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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메이' 막으려면 동물실험 제도 보완 시급…윤리위 '유명무실'

"동물실험 매년 증가하는데 관리 인력·제도 그대로"
가장 중요한 '연구자의 윤리의식'…사회적 책임 물어야

(서울=뉴스1) 김연수 기자 | 2019-06-03 16:19 송고
복제 사역견 '메이'는 숨지기 전 앙상하게 마른 몸으로 사료를 허겁지겁 먹다 코피를 쏟기도 했다. (사진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 뉴스1
복제 사역견 '메이'는 숨지기 전 앙상하게 마른 몸으로 사료를 허겁지겁 먹다 코피를 쏟기도 했다. (사진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 뉴스1

청와대가 논란이 됐던 퇴역 탐지견들이 더이상 동물실험에 활용되지 않도록 농림축산검역본부로 이관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동물실험윤리위원회(IACUC·이하 윤리위)가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관련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는 3일 '동물실험에 이용되고 있는 퇴역 검역탐지견 구조해달라'는 청원에 대해 "퇴역 탐지견들의 건강은 양호한 상태로 현재 농림축산검역본부로 이관하는 방안을 대학과 협의 중"이라고 답변했다. 

이번 청원은 농림축산검역본부의 검역탐지견으로 일하던 복제견 메이, 페브, 천왕이가 서울대에서 동물실험에 이용됐고, 이 가운데 살아있는 페브, 천왕이를 구조해달라는 내용이다. 청원은 지난달 15일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의 답변을 받을 수 있는 '20만명 이상 동의' 요건을 충족했다. 

◇ 한 해 수천 건 동물실험 계획서…1개 윤리위에서 검토

전문가들은 이같은 논란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윤리위 위상을 강화하고 관련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 역시 윤리위 제도 보강을 위해 △윤리위 산하의 사전 검토를 위한 전문위원 도입 △윤리위 인원 제한 철폐 △사역견 동물실험 금지 △위원회 행정력 보강 등의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동물실험시행기관의 장은 윤리위를 설치·운영 하도록 하고 있다. 윤리위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해 3~15명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하며, 객관적 평가를 위해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 3분의 1 이상 포함돼야 한다. 윤리위는 해당 기관에서 수행하는 동물실험을 사전에 심의하고, 실험동물의 보호와 윤리적 취급을 위해 필요한 조치 요구 등을 할 수 있다. 동물실험을 하려면 반드시 윤리위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문제는 윤리위가 검토해야 할 동물실험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지난해 4월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발표한 '2017년 동물실험 및 실험동물 사용 실태 보고'에 따르면 2017년 국내 동물실험 기관에서 사용된 동물들은 약 308만 마리에 달한다. 2013년 196만 마리였던 것과 비교해 112만 마리가 증가한 것이다. 위원회 설치기관 수 및 운영률도 13년 342개소(88.2%)에서 16년 384개소(91.9%)로 매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위원회 운영 현황 분석 결과 기관당 회의 개최 횟수는 감소했다. 결국 윤리위가 한번 열리면 더 많은 동물실험을 심사하는 셈이어서 '부실 심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국내 대학 중 가장 많은 동물실험을 하는 서울대의 경우 한 해 평균 1400여건의 동물실험이 이뤄진다 . 재심의 계획서를 포함한다면 윤리위에서는 더 많은 양을 처리해야 한다. 그동안 서울대는 한 명의 계약직 직원이 모든 계약서를 검토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 해외선 수의사가 동물실험 검토, 국내는 34% 불과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은 윤리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일종의 '실행기구'로서 전임 수의사를 두고 △수의학적 처치와 관리 △동물실험의 윤리성 검토 △연구자들의 안전 관리 등을 담당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등록된 동물실험기관 중 수의사를 고용한 기관이 34%에 불과하다.

10년 전부터 실험동물 복지 개선을 위해 활동해 온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우리나라의 동물실험 관련법은 세부 사항이 없는 선언적 수준이라며 보다 구체화한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영국의 경우 내무성 소속, 수의사 등 20~30여 명의 전문가로 이뤄진 동물실험 관리·감독 기관이 별도로 있고, 실험동물 관련 생산자, 공급자, 연구자 모두 실험동물 의학 전문 수의사를 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미국은 각 실험시설에 수의사를 정식고용하고 자문 역할 등의 파트타임으로 고용할 경우 수의학적 관리 계획과 정기적인 방문 계획이 고용 내용에 포함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한국은 '윤리위제도'가 완벽한 제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실험동물의 복지를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책무는 없이, 오직 기관의 자율에 맡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임 수의사의 의무고용, 연구자가 지켜야 할 세부사항, 실험동물 공급업체가 지켜야 할 복지기준 등이 전혀 법에 명시돼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기관마다 설치된 윤리위의 구성원들이 성향, 역량이 달라 '일관성'이 없는 것 △비전문가 위원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은 것 △윤리위의 현장 점검은 의무가 아닐 뿐만 아니라 법적 가이드대로라면 반기별에 한번, 전체가 아닌 일부를 선정해 사전 고지 후 진행되는 것 등을 윤리위의 한계로 지적했다. 이 때문에 윤리위의 승인이 곧 윤리적인 실험을 보장할 수 없으며, 윤리위 본래 기능조차 기대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은 강제성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떤 법이든 꼭 필요한 부분은 법으로 규정하는 것처럼, 가장 기본적인 것은 시행규칙이나 고시들로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도 윤리위에 위임만 해놓을 것이 아니라 일정 인력을 확보해 현장 점검만을 담당하는 기구를 설치하고, 연구비만 수십억인 국가연구는 국가기관이 처음부터 윤리성을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도 윤리위 체제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20~30년 전부터 국가사업에 연구비를 신청하기 전 해당 기관의 윤리위에서 사전에 해당 연당 연구의 동물실험 계획이 타당한지를 검토하고, 승인을 하면 연구비를 국가에 신청할 수 있다. 반면 국내의 경우 각자 연구비 신청이 이미 끝난 상태에서 실제 동물을 구입할 때 윤리위가 검토를 한다. 이렇다 보니 연구비가 큰 사업의 경우 윤리위에서 승인을 거부하기가 어렵다.

윤리위 구성에 있어서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우 교수는 "윤리위는 대학본부에 소속된 기관이다 보니 사람을 뽑을 때 본부에서 기존 평판 같은 것으로 임명하는 경우가 많다"며 "때문에 단과 대할별 연구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동물 윤리 의식이 없는 사람이 간혹 위원이 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실험동물 관련법이 좀 더 엄격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연구의 자율을 보장한다며 현재 관련 법이 너무 느슨하게 돼 있는데, 동물의 '생명권'이라는 점에선 좀 더 엄격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며 "결국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법안을 발의하는 국회의원들의 관심이 필요한데, 그동안 수의학계와 시민단체들이 그 필요성을 계속 제기 했지만 의원들이 지역적 문제가 아니어서 그런지 끝까지 제도화로 연결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아무도 묻지 않는 '수의학자'로서의 생명 윤리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커뮤니티 사이트 캡처© 뉴스1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커뮤니티 사이트 캡처© 뉴스1

# "정말 이 일이 서울대 내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게 유감입니다. 학자로서 중요한 연구윤리 위반(데이터 조작, 검역 기관 유착)뿐 아니라, 생명존중이라는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가치조차 상실하고 얻는 출세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수의대 교수진 일부와 이병천 교수 및 그 연구팀에 묻고 싶네요"

# "이병천 교수에 대한 그것이알고싶다 방송은 '동물실험이 숭고한 과학 연구가 아닌 이윤이 얽혀있는 경제시스템'이라는 것을 역력히 보여준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글들이다. 이번 논란은 서울대학교 학생들과 교수들 사이에서도 큰 충격을 줬다. 하지만 동물 학대, 사역견 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정작 '수의학자'로서의 생명윤리 의식, '교수'로서의 자질 문제 등은 등한시 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 대표는 현실적으로 모든 동물실험을 감독할 수 없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연구자의 윤리성이라고 말한다. 이번 논란에 있어 다른 곳도 아닌 동물의 건강과 질병을 연구하는 '수의학과'에서 기본적인 의무를 다하지 않아 동물이 폐사에 이른 것은 정말 심각한 사안이라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아직 경찰 수사 결과를 기다려봐야 알겠지만, 조사위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할 때 이 교수가 동물학대로 처벌 받을 가능성은 현 동물보호법 상 낮을 것"이라며 "하지만 그렇다고 괜찮은 것이 아닌 오히려 동물보호법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의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수의학적 관리를 못해 개를 폐사에 이르게 한 것은 잘 알지 못해서 병든 동물을 치료하지 않고 키우는 것과 차이가 있는 것. 결국 '최소한의 관리 책임(Minimal care)'을 다 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실험실에서 동물을 관리하는 담당자가 밥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결국 실험하는 동물이 건강하게 관리되는지의 최종적인 책임은 연구자에게 있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 서울대 동물실험 파장은 '빙산의 일각'…우리사회 '윤리불감증' 문제 보여줘

우 교수는 이번 논란이 된 것은 빙산의 일각으로,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기본적인 '윤리 불감증', '학문 윤리에 대한 무감각'이 존재한다며 종합적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차피 인간중심 사회에서 동물은 약자이고 수의학은 그런 약자인 동물의 생명을 돌보고 건강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라며 "그런데 사실 수의학의 흐름이 보건의료의 한 분야로서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이 자리 잡은 것은 10년 내"라고 말했다. 20년 전까지는 수의과 대학이 4년제였고 축산의 일부인 형태로 자리 잡아 그 당시의 생각으로 여전히 '생산성'에 초점을 두고 있는 이들이 많고, 일부 학자들은 지금의 수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생명 인식의 차이가 크다는 설명이다. 그가 생명,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의 공유,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러면서 우 교수는 또 다시 우리 사회에 이런 일이 발생되지 않으려면 학계 내부적인 자정 기능과 정부부처의 문제 의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 교수는 "연구에는 국가 지원이 필요한데 연구윤리 문제가 제기된 사람에 대해서는 연구비는 제한하는 게 당연하건만, 이번에 사회문제가 된 복제동물 연구의 출발에서부터 과거 논문조작 등으로 황우석 박사와 함께 서울대에서 파면된 강성근 박사가 협력과제 책임연구자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수십억씩 연구비를 지원한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며 "결국 공공성이나 객관성 보다 인적인 유착 관계가 더 작동하는 문화가 이면에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정부 부처의 문제 의식, 연구비를 투자해 빨리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려는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결국 학계의 건강한 문화를 저해하고,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라는 자세가 계속 나오게 될 것"이라며 "동물복지나 생명윤리에 소홀한 연구자들에 대해서는 학계는 물론 정부 연구비 제재 등의 자정 기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yeon7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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