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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걸린 백혈병 피해보상 합의…삼성전자 공식사과

(종합2보)김기남 삼성전자 사장 "중재안, 조건없이 성실히 이행"
김지형 전 대법관이 위원장 맡아 지원보상 실무작업 개시

(서울=뉴스1) 장은지 기자, 주성호 기자, 류석우 기자 | 2018-11-23 10:50 송고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철거 중인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시민단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농성장에 황유미씨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로 1023일간 지속된 농성은 지난 24일 삼성전자가 조정위의 중재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히면서 갈등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2018.7.25/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지난 11년간 사회적으로 깊은 상처를 남긴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사태에 대해 삼성전자가 공식 사과했다. 피해자 측과 합의한 보상 및 지원도 이행한다.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사장)는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삼성-반올림 중재판정이행합의 협약식'에서 "소중한 동료와 그 가족들이 오랫동안 고통 받았는데 삼성전자는 이를 일찍부터 성심껏 보살피지 못했다"고 그간의 과오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 아픔을 충분히 배려하고 조속하게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며 "조정위원회가 발표한 중재안을 조건 없이 수용해 이행하겠다"고 했다. 삼성전자 대표이사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직업병과 관련해 기자회견 방식으로 사과한 것은 2014년 5월 권오현 회장(당시 DS부문장) 시절 이후 4년 6개월여 만이다.

이날 협약식에는 피해자단체인 '반올림' 측에서 황상기 대표와 피해자 및 가족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고용노동부·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 정부 및 공공기관 관계자와 심상정 정의당 의원, 이정미 정의당 대표, 우원식, 한정애 더불어 민주당 의원 등도 자리했다. 고(故) 황유미씨의 부친 황상기 반올림 대표는 "제 딸 유미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게 되어 기쁘지만 그간의 아픔을 잊을 수는 없다"며 "노동자 혼자서 회사의 안전보건을 살펴보고 다른 의견을 내기는 어렵기에 대기업들은 솔선해서 안전보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심상정 의원은 축사에서 "만시지탄이지만, 이번 합의는 우리사회의 귀중한 사회적 합의 모델로 기억될 것"이라며 "이번 합의가 이윤보다 생명이 먼저인 기업윤리를 확립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날 협약식에서 삼성전자는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 발생한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가 내놓은 중재안을 성실히 이행한다는 약속을 밝혔다. 삼성전자와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 합의한 피해 보상업무를 위탁할 제3의 기관은 법무법인 '지평'으로 정했고, 지원보상위원회 위원장은 조정위원장을 맡아 중재안을 만든 김지형 전 대법관이 맡는다. 삼성전자가 별도로 출연하는 산업안전보건 발전기금 500억원을 기탁할 기관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 정했다.

지난했던 조정과 중재는 이날로 마침표를 찍었다. 앞으로는 합의사항대로 지원보상 절차가 개시된다. 지원보상업무를 총괄하게 된 법무법인 '지평'과 김 위원장 측은 "조속한 시일 내 피해자 지원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곧바로 지원보상 사무국 개설과 지원보상위원회 구성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김 전 대법관 측은 조정위 위원장에 이어 지원보상위원회 위원장을 맡은데 대해 "처음엔 고사했으나 삼성과 반올림 양 당사자가 간곡히 요청함에 따라 합의정신을 존중해 위원장직을 수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금 운영을 맡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측도 "내부논의와 정부 협의를 거쳐 전자산업 등 안전보건 예방을 위한 연구개발 및 전문서비스 개발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문송면·원진 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조직위원회'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반올림), '민중공동행동'이 4일 오후 6시 서울 서초구 삼성서초사옥 앞에서 '삼성 포위의 날' 집회를 열고 삼성 전제부품 제조 공정과 근로자의 백혈병 등 질환이 연관있음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2018.7.4/뉴스1© News1 최동현 기자


11년만의 사태 해결은 피해보상에 대한 양측의 극적 합의로 가능했다. 어렵게 양측이 합의한 중재안은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보상 범위를 확대한 것이 핵심이다. 삼성전자 최초의 반도체 양산라인인 기흥사업장의 제1라인이 준공된 1984년 5월17일(기흥 1라인 준공시점)이후 반도체나 LCD 라인에서 1년 이상 일한 삼성전자 현직자 및 퇴직자 전원과 사내협력업체 현직자 및 퇴직자 전원을 대상으로 정했다. 지원보상 기간은 1984년 5월17일부터 2028년 10월31일까지로 했다. 그 이후는 10년 후 별도로 정하기로 했다.

지원보상 범위는 백혈병, 비호지킨림프종, 다발성골수종, 폐암 등 16종의 암으로 지금까지 반도체나 LCD 관련 논란이 된 암 중에서 갑상선암을 제외한 거의 모든 암을 포함하기로 했다. 희귀암 중에서 환경성 질환은 모두 포함하며, 다발성 경화증, 쇼그렌증후군, 전신경화증, 근위축성측삭경화증 등 환경적 요인에 의해 발병한다고 알려진 희귀질환 전체도 포함했다.

지원 보상액은 백혈병은 최대 1억5000만원이며, 사산과 유산은 각각 1회당 300만원과 100만원으로 정해졌다. 조정위 측은 "이번 중재의 기조는 반도체 및 LCD 작업환경과 질병과의 인과관계에 있어서 어느 정도 불확실성을 전제로 하여, 피해자 구제를 최우선으로 하기 위해 개인별 보상액은 낮추되, 피해 가능성이 있는 자를 최대한 포함하기 위해 보상범위를 대폭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태는 2007년 3월 삼성 반도체3라인에서 근무하던 고(故) 황유미씨의 안타까운 사망으로 불거졌다. 2008년 3월 '반올림'이 만들어졌고 이후 반도체 생산라인에 대한 역학조사가 진행됐다. 2012년 11월부터 삼성전자의 제안으로 2년여간 반올림과의 대화가 이뤄졌으나 뚜렷한 진전이 없었다. 이에 2014년 10월 삼성전자와 반올림, 가족대책위원회가 조정위원회 설치와 조정안 위임을 결정, 진보 성향의 김지형 전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은 조정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했다.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 의심 당사자와 보상 협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합의 노력이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대표이사 명의 사과와 자체 보상안을 발표했으나, 반올림과 일부 피해자의 반발로 삼성전자의 자체 보상안 거부 사태가 벌어지며 합의노력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다 2018년 1월 김지형 위원장은 삼성과 반올림 양측으로부터 합의 노력을 재개하고 싶다는 입장을 전달받았다. 위원회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이 실시한 지원·보상방안을 검토하고 양측의 쟁점과 요구사항을 다시 파악했다. 이를 통해 기존 조정방식으로는 합의를 끌어내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양측이 조정위원회가 제시하는 중재안을 조건 없이 수용하기로 사전에 합의하는 방식을 제안한 것이다. 양측이 지난 7월 조정안 마련에 전격합의, 사태해결에 물꼬를 열었다.

김지형 조정위원장은 "고통과 갈등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고통과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며 "서로 다른 입장과 가치에 대해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어나가면서 화해를 위한 불씨를 키워 나갈 때 우리는 치유에 이를 수 있으며, 이번 조정과 중재절차가 바로 그것을 보여준 하나의 전형이 됐다"고 평가했다.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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