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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성과 야당 정치인의 만남…DJ와 러브스토리

[이희호 여사 별세] 생애 마지막까지 정치적 동반자

(서울=뉴스1) 강성규 기자 | 2019-06-11 07:00 송고 | 2019-06-11 23:50 최종수정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향년97세)가 10일 별세했다. 사진은 1998년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5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국민의례하는 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새정치연합 전북도당 제공) 2019.6.10/뉴스1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희호 여사가 10일 별세한 가운데, 엄혹한 시절 맺어진 여성운동가와 젊은 야당 정치인의 러브스토리도 다시 회자되고 있다.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는 지난 1962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김 전 대통령에겐 이 여사가 두번째 부인인데, 김 전 대통령의 첫째 부인인 차용애 여사는 1959년에 병사했다.

이 여사가 김 전 대통령과 결혼을 하겠다고 밝히자 지인들은 통탄을 금치 못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이 여사는 이화여자전문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뒤 운동에 투신한 '엘리트 여성운동가'였던 반면, 김 전 대통령은 장래가 보장되지 않은 야당 '정치신인'인데다 슬하에 자식이 이미 둘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과의 결혼을 결심한 계기에 대해 "잘 생겼잖아요"라고 농담조로 밝힌 바도 있지만 '진짜 이유'는 김 전 대통령이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어서였다.

이 여사는 언론 인터뷰 등에서 "이 사람을 도우면 틀림없이 큰 꿈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여사와 김 전 대통령은 1951년 부산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6·25전쟁통 한가운데 피란지인 임시수도 부산에서 첫 대면을 한 것이다.  

여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이 여사가 소속된 '대한여자청년단'의 간부 김정례가 서울 피란민들을 인천으로 후송하는 활동을 했는데 수소문한 배의 주인이 바로 김 전 대통령이었다. 이후 김정례와 김 전 대통령의 만남에 여자청년단 간부로 활동하던 이 여사도 동석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첫인상을 '핸섬한(잘생긴) 멋쟁이' '책을 많이 읽고 아는 것이 많은' 남자로 기억했으며, 김 전 대통령은 이 여사에 대해 '이지적 눈매를 지닌 활달한 여성'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여사가 2살 연상인데다 공부를 많이 한 인텔리 여성인 만큼 오히려 자신이 주눅들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상할 만큼 말이 잘 통한다'는 느낌을 공통적으로 받았다고 한다.

두 사람이 재회한 것은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난 1960년이었다. 잇따른 낙선과 가난, 설상가상 첫번째 부인까지 먼저 떠나 보내며 인생의 시련기를 겪고 있던 김 전 대통령은 대한YWCA에서 총무로 일하던 이 여사로부터 조언과 지지를 얻기 위해 용기를 내 서울 명동 YWCA사무실을 찾았다.

워낙 '통하는' 사이다 보니 이후 두 사람은 자주 만남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당시 이들은 만나 주로 정치, 정국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등 연인보다는 '정치적 동지'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러다 서서히 또 자연스레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 함께 하고픈 마음이 커졌고 재회 2년뒤 결혼으로 이어졌다. 이 전 여사는 당시를 회고하며, 이 사람과 혼인하겠다고 진작 결심했지만 "저쪽(김 전 대통령)에서 청혼을 하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고 이희호 여사와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해 6월14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18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2018.6.14/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결혼 이후 여성운동가에서 김 전 대통령을 물심양면으로 내조한 정치인의 아내가 된 이 전 여사의 '변모'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김 전 대통령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이 여사의 인생행로 전체를 흔들어' 버렸다.(김대중평화센터, 이희호 여사 생애 소개)

박 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었던 김 전 대통령은 71년 대선 패배 이후 망명·납치·구금·연금 등 정치적 고초를 겪었고, 이 여사의 인생 또한 가시밭길이 펼쳐졌다.    

수감 중인 남편에게 차입하는 옷은 속옷까지도 다려넣을 정도로 헌신적이었던 이 여사의 내조 중에서도 김 전 대통령에게 가장 격려가 됐던 것은 편지였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옥중에 있을 동안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편지를 썼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이 우여곡절 끝에 1997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이 여사의 영향으로 여성가족부의 모태가 되는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출범하는 등 이 여사는 여성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다시 보여주기도 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김대중평화센터의 이사장으로 활동하는 등 생애 마지막까지 인생의, 그리고 정치적 '동반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ykjm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