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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 선 독립운동가 후손은 왜 목이 메었나

우당·백범 선생 등 후손 등 32명 '국치의 길' 걷기
"조선신궁 터에 3.1운동 100주년 조형물 건립" 제안도

(서울=뉴스1) 장우성 기자 | 2017-08-23 06:10 송고
우당 이회영 선생 손자인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22일 서울 중구 한국통감관저 터에서 일제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한 주요 역사현장을 잇는 1.7㎞ 구간의 '국치길'을 걷고 있다. 서울시는 내년 8월까지 100년 넘게 우리 민족과 격리된 채 역사적 흉터처럼 가려져 온 남산 예상자락 속 현장 1.7㎞를 역사탐방길 '국치길'로 조성한다. 2017.8.22/뉴스1 © News1 허경 기자

107년 전 한일병탄조약이 체결됐던 22일, 일제가 남긴 상처가 곳곳에 파인 서울 남산 예장자락에 애국가 연주가 울려퍼졌다.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아닌 고독한 트럼펫의 울림이었다. 앙리 비외탕의 ‘파가니니를 위한 오마주’가 비올라의 흐느낌으로 이어졌다. 바람 한 점 없던 여름 하늘로부터 불현듯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중국은 일제 치하를 십여년 겪었습니다. 그런데도 국토 곳곳에 치욕의 현장을 보존하고 ‘국치’(國恥), ‘물망’(勿忘)이라고 새겨놨습니다. 아픈 역사를 기억해 두번 다시 반복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예장자락에 ‘국치의 길’을 추진하는 서해성 서울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회 총감독은 일제강점의 고통을 36년 겪었는데도 친일행적 감추기에 급급한 우리의 현실을 견주며 이렇게 토로했다.     

서울시는 남산 한국통감관저 터~조선총독부 터(서울애니메이션센터)~일제 갑오역기념비~경성신사 터(숭의여대)~한양공원 비석~조선신궁 터(옛 남산식물원)로 이어지는 1.7km 코스를 ‘국치의 길’로 운영할 계획이다.

이날 남산 위안부 기억의 터에서 열린 국치의 길 사업 발표회에는 독립유공자 후손 32명이 참석했다. 이곳은 친일파 이완용이 일본 통감 데라우치와 병탄조약을 맺은 옛 통감관저 터이기도 하다.

후손들은 대부분 고령이었지만 폭염의 뙤약볕을 피하지 않았다. “힘드시면 말씀하십시오. 차를 대기시켰습니다.” 진행자의 당부에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묵묵히 ‘국치의 길’을 걸었다.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은 선대들의 뒤를 따르는 듯 했다.   

의열단 김익상 의사가 폭탄을 던진 옛 조선총독부 터를 지나 리라초등학교 교문을 들어서면 왼편에 65년 역사의 사회복지시설 남산원이 보인다.

일제강점기 남산원 자리에는 ‘노기신사’가 있었다. 노기 마레스케라는 일본 장군을 신으로 제사지내는 곳이다. 남산원 증축공사장 바리케이드 뒤편으로 돌아 두 사람 정도면 꽉 찰 비좁은 공간에는 이 신사를 짓는데 기여했다는 조선인을 기리는 기념비가 숨어있다. 당시는 위세를 부렸을지언정 지금은 석축 옹벽의 한 조각으로 쓰이는 신세였다. “이런 흔적을 보존해 후대에 교훈으로 알려야한다. 후손들께서도 힘을 모아달라.” 서해성 감독의 말에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우렁차게 화답했다.     

관광객의 설렘으로만 기억되는 남산케이블카 승강장 앞에도 국치의 상처는 숨죽였다. 일제가 경성에 사는 일본인 전용으로 만들었다는 한양공원의 표지석은 눈여겨 보지않으면 지나칠 구석에 무심히 서있다. 조선시대 군인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훈련하던 예장터에 침략자들의 놀이터가 들어섰던 셈이다. 

일제는 남산의 한 가운데 자신들의 단군 격인 아마데라스 오미가미와 메이지신왕을 제신(祭神)으로 한 조선신궁을 지었다. 해방 후 그 자리에는 아시아 최대규모라는 이승만 동상이 올라갔다가 4.19혁명 때 철거됐고 남산식물원이 들어섰다. 지금은 한양도성 복원작업으로 일반인들의 접근이 차단됐지만 서울시는 이날 특별히 백발의 후손들에게 문을 열어줬다.

독립운동가 조상연 선생의 후손 조동현 씨는 “미국 독립을 기념하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듯이 이 조선신궁 자리에 3.1운동 100주년 기념 조형물을 세우자”고 즉석에서 제안하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후손 중 유일한 국회의원’으로 소개된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조선신궁 터 앞 안중근 동상 아래 서서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우당은 독립운동을 위해 다시 돌아오지 못한 중국 망명길을 남산골에서 출발했다. 이 국치의 장소에서도 훤히 내려다보였다.

“국치의 길을 걸으며 100여년간 묻혔던 역사를 보고 새롭게 각성하게 됩니다. 구국애족에 가장 앞장섰던 우리 항일 가족들과…”

이 의원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후손들도 너나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물이 들 듯 푸른 하늘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이 이역만리에서 그리워했을 고향의 하늘도 이렇게 푸른 빛이었을 것이다. 

'국치의 길'은 2018년 8월 완성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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