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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는 있는데 증거가 없다?' …'제주판 살인의 추억'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2018-12-21 12:01 송고
영화 '살인의 추억' 포스터. © News1
영화 '살인의 추억' 포스터. © News1
경찰이 9년만에 재수사하고 있는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은 도내 대표적인 장기 미제 사건이다.

제주경찰은 2006년 9월 소주방 50대 여주인 살인사건, 2007년 9월 40대 주부 살인사건, 2009년 2월 어린이집 보육교사 살인사건을 도내 3대 미제사건으로 꼽는다.

9년 전인 2009년 1월31일 어린이집 보육교사 이모씨(27·여)는 저녁에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신 뒤 다음날 오전 2시50분쯤 제주시 용담2동에 있는 남자친구 집으로 향했다.

10분 후 남자친구와 다툰 뒤 집을 나온 이씨의 휴대전화는 오전 4시4분 애월읍 광령초 기지국에서 전원이 꺼진다.

2월2일 오전 9시10분 이씨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가족들의 실종신고가 경찰에 접수된다. 이씨의 차는 시청에서 조금 떨어진 무료주차장에서 발견됐다.

실종 신고 하루만에 공개수사로 전환한 경찰은 실종자를 찾는 전단을 배포하는 한편 수색에 돌입, 6일 피해자가 발견된 애월읍과는 반대방향인 아라동 모 복지관 인근 도로 옆 밭에서 이씨의 가방을 찾는다.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던 가족과 도민들의 바람과 달리 이씨는 8일 오후 1시50분 이씨는 애월읍 고내봉 인근 배수로에서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된다.

수사는 난항에 빠졌다. 정황상 용의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9년 후 두번째 구속영장이 신청된 택시기사 박모씨(49)도 그 가운데 한명이다.

하지만 뚜렷한 물증이 없었다. 시신과 가방은 비에 젖어 증거 확보가 더 어려웠다.

시신이 발견된 곳에서 수집한 담배꽁초 20여개에서 DNA를 검출, 택시기사 등 수백명의 DNA와 대조했으나 일치하는 것이 없었다.

결국 사건이 해결되지 못하고 2012년 6월5일 수사본부가 해체된다.

특히 수사의 가장 기초단서인 사망시간마저 의견이 엇갈렸다.

부검의는 부패가 없고 시신의 직장체온이 대기온도보다 높다는 등의 이유로 사망시간이 사체 발견일에서 최대 24시간 이내라는 부검결과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씨가 실종 당일 사망했다는 여러 정황이 있었다. 2월3일에서 2월8일까지 비가 오지 않았지만 시신이 젖어 있었고 위장 속에 소화되지 않는 음식물과 혈중알코올농도, 2월1일 오전 4시4분 이후 휴대전화 사용 내역이 없다는 점 등이 그렇다.

정확한 범행 시간도 추정하지 못한 채 사건을 종결했던 경찰은 2015년 일명 '태완이 법' 이후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된 뒤 2016년 3월 장기미제사건 전담수사반을 꾸렸다.

경찰은 올해 동물 사체 실험을 통해 범행 시간을 피해자가 실종된 당일로 추정하고 9년 전 피해자가 탔던 택시 운전기사 박씨를 범인으로 지목, 지난 5월 체포해 법원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특히 박씨와 피해자가 입었던 사건 당시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옷의 미세섬유가 유사하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사건 이후 제주를 떠나 다른 사람 명의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별다른 의료기록 조차 남기지 않는 등 박씨의 행적도 수상하게 여겼다. 2015년부터는 주민등록도 말소된 상태였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경찰이 제시한 증거가 DNA 처럼 직접적인 증거로 보기 어렵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경찰은 7개월간 기존 미세섬유 증거를 보강하고 과거 CCTV 화질도 개선해 구속영장을 재신청했다.

만약 법원이 이번에도 영장을 기각하면 이 사건은 다시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구속이 결정되면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k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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