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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학, 또는 장강명이 세계와 싸우는 방식

논픽션 '팔과 다리의 가격' 펴낸 소설가 장강명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8-09-06 08:00 송고
장강명 소설가 © 손홍주, 서울문화재단 제공 

유난히 까만 머리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테이블에 코를 박을 듯이 아래로 기울어졌다가 다시 휘청대며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다시 중력을 이기지 못하겠다는 듯이 슬그머니 아래로 떨궈졌다. 몇 번을 반복하다가 장강명 작가는 냉커피를 추가해 한잔 더 마시고서야 정신을 차린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죄송해요. 점심 먹은 후 급하게 와서요. 뭘 먹으면 급격히 대사율이 떨어져서 꼭 한숨 자야 하는데…”

한낮의 기온이 39도에 육박한 지난 8월 어느날, 소설가 장강명은 서울 시내의 한 카페에서 식곤증과 싸우는 중이다. 등단 후 불과 수년이 지난 신예지만 그의 한 작품 한 작품이 모두 대중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8시간 노동원칙을 지키기 위해 스톱워치로 매일 집필시간을 잰 뒤 엑셀에 정리하고, 페이스북에 눈금자처럼 정확히 3일에 한번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짧은 단상을 별점과 함께 올린다. 어찌 보면 사람이라기보다는 프로그래밍된 인공지능 같기도 한 그가 어릿어릿한 눈으로 말했다. 눈빛을 보니 사람인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인간에게서 태어났다.

◇로봇공학자를 꿈꾸고 PC통신으로 창작 시작

그는 1975년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와 잡지가 기자이자 문학가인 어머니 슬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인문서를, 어머니가 문학책을 좋아해서 저도 책을 좋아하게 됐어요. 한 달에 한번 온가족이 교보문고에 가서 저랑 동생이랑 사고 싶은 책을 고르라고 하셨죠. 유치한 책을 골라오면 별로라는 내색을 조금 하시면서도 결국 다 사주셨어요, 덕분에 만화책이나 추리소설 등을 마음껏 봤어요.”

하지만 작가가 되겠다는 욕망이 어릴 적부터 장강명 작가 마음에 자리잡은 것은 아니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로봇공학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마징가제트나 그랜다이저같은 만화에 어김없이 나오는 박사들…독수리오형제의 ‘남박사’ 같은.

학교 다닐 때는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은 가끔 들었지만 ‘엄청나게’ 잘 쓴다는 그런 수준은 아니었다. ‘너는 커서 작가가 될 것 같다’는 예언을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적도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백일장 나간 애들이 대상이라고 탄 거를 읽어보면 그리 잘 쓴 거 같지 않았어요. ‘아빠는 우리 손을 잡고 활짝 웃으셨습니다’ 이런 게 좀 별로였어요.” 이런 이유로 장 작가는 문예반이었다가 문학회였다가 교내 문학상을 받고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문학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들이 가는 일반적인 경로를 밟지 않았다.

독서일기(독후감)를 잘 썼다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모범생’ 이상의 인상을 주변인들에게 남기지는 않았다. 스스로도 전업작가가 될 거라는 생각도 없어 대학은 Y대 도시공학과로 갔다. 작가는 대학에서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라는 자각과 같은 과 후배였던 부인을 얻었다.

소년시절부터 십여 년간 장강명의 마음 속에서 문학에 대한 열정은 가끔 톡톡 불꽃이 이는 정도였다. 하지만 ‘픽션 쓰기’의 즐거움을 알아가면서 점차 그 마음은 이글이글한 잉걸불이 되어갔다.

장강명은 대학교 1학년 때 PC통신 하이텔의 과소동(과학소설동호회)에 단편을 올리면서 창작을 시작했다. “원고지 30매 넘는 거 쓴 게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또 '월간 SF 웹진' 이라는 이름의 인터넷 잡지도 창간해 운영했다고 한다. 대학교 2학년까지 학과공부보다 이에 더 매달렸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졸업 후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작가가 되어야겠다 결심해, 군복무 중에도 글을 써 신춘문예에 응모했지만 다 떨어졌다. 실력이 아직 모자라구나 깨달았다.

그럼 글쓰는 일과 관계 있는 직업을 얻어 소재를 많이 얻었다가 써야겠다 생각해 언론사 시험을 봤다가 이도 다 떨어지고 건설사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다시 언론사 시험을 봐 2002년 동아일보에 들어갔다.

동아일보 기자 시절의 장강명 소설가 © 장강명

승부욕이 있어 미친 듯이 취재하고 열심히 일해 수차례 기자상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으로만은 채워지지 않는 무엇인가 때문에 기자 5년차부터 조금씩 밤에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미 소설 쓰는 즐거움을 알고 있어서 1시간이라도 쓰자 싶어 어느날 회사에서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장편을 쓰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해서 쓴 첫 소설은 신문기자가 주인공이었는데 아내에게 어떠냐고 물었더니 소설이 아닌 거 같다면서도 계속 잘 써보라고 했다.

그후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아(2011년) 등단하기까지 밤마다 1시간 소설쓰기는 6년간 이어졌다.

2013년 8월말 장강명은 출입처였던 국회 기자실을 충동적으로 뛰어나와 아내에게 전화해 전업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부인은 2014년 말까지 소설만 써도 된다고 했지만 그 후에도 작가로서 가망이 없으면 다시 취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가는 신문사를 관둔 후 만 1년동안 장편소설을 다섯 편 썼다. 돈은 30만원쯤 벌었다. 단편소설 하나가 책 읽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낭독되었고 과학기술인이 보는 잡지에 서평 하나를 실었다. 또 빈 맥주병을 마트에 가져다주고 돈을 받았고 알라딘 중고서점에 책을 팔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바람이 바뀌었다. 2015년부터 ‘한국이 싫어서’가 주목을 받으며 ‘4관왕’ ‘괴물 신인’ ‘가장 핫한 작가’란 단어가 따라붙으며 그의 이름이 언론에 빈번하게 오르내렸다.

올해 그는 논픽션인 ‘당선, 합격, 계급’과 ‘팔과 다리의 가격’을 내놓았다. 지난 6월에 그의 소설 ‘댓글부대’가 연극무대에 올랐고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 4일부터 약 2주간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연극으로 각색되어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그믐…’은 ‘열광금지, 에바로드’와 함께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나의 롤모델은 무라카미 하루키"

강한 자기 확신과 함께 차곡차곡 자신의 작품세계를 넓혀온 작가지만 대학시절 신춘문예에 응모했다가 떨어졌던 때는 심하게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당시 주로 하루키 아류작 같은 느낌의 작품을 썼는데 그런 유형을 잘 쓰는 작가도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의 스타일이랄까,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과는 맞지 않았다.

“모든 예술가는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문체가 아니라 세계관, 인물을 대하는 태도를 다 합친 게 스타일이라고 봐요. 사회부나 정치부 기자는 모호한 것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으로 기사를 시작해요. ‘이것은 이런 사건이다’는 규정과 그 후의 부연 설명이 스트레이트 기사인데 이것에 익숙해지면 그전까지 말랑말랑하게 모호해 보였던 것들이 한 줄로 요약되죠.”

장 작가는 이를 '세상과 맞서 규정하려는 의지가 있냐 없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세상을 규정해보려고 하는 이런 사람들이 대체로 단문을 쓰고 인물이나 사건이 가진 속사정을 다 버리지 못하는 이들은 우유체, 만연체를 쓴다는 말이 이어졌다.

“한국사회의 문제와 정면대결하고 규정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은 자극적인 소재를 맘먹고 고르고 문장도 그에 맞게 가요. 하루키의 아류작을 쓸 때 뭔가 부분 부분이 잘 맞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소설쓰다가 인물과 사랑에 빠져 불행한 결말을 못쓰거나 하지 않아요. 인물에 대해 가차없고 플롯도 좋아졌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하루키는 그의 롤모델이라고 했다. 1990년대에 일본문학은 무라카미 류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두 명의 무라카미가 풍미했지만 류는 문학으로 이름을 날린 뒤 사진작가, 영화감독, 방송인 등 문화예술의 전방위로 활약했다.

반면 하루키는 유명세를 얻기 시작할 무렵 인터뷰도, 자잘한 청탁도 싫어 일본을 훌쩍 떠나 이탈리아와 그리스에 머물면서 ‘노르웨이의 숲’ 등을 쓴다. 하루키는 자기 작품이 영화나 연극으로 각색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곁눈질하지 않고 묵묵히 직업인으로서의 소설가를 살아가기에 하루키가 존경스럽다고 한다. 

장강명 소설가 © News1 민경석 기자

◇배를 띄우고 북극성 향해 나아간다 

장강명은 작가로서의 자신의 현재 좌표를 배를 띄우는 데 성공했고 그 다음 과제인 연안 벗어나기도 막 이룬 상태라고 말했다. 이제 자신이 가고 싶은 북극성을 향해 먼 바다로 나아가면서 100년 후에도 살아남을 대작을 쓰고 싶다고 했다.

대작을 쓰고 싶은 야심과 예술가로서 투쟁하는 태도를 잃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당신에게 대작은 어떤 것인가, 도스토예프스키나 빅토르 위고같은 옛날 작가 말고 현대 작가로 예를 들어줄 수 있나 묻자 그는 미국 범죄소설가인 제임스 엘로이의 ‘블랙 달리아’를 들었다. 그리고 3시간 넘는 인터뷰는 끝이 났다.

[나는 그동안 장강명의 문학이 너무 친절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왔다. 신문기자 출신으로 사회적 맥락 속 독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소재를 귀신같이 잘 잡아낸다. 장르문학 작가로 시작한 이력답게 쉽고 재미있고 극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지점은 없다.

하지만 저 친절함이 전복적이고 거친 느낌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장애가 되지는 않을까. 남들이 좋아할만한 글만 쓰게 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사근사근한 그의 얼굴 뒤에 문학적 야심이 불타고 있다. 미지의 세계를 독하게 북극성 하나를 바라보며 나아가는 뚝심도 있다. 독하게, 그리고 만화영화를 잘 안보는 나는 독수리오형제 중 독수리는 한 마리 뿐이고 나머지는 제비 등 다른 조류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런데 나는 그의 속내를 다 들은 걸까. 다음 약속이 있어 택시를 불러 사라진 장강명 작가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좀 까다로운 인터뷰였어. 하지만 내 두려움은 들키지 않았지'라며 슬며시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쓴 에세이집 ‘5년만에 신혼여행’에 나오는 문장을 참고하면 그의 진짜 고민은 이것 아닐까.

“신이 존재하고 영혼이라는 것도 있고 삶에 성스러운 의무라는 게 있다면 그 의무는 아마도 다른 사람을 네 목숨보다 더 깊이 사랑하라일 것 같다. 그런데 성실하기만 한 내가 그럴 수 있을까. 나는 사랑이 충만한 인간인가. 나는 저 대작의 바다 한가운데까지 익사하지 않고 가 닿을 수 있을 것인가.”]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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