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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천년의 문장, 그 거대한 상상력의 영토를 찾아서

[새책] 문장(紋章)과 함께하는 유럽사 산책

(서울=뉴스1) 김형택 기자 | 2019-07-09 15:21 송고
© 뉴스1

“왜 지금 중세 문장(紋章)인가?”라고 묻자, 지은이 중의 한 사람인 이찬규 숭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매혹’이라는 단어로 답한다. 무엇보다 중세의 기억과 조우하는 그 거대한 상상력의 영토에 매혹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상상력을 방사하는 그 예측불가능한 문장의 기억들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문장이 우리 삶과 동떨어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중세 유럽의 문장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축구팀의 엠블럼이 있다. 도시나 국가를 상징하는 엠블럼을 가슴에 달고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문장을 내세웠던 전쟁이나 마상 창 시합을 그대로 계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대학의 여러 심벌들 또한 문장의 규범과 형식을 따르고 있다. 문장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진 않지만 오늘날 자동차의 로고나 스타벅스와 같은 카페 로고도 중세 문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찬규 교수는 우리가 별다방이라고도 부르는 스타벅스의 로고가 왜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하는 ‘사이렌’이 되었는지 묻는다.

그러한 문장의 비밀스러운 상징들과 서사의 행간들을 알아가기 위해 불문학, 독문학, 영문학, 디자인을 전공한 이들이 뭉쳤다. 그리고 이들의 학제간 연구의 첫 번째 결실인 '문장과 함께하는 유럽사 산책'이 출간됐다.

이찬규 교수는 이러한 학제간 연구가 유럽뿐만 아니라 동양의 문장 연구로 확대되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후속 연구의 포부를 밝힌다. 책은 모습을 조금 달리했을 뿐 우리 곁에 여전히 살아있는 문장들이 어떻게 생겨났고 발전했는지, 또 어떤 과정을 거치며 변화했는지 살펴본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문장 속에 유럽 역사뿐 아니라 유럽인들의 인식 체계와 무의식, 인간 보편의 욕망까지도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알게 된다.

문장 연구는 “역사도 아니고, 문학도 아닌 데다 디자인도 아니다.” 하지만 문장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고대‧중세 언어 및 문학에서부터 동물지, 신화, 역사학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지식이 요구된다. 이처럼 다양한 학문에 걸쳐 있는 특성 때문에 지금껏 문장 연구는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웠고, 이 책 역시 국내에서 처음 저술된 문장 관련 소개서다.

문장은 흔히 귀족이나 왕가의 소유물로 여겨지지만,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지역에서는 계층과 성별을 초월해 누구나 문장을 착용할 수 있었다. 상인과 장인들 또한 문장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계층이었다. 식육업자들은 큰 식도를, 재단사 길드는 가위를 문장에 넣어 직업을 표시했다. 문맹률이 높았던 당시에 문장은 간판처럼 활용되기도 했고, 오늘날 기업 로고처럼 브랜드로서 자신의 길드를 고급화하고 알리는 데 썼다.

왕과 귀족들은 권력을 정당화하고 유지하기 위해 가문의 역사와 전통을 문장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이에 따라 문장은 식별 기능보다 상징적 기능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단순한 기하학적 무늬를 사용하던 것에서 전설적인 동물 혹은 인물 등을 넣거나, 두 개의 문장을 합성하면서 패턴이 복잡해졌다. 중세 영국을 배경으로 한 HBO의 드라마 '왕좌의 게임'이나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 소설에서 우리가 수많은 문장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경화 외 5인 지음 / 글항아리 펴냄 / 1만7000원

중세에 문장을 관리하던 문장관 의복의 변천사. (글항아리 제공)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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