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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독재하면 앞장서서 타도"…'DJ동반자' 이희호 어록

[이희호 여사 별세] '구사일생' 남편에 "더 강한 투쟁" 주문 …때마다 '버팀목'
"하루를 살더라도 바르게"…'행동하는 양심' 정치적 신념 지켜줘

(서울=뉴스1) 김민석 기자 | 2019-06-11 11:04 송고 | 2019-06-11 23:52 최종수정
1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에 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이 여사는 지난 10일 97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2019.6.11/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10일 향년 97세로 별세한 이희호 여사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대한민국의 '퍼스트레이디'이기 전에 김 전 대통령과 함께 긴 고난의 세월을 지나온 민주화 투쟁 '동지'이자 '조언자'였다. 또 '1세대 여성운동가'로 여성의 권익 향상에 이바지한 삶을 살았다.

그렇기에 이 여사가 남긴 어록에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굴곡 속에서 김 전 대통령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버팀목 역할을 한 정신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 여사가 남긴 말이다.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

이 여사의 말은 김 전 대통령이 1971년 신민당 후보로 첫 대선을 도전할 당시부터 남달랐다. 이 여사는 찬조연사로 전국을 돌며 "만약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며 남편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이 여사는 남편의 안위가 걱정돼 기도로 밤을 새우면서도, 독재자와 싸우기를 중단하라거나 민주주의 투쟁을 포기하라고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김 전 대통령의 투쟁을 지원하고 독려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향년97세)가 10일 별세했다. 사진은 1998년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5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국민의례하는 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새정치연합 전북도당 제공) 2019.6.10/뉴스1

◇"당신만이 한국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으니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

1972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 쿠데타를 일으키자 이 여사는 이 여사는 일본에 머무르던 남편에게 "현재로서는 당신만이 한국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정부에서는 당신이 외국에서 성명 내는 것과 국제적 여론을 제일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특히 미워하는 대상이 당신이므로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고 편지로 독려했다.

1973년 이른바 '김대중 도쿄납치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이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된 인생의 큰 시련이 왔다. 이때도 이 여사는 포기를 권하지 않았다. 김대중 도쿄납치사건이란 김 전 대통령이 도쿄에서 괴한 5명에게 납치돼 죽을 뻔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미국 정부에 배의 위치가 알려져 김대중은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하루를 살더라도 바르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이겠습니까."

김 전 대통령이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이 여사는 외신에 “우리의 남편들이 한 일은 양심적이고 애국적인 일이었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당당히 일하다가 고난을 받는 우리의 남편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77년 징역 5년이 확정돼 진주교도소로 이감됐다. 이 여사는 수백 통의 편지를 보내며 옥바라지를 했다. 이 여사는 편지에 “하루를 살더라도 바르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이겠습니까. 그렇기에 우리들은 당신의 고통스러운 생활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떳떳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라고 썼다. 

◇"당신의 생이 평탄하지 않기에 더욱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김 전 대통령의 역경은 1980년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 극한으로 치닫는다. 이 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은 사형을 선고받는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고초를 겪는 상황에서 신념과 의지를 굳건히 지켜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 여사는 편지를 통해 "당신의 생이 평탄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더욱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당신은 언제나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바르게 살기 위해 발버둥 쳤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유난히 강했습니다. 그래서 받은 것이 고난의 상입니다"라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 이 여사에 대해 "우스갯소리로 나는 늘 아내에게 버림받을까봐, 나 자신의 정치적 지조를 바꿀 수 없었다고 말하곤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이자 영원한 동반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밤 향년97세로 별세했다. 이 여사는 그간 노환으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오다 이날 병세가 악화돼 오후 11시37분 끝내 눈을 감았다. 사진은 2016년 9월 7일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이희호 여사. (뉴스1 DB)2019.6.10/뉴스1

◇"평화와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이 여사는 2009년 8월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맞았을 땐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국민들에 전했다. 국장 운구 행렬이 서울광장에 잠시 멈춰선 동안 단상에 오른 김 여사는 "제 남편은 일생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많은 오해를 받으면서도 오로지 인권과 남북의 화해, 협력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권력의 회유와 압력도 있었으나 한 번도 굴한 일이 없습니다"라고 고인을 회고했다.

이 여사는 "제가 바라옵기는 남편이 평생 추구해온 화해와 용서의 정신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것이 남편의 유지입니다"라고 당부했다.

이 여사는 '이희호 평전'을 통해 김 전 대통령과의 한평생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정말 서로 인격을 존중했어요. 늦게 결혼했고 결혼할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참 좋은 분을 만나서 내 일생을 값있고 뜻있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ideaed@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