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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 분실 이어 '모조품 어보'…'적폐' 문화재청(종합)

문화재청, 조선왕실 어보 4과 일제강점기 재제작 알고도 반년 넘게 함구

(서울=뉴스1) 김아미 기자 | 2017-08-18 14:51 송고 | 2017-08-18 18:27 최종수정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다시 찾은 조선 왕실의 어보' 특별전에서 재제작된 모조품으로 확인된 덕종어보가 전시되고 있다. 2017.8.18/뉴스1 © News1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다시 찾은 조선 왕실의 어보' 특별전에서 재제작된 모조품으로 확인된 덕종어보가 전시되고 있다. 2017.8.18/뉴스1 © News1

문화재 행정의 '적폐'가 현 정부 들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이 최근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조실록과 훈민정음 해례본의 등재 인증서를 분실해 재발급했다고 뒤늦게 밝힌 데 이어, 이번에는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김연수)이 2015년 미국에서 환수한 '덕종어보'를 비롯한 조선왕실 어보 4과가 일제강점기 분실돼 재제작된 사실을 알고도 반 년 넘게 쉬쉬했던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장은 '다시 찾은 조선 왕실의 어보' 특별전 개막에 앞서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덕종·예종시대 어보 5과가 도난됐던 사실을 지난해 알게 됐다"며 "분실한 5과는 일제강점기 조선 왕실에 의해 재제작됐으나 이 중 일부를 한국전쟁 등 혼란기를 거치며 또 다시 분실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이달 초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조실록과 훈민정음 해례본과 함께,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창덕궁, 화성, 경주역사지구,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등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자연) 7건의 인증서 원본을 분실해 재발급하고 원본 인증서의 소재를 파악중이라고 뒤늦게 해명한 바 있다.

문화재 환수에 앞장서 온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문)에 의해 문제가 제기되자 문화재청이 10년 만에 이같은 사실을 공개한 것이다.

이에 따라 문화재 기록물 관리 부실은 물론, 환수 문화재와 관련한 국민의 알 권리마저 무시하는 문화재 행정의 적폐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장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재제작된 모조품으로 확인된 덕종어보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7.8.18/뉴스1 © News1
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장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재제작된 모조품으로 확인된 덕종어보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7.8.18/뉴스1 © News1

◇조선왕실 어보 4과 일제강점기 재제작 사실 알고도 '쉬쉬'

18일 문화재청과 국립고궁박물관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재제작된 어보는 덕종어보, 예종어보, 예종비어보, 장순왕후어보, 예종계비어보 등 총 5과다. 이 중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은 4과를 소장하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2015년 환수된 덕종어보가 1471년 제작된 원본이 아닌 1924년 재제작된 모조품이라는 사실을 환수 이후인 지난해 말 최종 확인했다. 환수 당시에는 외형만 보고 진품으로 판단했다가 환수 이후 전문가 집단에서 진위 논란이 제기되자 과거 신문 기사들을 뒤늦게 확인하고 비파괴 성분분석을 한 결과, 어보 4과의 아연 함량 등이 15세기 만들어진 어보 9과에 비해 확연하게 다른 점을 파악한 것이다.

박물관 측은 "이같은 사실을 올해 1월 문화재청 지정조사위원회에 정식으로 보고했고, 2월 박물관 홈페이지에도 관련 내용을 정정 게재했다"고 밝혔다.

김 관장은 "전문가들의 조언으로 1924년 당시 신문 기록을 확인한 결과, 예종·덕종시절 어보 5과가 도난됐고, 이를 염려한 순종이 조선미술제작소에 명하여 5과를 재제작하고 위안제를 거행해 종묘에 안치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장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재제작된 모조품으로 확인된 덕종어보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7.8.18/뉴스1 © News1
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장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재제작된 모조품으로 확인된 덕종어보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7.8.18/뉴스1 © News1


그는 문화재청과 박물관이 덕종어보 환수 당시 진품이라고 주장했던 사실에 대해서는 "환수 당시에는 외형 조사만으로 진품으로 판단했다"며 "종묘로부터 인계받은 어보 3과가 미국에 있다는 덕종어보와 유사해 진품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 관장은 그러면서도 "이같은 사실을 숨길 생각은 전혀 없었다"며 "문정왕후·현종 어보가 곧 미국에서 환수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어서 8월 어보 특별전을 통해 정식으로 설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덕종어보는 일제강점기에 재제작돼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지난 2월 문화재위원회에서 문화재 지정 대상에서 제외된 바 있다.

◇속속 드러나는 문화재 행정 '적폐'…"부처 치적만 과장" 지적도

문화재청은 이날 김 관장의 발언과는 배치되는 공식 해명자료를 내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기자회견과 동시에 배포된 해명 자료에서 문화재청은 "'모조품임에도 불구하고 특별전시회 품목에 들어간 것에 대해 해당 사실을 파악한 후 이번 특별전을 통해 바로잡으려는 생각이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이번 특별전에서 해당 사실을 바로잡으려는 의도는 없다"며 "문화재청 관계자가 이같은 발언을 한 적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김 관장은 "특별전을 통해 해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해 그동안 덕종어보 및 어보 4과가 재제작된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고 보도자료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해명을 내 놨다. 문화재 행정 실무자들간 '엇박자'를 고스란히 노출시킨 셈이다.

문화재청과 국립고궁박물관이 덕종어보를 비롯해 조선왕실 어보 4과가 15세기 만들어진 원본이 아닌 일제시대 재제작된 모조품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반 년 넘게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간 문화재청은 정책 홍보 관련 언론 보도자료를 하루 최소 한 차례 이상 배포하면서도 어보 관련 새롭게 밝혀진 내용은 한번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2015년 3월 덕종어보 반환식을 앞두고 문화재청이 배포한 보도자료. 당시 문화재청은 환수되는 덕종어보가 1471년 제작된 것이라고 밝혔다. © News1
2015년 3월 덕종어보 반환식을 앞두고 문화재청이 배포한 보도자료. 당시 문화재청은 환수되는 덕종어보가 1471년 제작된 것이라고 밝혔다. © News1

문화재제자리찾기 측은 "모조품임을 알고도 진품처럼 발표했다면 거짓말 논란을 피해갈 수 없고, 모르고 있었다면 진품 여부 확인없이 경솔하게 발표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경위를 해명하지 않은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어보 반환운동에 주력해 온 시민단체의 공로를 무시하고 정부 부처의 공로만 과장하다 보니 일어난 해프닝으로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오는 19일부터 10월29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Ⅱ에서 '다시 찾은 조선 왕실의 어보' 특별전을 열고, 지난 7월 초 환수된 '문정왕후·현종' 어보를 비롯해 2014년 해외에서 환수해 온 유서지보, 준명지보, 황제지보 같은 조선·대한제국 국새와 고종 어보 등 조선 왕실 인장 9점, 그리고 덕종어보 등을 전시한다.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다시 찾은 조선 왕실의 어보' 특별전에서 문정왕후 어보와 현종 어보가 전시되어 있다. 2017.8.18/뉴스1 © News1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다시 찾은 조선 왕실의 어보' 특별전에서 문정왕후 어보와 현종 어보가 전시되어 있다. 2017.8.18/뉴스1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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