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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13개가 2개로... 日 정유산업은 어떻게 망가졌나

日 내수 수요에 맞춰 설비 줄이기 급급…경쟁력 잃어
韓 고도화·대형화로 승승장구…日, 한국전략 따라야

(서울=뉴스1) 송상현 기자 | 2017-07-23 14:16 송고 | 2017-07-24 08:02 최종수정
일본 도쿄의 수출입 항만 © AFP=뉴스1 © News1 송상현 기자
일본 도쿄의 수출입 항만 © AFP=뉴스1 © News1 송상현 기자

"일본 정유사들, 한국을 배워라"

최근 일본 경제지 니케이비즈니스가 자국 정유업체들에게 던진 화두다. 20년전 일본의 정제능력은 한국의 2배에 달했다. 

하지만 한국 정제능력이 2~3년 안에 일본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된다. 또 국내 정유사들은 지난해 8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새 역사를 장식했다. 반면 일본 정유업계는 '혼란' 그 자체다. 1990년대 13개에 달했던 일본 정유사는 곧 2개로 재편될 예정이다

두 나라에 지난 20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내수에 집중한 日…'고도화'로 수출위주 사업구조 만든 韓


23일 영국의 정유회사 BP가 발간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1997년 일본의 정제능력은 506만배럴로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최대 석유제품 생산지였다. 당시 한국의 정제능력은 232만배럴에 불과해 일본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쳤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 한국의 일일 정제능력 323만배럴으로 일본 360만배럴을 바짝 뒤쫓고 있다. 한국은 증설을, 일본은 폐쇄·합병을 지속하고 있어 향후 2~3년 내에 한국의 정제능력은 일본을 앞서게 된다.

이같은 운명은 '전략의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지난 20년간 한국 정유업체들은 내수가 아닌 '수출'로 눈을 돌린 반면 일본은 안정적인 내수에 만족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본은 인구감소로 내수 소비량이 감소하자 꾸준히 정유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일본 정부는 '석유산업 합리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각 정유사에 정제설비의 고도화 비율 13% 이상을 준수하도록 했다. 천문학적 금액을 투자해야하는 일본의 정유사들은 노후화된 단순 정제시설을 폐쇄하며 기준을 맞췄다.

고도화시설은 원유 정제시 40~50%의 비율로 나오는 값싼 잔사유를 이용해 휘발유, 프로필렌 등 고부가가치 경질유을 생산하는 설비다.

결국 일본은 경쟁력을 높이기보단 내수수요에 맞춰 생산량을 줄이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국내 정유업계의 현재 고도화비율은 모두 20%를 넘어선다. 현대오일뱅크의 고도화비율은 39.1%이며 에쓰오일은 5조원을 들여 내년까지 고도화비율을 30%대로 끌어올린다.

1997년 당시에도 국내 정유업계는 내수시장의 수요를 충족시킬 충분한 정제능력을 보유했다. 여기에 일본처럼 고령화, 인구감소 등으로 인한 유류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음에도 생산능력을 계속 높였다.

내수 외에도 수출 시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유사들은 최근 수요가 크게 성장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시장을 집중공략 해 수출위주의 탄탄한 수익구조를 마련해 놨다. 지난해 기준 정유4사의 수출 비중은 GS칼텍스 71%를 비롯, SK이노베이션 석유사업 부문 41.7%, 에쓰오일 56.6%, 현대오일뱅크 45.3% 등이다. 지난해 정유업계가 수출한 석유제품 물량은 총 4억5524만6000배럴로 2013년 이후 4년 연속 증가하고 있다.

박영훈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의 정제 처리능력 축소는 물류비를 감안해 열도에 분산시킨 소규모 설비의 경제성 상실과 낮은 고도화율로 인한 수익성 저하 때문"이라며 "규모가 크지 않은 설비에 고도화 설비를 추가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 구조조정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설명했다.

◇日 분산형으로 수익성에 '한계'…韓 '집중화·대형화'로 경쟁력 높여


산업화 초기, 정부의 정유소 배치전략도 정유산업 성장을 갈랐다. 일본이 '분산형'이었다면 한국은 '집중형'이었다.

일본은 물류비를 고려해 정유시설을 열도에 골고루 분산했다. 일본의 20여개 정유공장은 대부분 동쪽 또는 남쪽 해안 등 대규모 소비지에 지어졌다.

그러나 한국엔 오로지 4개사의 5개 정유소만 집중적으로 성장해 왔다. 1962년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이래 정부는 기간산업, 수입대체 산업의 핵심으로 정유공장을 최우선적으로 건설했다.

정유공장이 대규모 시설을 갖추게 된 것은 생존을 위해 당연했다. 우선 국토 여건상 정유공장 입지 조건에 적합한 지역이 한정돼 있었다. 또한 고도성장 시절 급격하게 늘어나는 석유제품 수요를 빠르게 충족시키기 위해선 이미 지어진 설비에 집중투자하는 편이 유리했다.

이후에도 한국의 정유업체들은 '규모의 경제' 전략으로 울산, 여수, 대산 등 대규모산업단지를 중심으로 몸집을 불려나갔다. SK이노베이션 울산공장의 일일 정제능력은 84만 배럴로 일본 정유회사의 평균 생산량(18만배럴) 5배에 달한다. SK에너지 울산공장, GS칼텍스 여수공장(79만배럴)은 단일공장 규모로 세계 5위안에 든다.

정유공장은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규모의 크기는 그대로 수익성으로 직결된다.

또 정유설비 옆에 대규모 NCC(납사분해시설) 등 화학설비도 갖추면서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정유4사가 지난해 거둔 8조원 규모의 영업이익중 비정유부문의 기여는 40%에 달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업황이 비교적 안정적인 비정유부문은 국제유가와 마진 추이에 따라 부침이 심한 정유부문의 이익 변덕을 상쇄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 울산 공장 전경© News1
SK이노베이션 울산 공장 전경© News1

◇日 정유업계 '2강'체제로 재편…핵심은 '고도화' 돼야


일본은 구조조정을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엔 정유사를 2개로 재편하는 작업을 진쟁하고 있다. 비록 늦었지만 한국의 '대형화' 전략을 벤치마킹에 재기를 노리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일본 정유업계는 1위 JX홀딩스와 4위 도넨제너럴이 합병을 확정했고, 2위 이데미츠 코산과 5위 쇼와쉘이 합병을 앞두고 있다. 3위인 코스모도 한쪽으로 통합될 것이 유력하다. 1990년대 13개였던 일본 정유업계는 조만간 2개로 줄어들게 되는 셈이다.

이런 통합 움직임에도 장밋빛 전망은 나오지 않는다. 최근 몇년간 일본정유업계는 합병만이 이어지고 최신설비 도입은 지연돼 노후된 설비가 계속 가동됐다. 이는 생산효율 악화로 이어졌고 각 기업들은 가동률을 유지하기 위해 잉여 휘발유를 싼 값에 투매했다. 주유소 역시 저가 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사회문제로 번졌다. 게다가 설비 노후화로 인해 정유소에선 연이어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일본 정유산업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선 대형화 외에도 고도화 전략이 필요하다. 니케이비즈니스의 요시오카 아키라 기자는 "한국이나 중국에 비해서 일본은 최신시설에 뒤처져 있다"며 "'2차 장치'(고도화설비)의 추가 투자가 촉진돼야 한다. 최대 수천억엔이 투자되지만 각 기업이 함께 자금을 내서 이용한다면 국제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jineb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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