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트로이의 목마’로 비칠 것이다. 도전받는 권력은 상상을 넘어 무자비할 수 있다.  

홍콩은 중화 민족주의자들에겐 치욕의 상흔일 수 있다. 홍콩을 되돌려받음으로써 중국은 두 가지 큰 이득을 안았다. 우선 아편전쟁의 역사적 수모로부터 중화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했고, 홍콩에 자치권을 부여함으로써 중국의 평화적이고 화해적인 이미지로 국제무대에 서게 됐다. 그런 호의적 분위기에 힘입어 중국은 그토록 바랐던 세계무역기구(WTO)에 2001년 가입했다. 또 국제무역의 중심지이자 금융센터의 지위를 가진 홍콩은 중국에 경제적 이익의 창구가 되었다.  

22년 전 중국에 반환될 당시 홍콩의 경제력(GDP)은 중국의 5분의 1이나 됐고, 1인당 국민소득은 중국의 35배나 높을 정도로 번창했다. 그러나 당시 세계 7위였던 중국경제는 폭발적인 성장에 힘입어 2009년 일본을 따돌리고 미국과 함께 G-2국가로 도약했다. 홍콩의 경제력은 이제 중국의 30분의 1에 불과하다. 경제적으로 보면 옛날의 홍콩이 아니다. 중국은 과거와 같은 방식의 홍콩을 원치 않는다. 중국은 홍콩 대신 상하이를 금용센터로 키우고 싶어 한다.

중국은 본토에서 하는 것과 같은 자본주의 방식의 경제체제를 홍콩에서 유지하겠지만 정치와 사회는 서구식 자유를 허용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홍콩반환 이후 중국 공산당은 홍콩의 정치에 개입하고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홍콩의 경제적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것은 중국이 내심 바라는 일인지도 모른다. 홍콩을 중국공산당 체제로 편입하는 데 유리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인들의 불안은 이런 상황변화에서 더욱 증폭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홍콩의 경제적 지위는 상대적으로 약화되는데다 2047년이면 홍콩의 자치가 끝날 때 현재와 같은 번영과 자유를 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강박감이 클 것이다.

홍콩이 반환되던 1997년 태어난 홍콩인들이 22세의 청년이 되었다. 그 청년들이 이번 홍콩데모에서 검은 티셔츠에 마스크를 쓰고 데모대의 선봉에 섰다고 한다. 홍콩은 오랫동안 자유의 피난처였다. 홍콩 사태가 중국의 앞날, 더 나아가 아시아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바로미터인 것 같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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