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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양보는 없었다"…'광주형 일자리' 무산 직전

한국노총 계열 광주 지역노조 합의안 뒤집어
민주노총 계열 현대·기아차 노조는 원천봉쇄 파업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2018-12-06 15:49 송고 | 2018-12-06 20:01 최종수정
현대차 울산공장 생산라인의 모습. (뉴스1 DB)  © News1

한국 자동차 산업의 고질적 병폐인 '고비용 저생산성'을 해소해 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노동계의 잇단 변심으로 타결 목전에서 무산 위기에 직면했다.  

협상 전권을 광주시에 위임하겠다던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한 지역 노동계가 5일 '임금·단체협약 유예' 조건을 반대하면서 광주형 일자리는 원점으로 회귀한 모양새다. 현대자동차는 광주시의 수정안에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사업이 무산될 경우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했던 노동계를 향한 책임론이 불거질 전망이다.

광주형 일자리의 애초 취지는 한국 특유의 대립적 노사관계를 상생형 노사관계로 바꿔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것이다. 임금을 기존 업계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는 대신 광주시가 주택과 교육, 의료 등의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투자협약 논의 과정에서 노동계의 목소리가 커졌고 협상 쟁점은 어느덧 임금과 단체협약이 돼버렸다. 임단협 협상 불발에 따른 강성노조의 파업, 이로 인한 생산성 저하 등 해마다 반복되는 자동차 산업 현장의 한 단면을 미리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국내공장 파업에 시달리고 있던 현대차는 임단협 유예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광주 완성차 공장에 투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임단협 협상은 법에 따라 진행하더라도 애초에 합의한 주 44시간, 초임 평균 연봉 3500만원 등의 근로조건은 누적 생산 대수 35만대 달성 기간까지는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정적인 공장 가동이 이뤄지기도 전에 합의한 근로조건이 계속 변경되면 인건비 등 고정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공장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광주 공장에서 위탁 생산하려는 1000cc 미만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마진이 낮아 생산비용을 낮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근로조건에 따른 갈등이 발생하면 공장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자동차 산업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깨트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사 상생이 필요한데, 광주형 일자의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노동계의 요구는 이를 가로막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기존 자동차 공장 노조가 기득권을 쥐려는 모습과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협상 과정에서 노동계가 임단협 유예 조건을 자꾸 뒤집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을'이지만, 실제 귀족 노조가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는 모습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기조가 유지된다면 결국 공장 생산성 하락을 불러오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체기'에 접어든 국내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서는 합리적인 임금으로 자동차를 생산하는 광주형 일자리 모델과 같은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이에 기업이 안정적인 투자를 이어갈 수 있도록 노동계가 근로조건 등에서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향후 추가적인 노사상생형 일자리가 만들어질 때 이 같은 노동계의 행태가 반복되면 취지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국내 경차 시장이 점차 쪼그라들며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경차 시장은 지난 2012년 20만대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13만대를 기록하는 등 감소 추세다.

새로운 사업 모델이라 가뜩이나 수익성 확보를 담보하기 어려운데 안정적인 공장 가동을 방해할 수 있는 요인이 있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 가치가 낮다는 게 자동차 업계 중론이다.

약 6개월 동안 이어진 협상 과정에서 노동계의 요구에 따라 광주시의 투자협상안이 달라지는 등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는 것 역시 기업 입장에서는 불안한 요소다. 공장의 운영 주체가 될 광주시가 향후 기존 노조의 입김에 휘둘릴 여지가 남아 있어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만약 광주 공장의 수익성이 떨어지면 감원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면 노조도 만들어지고 더 강한 투쟁이 생길수 있다. 기존 노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계열인 현대차 노조도 광주형 일자리를 '나쁜 일자리'로 규정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은 수출 감소 등으로 이미 공급과잉 상태라는 것이다. 내년부터 현대차 울산 3공장에서 연간 10만대 규모의 경형 SUV가 생산되는데 광주 공장 생산량까지 추가되면 공급량이 너무 많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현대차 노조가 반대하는 배경 일각에는 기득권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임금·저생산성 비판을 받던 기존 노조 입장에서 합리적인 임금으로 차를 생산하는 공장이 설립되면 입지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현대차 노조는 사업 타결을 견제하기 위해 6일 주야간 2시간씩 총 4시간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통해 노동 3권을 침해하는 광주형 일자리 합의는 폐기돼야 한다며 국제노동기구(ILO) 제소를 검토하겠다는 입장도 전했다. 이는 광주형 일자리의 최대 걸림돌은 양노총 계열의 노조이고, 사업이 끝내 무산될 경우 비난의 화살은 노조로 향할 수밖에 없다.


cho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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