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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지 세계화④-끝]"1000년 한지 제대로 만들겠다"

쌍발뜨기, 장인 부재, 닥나무 전무 등 약점 넘어야
市, 22개 중점사업 전주한지산업 육성 로드맵 마련

(전주=뉴스1) 김춘상 기자 | 2017-11-26 07:00 송고
편집자주 '한옥마을'과 '한식'으로 유명한 전북 전주시가 '한지' 세계화에 나선다. 1000년을 견디는 한지로 일본 화지가 장악하고 있는 종이 복원 시장에 뛰어들고 아직 열리지 않은 종이 복본 시장을 개척하려 한다. 종이 복본 시장은 조선왕조실록 복본사업을 통해 성공 가능성을 엿봤다. 이에 뉴스1은 전주시의 한지 세계화 전략을 들여다보면서 풀어야 할 문제점은 없는지 두루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작년에 루브르 박물관 수장고에서 3시간 정도 있었는데, 그날 ‘우리가 무리하게 욕심을 내면 안 되겠다. 잘못된 한지가 들어가면 인류의 자산을 망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승수 전주시장이 전주한지 세계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유럽 문화재 복원시장을 뚫기 위해 지난해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다녀왔던 일을 소개하면서 한 말이다.

김 시장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전주한지를 세계에 당당히 내놓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주한지가 어떤 약점을 가지고 있는지 하나씩 접근해보면 ‘넘어야 할 산’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전주한지는 우선 한지를 만드는 방법에서 큰 약점을 안고 있다.

한지는 발틀로 닥섬유(닥나무 껍질을 벗겨 추출한 섬유)가 있는 물을 뜨는 방식에 따라 우리나라 전통의 ‘외발뜨기’와 일본에서 유입된 ‘쌍발뜨기’로 나뉜다.

외발뜨기는 물을 흘리면서 발틀을 전후좌우로 흔든다고 해서 ‘흘림뜨기’라고, 쌍발뜨기는 물을 발틀에 가둔 상태에서 흔든다고 해서 ‘가둠뜨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발뜨기는 발틀을 전후좌우로 흔들기 때문에 종이의 결이 우물정(井)자 모양으로 얽힌다. 그래서 종이가 질기고 수명이 길다. 쌍발뜨기는 종이의 수명이 짧지만 생산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다.

임현아 한지산업지원센터 연구개발실장은 “하루에 외발뜨기로 100~200장을 만든다면 쌍발뜨기로는 400~500장까지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전주 한지업체들은 현재 쌍발뜨기로 종이를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타 지역 외발뜨기 장인들로부터 ‘전주한지는 전통한지가 아니다’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임현아 실장은 “오래 전부터 전주의 한지산업이 발달해 있다 보니 일제가 종이 생산을 위해 전주에 쌍발뜨기를 도입했고, 그로 인해 전주의 종이산업이 더 발달하게 되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다른 지역도 쌍발뜨기를 많이 하고 있지만 전주가 산업화 측면에서 가장 성공을 했다는 이유로 비난이 집중되는 것 같다”고 했다.

전국 각지의 한지 생산 현황(전주시 제공) © News1 김춘상 기자

지난해 기준 국내 수록한지(기계가 아니라 손으로 만드는 한지) 업체는 총 22개다. 전북이 10곳으로 가장 많고, 경북 5개, 경남·충북·강원 각 2개, 경기 1개 순이다. 이 가운데 전주에 있는 업체만 7개에 달한다.

전주에 국가 지정이나 광역자치단체 지정 한지 장인이 없는 것도 약점이다.

현재 문화재청 지정 한지 장인은 경기 가평과 전북 임실에 1명씩 2명이 있고, 광역단체 지정 한지 장인은 경북 청송과 문경, 충북 괴산과 단양에 1명씩 총 4명이 있다.

전주에는 한지 장인이 없는 이유는 외발뜨기 등 전통 방식이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점도 약점의 하나로 꼽힌다.

임업통계연보 자료를 보면 1983년 80톤8596㎏에 달했던 전국 닥나무 생산량은 2013년 5129㎏으로 급감했다. 전통한지 수요 감소로 갈수록 재배면적이 줄어든 데다 값싼 외국 닥원료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1만536㎏, 2015년 1만3619㎏으로 상승을 한 점이 그나마 다행인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2015년 닥나무 생산량은 경북 1만2704㎏, 경남 735㎏, 충북 180㎏ 순이다. 전북은 ‘제로’다.

전주시가 닥나무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전주 상림동과 임실 신덕면, 진안 마령면 등에 20만 그루 이상을 심었다. 그러나 관리가 제대로 안 돼 모두 실패했다.

전주 한지업체들은 닥원료를 안동, 경주, 예천 등 다른 지역에서 일부 구입하고 모자라는 것은 태국 등 외국에서 사들이고 있다. 하지만 외국 닥나무는 4계절을 견디는 국산 닥나무에 비해 섬유의 질이 떨어진다고 한다.

1977년 전주 흑석골 한지공장 작업 모습(전주시 제공) © News1 김춘상 기자

다행스러운 점은 전주시가 이런 내용들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승수 시장은 루브르 박물관 수장고에서 느꼈던 그 무거운 마음 역시 이런 문제점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시장은 2014년 취임 이후 전주시 출연기관인 한지산업지원센터와 함께 전주한지를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한지로 만들기 위해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찾는 일부터 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22개 중점 사업을 골자로 한 전주한지산업 육성 로드맵을 만들었다.

로드맵은 우선순위까지 매겼다. 한지장인 지정이 1순위, 전통한지 제조기반 조성이 2순위, 닥 인프라 구축이 3순위다.

전주시는 곧바로 지난해 ‘한지산업 육성 및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올해 4명의 ‘전주한지장’을 지정했다.

비록 국가나 도 지정은 아니지만 김 시장은 “그분들이 옛날 방식을 못하는 게 아니라 수요가 없으니 안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돈이 되는 쌍발뜨기를 하고 있지만 조선왕조실록 복본처럼 수요만 있다면 외발뜨기로 한지를 만들어 낼 능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이 참여한 조선왕조실록 복본사업은 외발뜨기로 진행됐다.

임 실장은 “당시 외발뜨기 방식을 기본으로 해서 종이의 색깔과 두께, 무게 등을 맞춰줄 것을 전국 업체에 요청했고, 전주 업체들도 당연히 외발뜨기로 한지를 만들었다”고 했다.

실록 복본사업이 진행된 6년 동안 전주 업체들은 외발뜨기 작업으로만 연간 2000만~4000만원씩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김승수 시장이 이번에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 가져간 한지족자와 교황에게 전달한 ‘고종황제 친서’도 모두 전주 업체들이 외발뜨기로 만든 한지로 제작됐다.

김 시장은 “그분들이 옛날 방식으로 전통 한지를 평생 유지하려면 1년에 A4용지 약 3만장의 수요가 필요하다”면서 “지방행정연수원 수료증이나 태권도 단증 등으로도 쓰일 수 있기 때문에 현재 10만장을 목표로 사방팔방 뛰고 있다”고 했다.

전주한지 생산 터전인 흑석골 위치도(전주시 제공) © News1 김춘상 기자

2순위인 전통한지 제조기반 조성도 외발뜨기 여건 조성이 핵심이다.

한지의 메카였던 완산구 서서학동 흑석골 일원에 2019년까지 국비 25억원과 지방비 45억원 등 총 70억원을 들여 전통한지 제조(생산)시설을 조성해 외발뜨기 등 옛날 방식을 지키는 전통한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한옥마을 등과 연계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우영영 전주시 관광산업과 한문화팀장은 “전통한지 제조시설을 복원함으로써 한지산업을 활성화하고, 나아가 관광자원과의 연계를 통해 전통문화 복합단지로 육성할 계획”이라며 “내년에 착공이 이뤄지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전주시는 닥 인프라 구축에도 다시 나섰다.

올해 초 중인동과 우아동에 닥나무 묘목 1만2000그루를 심었다. 과거의 실패 사례를 고려해 이번에는 농민들에게 나무를 키우게 하고 나중에 수매를 하기로 했다. 일종의 계약 재배 방식이다.

실록 복본사업 때 한지를 수매한 것처럼 닥을 수매하면 농민들이 나무를 정성껏 키울 것이라는 계산이다.

성공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전주시는 5년 후부터 매년 40톤가량의 닥 원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지산업육성 로드맵은 이들 1~3개 순위에 이어 △후계자 양성 △전통한지 수매제도 △전통한지 제조기술 구축 △문화재 복원사업 시스템 구축 등의 순으로 우선순위가 매겨졌다. 마지막 22순위는 한지산업진흥 법제화다.

저주시 우아동 닥나무 식재현장을 찾은 김승수 전주시장/뉴스1 DB

임현아 실장은 “한지장인 중 일부는 후계자 양성 계획도 확실히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현재 추진 중인 한지 관련 사업은 이 로드맵 우선순위를 바탕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루브르는 복원, 바티칸은 복본이고, 유네스코는 가치입니다. 한지로 단순히 상품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세계문화유산 보호라든지 아프리카 학생들을 돕는다든지 하면서 전주한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 세계화의 전략 중 하나입니다.”

전주한지 세계화를 위해 유럽에 다녀온 김 시장이 한 말이다.

갈 길은 멀다. 일본 화지가 장악하고 있는 문화재 복원시장을 뚫어야 하고, 아직 문이 열리지 않은 고문서 복본시장은 개척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주한지의 경쟁력을 지금보다 몇 단계 더 높이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다.

김 시장은 “작년에 루브르 박물관 수장고에서 3시간 정도 있었는데, 그날 ‘우리가 무리하게 욕심을 내면 안 되겠다. 잘못된 한지가 들어가면 인류의 자산을 망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진짜 한지를 만들어서 제대로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고,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한지가 ‘진짜 1000년 이상 가는 한지’로 부활해 한지 세계화를 선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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