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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기업 '비콥 인증' 관심 많아, 이젠 착해져야 '롱런'한다"

[착한기업, 세상을 바꾼다⑧][인터뷰] 정은성 비콥 한국위원장
대기업 '단순 이익'(Profit) 아닌 '사회적 유익'(Benefit) 찾아야

(성남=뉴스1) 송상현 기자 | 2018-11-26 07:05 송고 | 2018-11-26 10:47 최종수정
편집자주 10년 전 전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는 자본주의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인류 경제사의 대전환점이었다. 월가는 '아큐파이(Occupy)'를 외친 시위대에 점령됐고, '신(新)자유주의'는 파산을 고했다. 기업도 큰 위기를 맞았다. 돈벌이에 매몰돼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환경 문제를 방관한 원흉으로 지목됐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4.0' 시대가 열린 배경이다. 기업이 경제적 가치(이윤)만 좇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사회적 가치'가 화두다. 본업을 통해 기후변화·빈곤·환경오염·양극화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내외 기업들의 노력들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정은성 비콥 한국위원장 © News1
정은성 비콥 한국위원장 © News1

"대기업들이 '비콥'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 요구가 많아져서겠죠."
비콥 한국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은성 에버영코리아 대표(현대종합금속 사장)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이제 출범 3년차지만 국내에서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지난 20일 에버영코리아 성남센터에서 정 위원장을 만나 '사회적 기업'과 비콥의 활동, 목표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정 위원장은 전직원의 평균 나이가 60세를 넘는 시니어 기업이자 사회적 기업인 에버영코리아 대표를 겸하고 있다.  

비콥(B-Corp)은 탐욕적인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2007년 미국에서 시작된 문화운동이다. 사회에 유익(Benefit)을 제공하는 혁신적이고 착한 기업들에 부여하는 인증을 말한다. 'B'(Benefit)는 기업들이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Profit'(이익)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북미 2위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와 소비자가 안경을 사면 제 3세계에 안경을 지원하는 '와비파커' 등이 대표적인 비콥 인증기업이다. 최근에는 영국 유니레버의 자회사 '밴앤제리'와 스페인 다농의 북미법인 등 글로벌 대기업도 속속 동참하고 있다.

이들을 포함해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60여개 국가, 150여개 산업군에서 2600여개 기업이 비콥 인증을 받았다. 비콥 한국위원회는 2016년 6월 활동을 시작해 지금은 임시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 내년부터 '비랩코리아'(B Lab Korea)라는 이름의 공식법인으로 출범한다. 
비콥은 해외에선 꽤 많이 알려진 데 반해 한국에선 아직 낯이 선 게 사실이다. 정 위원장은 "해외에는 비콥이 공신력 있는 인증제도로 통하지만 한국에선 인지도와 참여율이 부족하다"며 "역사가 짧아 대중들이 알 만한 기업은 차량공유업체인 '쏘카' 정도"라고 했다.

비콥이 추구하는 건 '사회적 기업' 생태계의 확산이다. 사회적 기업은 비영리조직과 영리기업의 중간 형태로,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영업활동을 수행한다. 영리만 좇던 기업의 사회적 책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콥 인증 기업을 비롯해 민간 대기업이 육성한 사회적 기업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있다. 쏘카 외에 트리플래닛, 희망만드는사람들, 임팩트스퀘어, MYSC 등 10개 기업이 비콥 인증을 받았다. SK이노베이션이 육성·지원하는 모어댄과 우시산 등도 사회적 기업의 일원이다. 

아직 갈 갈이 멀지만 정 위원장은 한껏 고무돼 있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비콥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시간이 갈수록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주한미국대사관의 후원으로 해외 주요 비콥 활동가들을 초청해 글로벌 콘퍼런스를 개최한 적이 있는데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사회공헌 담당 임원들이 이미 비콥을 알고 대부분 참여했더라"고 했다.

정 위원장은 "정부, 기업, 시민사회 등 3개의 섹터 중 기업이 차지하는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자본주의의 '메인 액터'(주연배우)가 기업인 만큼 기업에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SK와 포스코가 '사회적 가치' 창출을 경영 전면에 내세우고 삼성과 현대차 등이 적극적인 사회적 책임 이행에 나서려는 흐름과 무관치 않다. 

정 위원장은 국내에 불고 있는 '사회적 가치' 바람을 대기업 중심의 압축 성장이 낳은 역설적 반작용으로 분석했다. 환경·빈곤·불평등 등 여러 사회적 문제를 낳은 '한국적 자본주의'의 속성상 사회적 책임 요구가 대기업을 향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10년전 금융위기가 신자유주의의 몰락과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시대를 연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정 위원장은 특히 "사적으론 제국을 이뤘다고 할 만한 대기업 오너들 상당수가 수감생활을 했다. 이들이 공공 영역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며 "불행한 과거사가 역으로 자본주의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고도 했다.

초연결 사회가 낳은 기업 환경 변화도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땅콩 회항'이나 끊이지 않는 '갑질' 등 기업가들의 일탈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대중들에게 빠르게 공유된다. 정 위원장은 "대중들은 너무도 쉽게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고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며 "기업이 이런 세상에서 영리를 추구하려면 착해지거나 최소한 착하게 보이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비콥 인증 방식은 재무적 성과 위주인 기존 기업 가치 평가와 다르다. 환경, 비즈니스 모델, 지역사회, 거버넌스, 기업 구성원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력으로 재정의해 기업을 평가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사회적 가치 창출과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위해 도입을 추진하는 '더블 바텀 라인(DBL·Double Bottom Line)' 전략과 유사하다.

DBL은 기업의 회계장부에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함께 측정하고 표시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본업을 통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얼마나 창출하고 있는지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이런 SK그룹의 사회적 가치 확산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정 위원장은 "최태원 회장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책(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을 스스로 집필할 정도로 사회적 가치 분야에선 어떤 학자나 기업가보다도 전문가"라며 "SK가 만들고 있는 평가지표(DBL)는 비콥위원회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성과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한국비콥위원회는 SK그룹의 사회성과인센티브(SPC) 추진단과 사회적 가치 측정, 한국의 사회경제 생태계를 위한 공동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시작된 사회성과인센티브는 유의미한 사회적 가치를 생산한 사회적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제도다. 정 위원장은 "사회문제해결 임팩트(영향)를 일정한 평가 툴(도구)로 측정해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사회성과인센티브는 멋진 실험"이라고 했다. 

정 위원장은 지속가능경영과 성장을 위해선 국내 기업 생태계 전반에 사회적 가치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국내 식음료 업계의 대기업도 현재 비콥 인증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서 누구나 아는 브랜드의 제품에 비콥 마크가 찍히면 비콥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은 짧은 기간에 많은 변화를 만들어 낸 나라여서 비콥 운동 역시 빠르게 확산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은성 비콥 한국위원장은

1983년 한양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뉴욕시티대학교 정치학 박사, 하버드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를 마쳤다. 한국으로 돌아와 국회의원 보좌관, 국회 정책연구위원을 지냈다. 1997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 후 5년간 청와대 통치사료비서관으로 일했다. 이후 토스에듀케이션, 세로토닌문화 등을 창업해 사업가로 변신했다. 2003년 사외이사로 현대종합금속과 인연을 맺은 후 이 회사에서 부사장, 사장을 거쳐 대표이사까지 올랐다. 2013년 사회적기업인 에버영코리아를 창립했다. 에버영코리아는 직원 평균 나이가 62세인 '시니어' IT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70억원. 서울의 여의도와 녹번동, 성남, 춘천 네 곳에 센터(지사)를 두고 있다.

정은성 비콥한국위원장 © News1
정은성 비콥한국위원장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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