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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위안부합의 재협상 시사…가로막을 국제법적 제약은?

준수의무 부과되는 국제법상 '협약' 요건 못 갖춰
국제인권법에도 어긋나…이행 강제 요구 어려워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2017-12-31 09:00 송고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한일 위안부 합의 즉각 파기하라' 대학생 결의대회에 참가한 민주주의자주통일대학생협의회 소속 학생들이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2017.12.28/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한일 위안부 합의 조사결과, 합의 자체에 중대한 결함이 확인됐고 해당 합의로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이에 따라 박근혜정권 당시 일본과 맺은 합의는 사실상 '백지화'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문재인정부가 박근혜정권 당시 맺은 위안부 합의를 파기해도 국제법상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보고 있다. 한일 양국이 2015년 12월28일 맺은 위안부 합의는 형식과 내용 모두에 비춰 국제법상 준수의무가 부과되는 국가 간의 조약 또는 협약으로 보기 어렵다고 진단하기 때문이다.

다만 대일 관계에서 감수해야 할 외교적 부담의 무게가 문제로 지적된다.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 관련 합의를 하면서 내용을 문서화하지 않았고, 국가 최고의사결정권자의 공식적 승인(endorsement)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국가 간의 조약에 관한 규범인 ‘빈협약’은 ‘조약’ 또는 ‘협약’으로 체결 당사국에 구속력, 즉 ‘준수의무’가 인정되려면 ‘서면형식’과 ‘국가 간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12·28 합의가 국제법상 준수의무가 부과되는 ‘조약’이 아니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일본 측도 12.28 위안부 합의를 국제법상 협약 또는 조약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후시다 일본 외상도 12.28 합의를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이 위안부 합의를 파기해도 국제법상 책임문제가 발생할 개연성은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채형복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국제법 교수는 "12·28 위안부 합의의 경우 국가의무불이행의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외교적으로 한일 간 국가관계 경색은 피할 수 없더라도 국제법상 유무형의 실질적 책임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법상 협약 체결의 방식을 넓게 해석해 구두합의 역시 협약으로 볼수 있다는 국제법 이론에 따를 경우에도 별다른 법적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설령 12.28 위안부 합의를 국제법상 조약으로 인정한다고 해도 이면합의를 통해 정한 협의 내용 자체가 국제법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송기호 변호사는 "인간의 기본적 존엄에 관한 문제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 약속도 국제인권법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며 "박근혜정부의 12·28 공동발표는 UN 국제 인권법에 반하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는 "(12·28 공동발표는)전시 성노예라는 본질적 진실표현을 포기하고, 소녀상 이전을 약속한 협의는 피해자 기념과 존중을 명시하고 있는 UN 국제인권법규범에 반하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협의"라고 지적했다.

◇ 일, 한일어업협정 파기·재협상 요구 선례도

우리 정부가 위안부 협의를 파기하거나 또는 재협상을 요구할 경우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국가 간 신의를 거론하며 공세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국가신인도 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가 간 협의, 그것도 이면합의에 의한 ‘협의’에 불과한 12·28 합의 파기가 국가신인도에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체결국의 준수의무가 발생하는 국제법상 조약 또는 협약도 일방 당사국이 명시적으로 조약의 탈퇴나 철회요구를 할 경우 효력이 상실된다. 대표적인 예로 한일 양국 간 체결된 ‘한일 어업협정’이 있다.

일본도 1965년 6월22일 우리나라와 체결해 같은해 12월부터 발효됐던 ‘한일어업협정’을 파기하고 재협상을 요구한 전례가 있다. 일본의 협정파기와 재협상 요구로 1998년 11월28일 재협정이 이뤄졌다.

이러한 선례에 비춰봐도 우리 정부가 국제법상 조약 또는 협정인지 정체조차 모호한 12·28 위안부 합의를 파기한다 해도 국제사회에서 국가신인도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송 변호사는 "하물며 준수의무가 부과되는 조약도 해지나 파기가 가능한데, 정치적 약속 정도로 협의 내용 자체가 국제 인권법에 반하는 한일위안부 합의는 국가 간 상호신의를 지켜야 할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법조전문기자·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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