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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가 손장섭 "고목(古木)은 한국 현대사 침묵의 증인"

학고재갤러리서 대규모 개인전 개최

(서울=뉴스1) 김아미 기자 | 2017-05-17 20:36 송고 | 2017-05-18 11:10 최종수정
손장섭 민중미술가가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7.5.12/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손장섭 민중미술가가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7.5.12/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4·19 때에는 시청앞 데모대에 휩쓸려 그 속에서 스케치를 했고, 6·29 때에는 신학철, 주재환 같은 이들과 함께 최루탄 맞아가며 싸웠지요. 그렇게 얻어낸 민주주의였습니다."

17일부터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시작한 민중미술가 손장섭(76)은 전시 개막에 앞서 갤러리에서 만난 기자에게 한국 현대사의 어두웠던 시절을 이같이 들려줬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60년 4월19일 여느 때처럼 야외에서 인물 드로잉을 하기 위해 서울역 기차 대합실에 갔다가 시청 앞 덕수궁 쪽에서 데모대에 휩쓸렸다"며 "군중 속에서 떠밀려 다니며 스케치를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렇게 밖에서 스케치를 하는 학생들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1980년대 민중미술을 태동시킨 '현실과 발언'의 창립 동인이자 민족미술인협회(민미협) 초대 회장이었던 손장섭 화백이 '손장섭:역사, 그 물질적 흔적으로서의 회화'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연다. 4·19혁명을 목도하고 화폭에 기록한 1960년작 '사월의 함성' 등 역사화를 비롯해 신령스러운 기운의 고목(古木)을 화면 가득 채운 자연 풍경화 등 38점을 선보인다.

1980~90년대 작품과 근작을 아우르는 대규모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손 화백은 "그림이 팔리면 내 손을 떠나는 건데 그다지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면서 "그동안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지금까지 먹고살아 온 것만도 희한하다"며 웃었다.

손장섭 민중미술가가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7.5.12/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손장섭 민중미술가가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7.5.12/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1941년 전남 완도 고금도에서 태어난 손 화백은 서라벌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휴학과 복학을 반복했고, 1963년 군에 입대한 후 1965년 월남 파병에 지원했다.

학자금을 마련할 목적으로 전투 수당을 꼬박꼬박 모아 친구에게 송금했으나, 친구가 이 돈을 모두 소진해버리면서 결국 홍대에 복학하지 못했다.

손 화백의 화업은 한국 현대사의 질곡과 맥을 같이 해 왔다. 그는 주재환, 오윤, 김정헌, 성완경, 윤범모 등 미술인들과 함께 1980년대 민중미술을 이끈 '현실과 발언'을 결성했다.

"철저하게 군부독재의 탄압이 이뤄지던 시절이었어요. 당시 한국문화예술진흥원(문예진흥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신)에서 전시를 하는데 작품이 불손하다며 전시장 불을 꺼 버리고 작품들을 철거하려 했죠. 촛불을 켜고서라도 전시를 하려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 동산방화랑에서 전시를 열었는데 거기서도 전시를 제대로 못한 겁니다."

손 화백은 1987년 노태우 정권 당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추진하는 내용의 6·29 선언이 있기 전까지, 현실과 발언 동인들과 시위에 참여했던 때의 이야기도 꺼냈다.

"김윤수(미술평론가,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주재환이랑 다 같이 시위하러 다니며 최루탄 맞던 시절이었어요. 그 최루탄 때문에 폐막이 터지기도 했죠. 폐가 쪼그라들어 큰 수술을 받기도 했고요."  

그는 예술적 동지였던 민중미술가 신학철 화백의 그림 '모내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그림은 1987년 민미협 통일전 때 신 화백이 출품했던 작품인데, 1989년 한 청년단체에서 부채를 제작하며 이 그림을 사용했고, 당시 부채 제작을 맡았던 학생이 '이적 표현물 제작 및 운반' 혐의로 기소됐다. 이후 신 화백 역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돼 1·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2000년 대법원이 원심 파기환송하며 징역 10월형의 선고 유예와 그림 몰수 판결을 확정했다. 

"군부독재 정권 눈에 우리가 예쁠 턱이 있나요. 그러니 멀쩡한 시골 풍경을 두고 김일성 생가를 그린 거라고…. 그렇게 엉뚱하게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거죠."

손장섭 민중미술가가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7.5.12/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손장섭 민중미술가가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7.5.12/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손 화백은 '현장의 화가'이기도 했다. 전국 산하를 누비며 은행나무와 소나무 고목(古木)들을 화폭에 담았다. '원주 은행나무' '녹우당 은행나무' '용문사 은행나무'를 비롯해 '정이품 소나무' '제주 곰솔' 등을 통해 수 천년 한국사를 지켜 본 고목들의 '침묵의 증언'을 기록했다. 학고재갤러리 신관 전시장 지하에서 이 같은 나무 연작들을 한꺼번에 선보이는데, 예사롭지 않은 '신목'(神木)들의 기운이 전해진다.

이번 전시를 위해 평문을 쓴 미술사가 유홍준씨(전 문화재청장)는 "외형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내면에 서려 있는 혼을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유월 춤 Dance for the June Uprising, 2015, 목판에 아크릴릭 Acrylic on wood, 78x78cm (학고재갤러리 제공) © News1
유월 춤 Dance for the June Uprising, 2015, 목판에 아크릴릭 Acrylic on wood, 78x78cm (학고재갤러리 제공) © News1

한편, 그동안 오윤, 신학철, 강요배, 이종구, 주재환, 신학철, 손장섭까지 민중미술 대표 작가들의 전시를 꾸준히 열어왔던 학고재갤러리는 30년 동안 분단의 현실과 아픔에 천착해 온 송창 작가의 개인전을 올해 하반기에 계획하고 있다.

학고재갤러리 측은 "예술의 사회적 역할 중 하나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기록하고 그에 대한 기억을 영속시키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과거의 부조리를 반성하고 올바른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6월18일까지.

사월의 함성 April Revolution, 1960, 종이에 수채 Watercolor on paper, 47x65cm (학고재갤러리 제공) © News1
사월의 함성 April Revolution, 1960, 종이에 수채 Watercolor on paper, 47x65cm (학고재갤러리 제공) © News1


인천 남동구 은행나무 Maidenhair Tree in Namdong-gu, Incheon, 2016,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130x162cm (학고재갤러리 제공) © News1
인천 남동구 은행나무 Maidenhair Tree in Namdong-gu, Incheon, 2016,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130x162cm (학고재갤러리 제공) © News1


태백산 주목 Yew Tree in Taebaeksan, 2016,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160x160cm (학고재갤러리 제공) © News1
태백산 주목 Yew Tree in Taebaeksan, 2016,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160x160cm (학고재갤러리 제공)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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