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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원 셰프의 탐식 수필] 부르고뉴 밤의언덕 마을의 '뵈프 부르기뇽'

이국적 식탁 위에 오른 보편적 삶의 이야기

(서울=뉴스1 ) 김수경 에디터 | 2017-04-13 14:51 송고 | 2017-04-13 15:54 최종수정
편집자주 정상원 셰프의 세계 여러 나라 미식골목 탐방기를 연재한다. 정상원 셰프는 프랑스 가정식레스토랑 '르꼬숑'의 오너셰프다.
부르고뉴 작은 읍내에서 만난 꼬마들의 밀당. 사내의 구애는 언제나 그렇듯 그녀의 주관적 미감에 의해 성패가 결정된다. © News1
부르고뉴 작은 읍내에서 만난 꼬마들의 밀당. 사내의 구애는 언제나 그렇듯 그녀의 주관적 미감에 의해 성패가 결정된다. © News1

프렌치 레스토랑의 메뉴판을 펼치면 수많은 암호들이 자기들만의 향연을 펼친다. 게다가 테이블 위에 놓고 간 두툼한 와인 리스트까지, 마치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수학문제를 풀고 있는 듯 혼란스럽다. 
프랑스는 많은 나라들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중세 시대부터 문명이 교차하는 시점에서 온몸으로 풍파를 맞아왔다. 게다가 지역별 특이한 조리법에 대한 톨레랑스(Tolerance, 관용정신)와 느긋하게 곱씹는 성품까지 반영된 다양한 조리법이 프렌치 요리의 DNA를 형성한다.

부르고뉴, 밤의 언덕(Côte de Nuits). 코트 드 뉘의 포도는 햇볕이 아니라 별빛에 익어간다.© News1
부르고뉴, 밤의 언덕(Côte de Nuits). 코트 드 뉘의 포도는 햇볕이 아니라 별빛에 익어간다.© News1

부르고뉴(Bourgogne), 땅과 시간이 만드는 요리들

 
다시 메뉴판의 암호들로 시선을 옮겨보자. 남프랑스를 대표하는 ‘프로방스 스타일(~Provençal, ~à la provence)’은 남도의 짙은 젓갈과 풍요로운 땅이 만드는 하모니를 닮았다. 또 지중해를 통해 들어온 아프리카와 아랍의 향신료는 강하게 후각을 자극한다. 

지중해의 바람 미스트랄(Mistral)과 프로방스의 토양을 일컫는 갸리드(Garrigue)에 인근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식문화가 합쳐져 이국적이고 향긋한 교향곡을 만드는데 북서부의 ‘노르망디나 브리타뉴풍(~Normandía, ~de Bretagne)’은 우리나라의 강릉이나 이북식 느낌이 난다.  

대서양과 알퐁스 도데를 키운 목가적 낙농은 재료에 집중하며 직관적인 아리아를 선보인다. 브리타뉴는 브리테인, 노르망디는 노르딕에서 온 지명이니 영국과 바이킹의 문화가 느껴진다. ‘부르고뉴풍(~Bourguignon, ~Bourguignonne)’ 이라고 적혀있는 메뉴는 전주식 혹은, 안동식 음식을 생각하면 음식의 리듬을 이해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가장 프랑스적인 역사를 유지했고 땅과 시간이 주는 미식의 기쁨과 낙관적인 만족을 섬세하게 조리에 녹여내는 프랑스 요리의 지휘자다.
와인의 맛도 지역 음식처럼 그곳 사람들 태생에 영향을 받는다. 보르도산(産) 와인이 대상(大商)의 기백을 가졌다면 부르고뉴산 와인은 귀족의 기품을 담아낸다. 

보르도는 프랑스 산업혁명의 중심 공업도시이고 대서양을 향하는 무역항이 있는 곳으로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등 파워풀한 품종들을 적극적으로 블렌딩하며 격동적으로 샤토(Château, 성)의 왕좌를 유지해왔다.

부르고뉴는 귀족과 농가를 중심으로 바람 한 점 없는 평온한 땅에 클로(Clos)라는 돌담을 쌓고 게으르고 게으르게 시간을 즐겼다. 끝도 없이 부드럽고 미세한 조향이 와인을 마시는 내내 영원할 것처럼 만개해 간다.      

디종의 재래시장, 부르고뉴 와인 로드는 D974 국도를 따라 머스터드의 고장 디종에서 세계 미식의 수도 리옹까지 이어진다. © News1
디종의 재래시장, 부르고뉴 와인 로드는 D974 국도를 따라 머스터드의 고장 디종에서 세계 미식의 수도 리옹까지 이어진다. © News1
부르고뉴산 블랙베리 까시스 소스의 코틀레크 다뇨. 부르고뉴의 음식은 인문학적 소스로 완성된다.  © News1
부르고뉴산 블랙베리 까시스 소스의 코틀레크 다뇨. 부르고뉴의 음식은 인문학적 소스로 완성된다.  © News1

몽라셰의 에스카르고(Escargot), 에세조의 캬냐드(Canard)
달팽이 요리 에스카르고. 파리지엥(Parisien)에게도 달팽이 집게의 사용은 쉽지 않다. 프랑스 식당에서는 달팽이가 종종 옆 테이블로 튕겨 날아간다. 프렌치 카사노바들은 이 사고를 조준하여 날린다. 만남이 우연이라고 믿는 만큼 기술은 깊게 들어간 것이다. © News1
달팽이 요리 에스카르고. 파리지엥(Parisien)에게도 달팽이 집게의 사용은 쉽지 않다. 프랑스 식당에서는 달팽이가 종종 옆 테이블로 튕겨 날아간다. 프렌치 카사노바들은 이 사고를 조준하여 날린다. 만남이 우연이라고 믿는 만큼 기술은 깊게 들어간 것이다. © News1

와인과 음식의 조화를 일컫는 마리아주(Mariage Mets et Vins). 부르고뉴 음식에서 와인과의 마리아주는 식탁의 즐거움을 더한다. 

달팽이 에스카르고는 몽라셰 마을의 화이트 와인과 잘 어울린다. 버건디 레드와인(Burgundy, 부르고뉴의 영어식 표현으로 버건디 와인 컬러는 부르고뉴 와인색을 뜻한다.)에는 오리고기 캬냐드와 양갈비 코틀레트 다뇨(Côtelette d’Agneau)가 빠질 수 없다. 

캬냐드와 아뇨(Agneau, 어린 양)에는 부르고뉴 특산품인 카시스 소스가 올라가는데 뽕나무 열매 오디와 비슷한 작은 베리류 열매인 카시스(Cassis, 까막까치밥나무열매)는 베리류 중 향이 좋기로 유명하다. 유명 향수 브렌드 샤넬은 자사의 향수에 들어가는 베리향을 부르고뉴의 카시스에서 추출하며 이곳에 직접 카시스 밭을 소유하고 재배까지 한다. 
 
부르고뉴 와인을 만드는 샤르도네 청포도와 피노누아 적포도 품종. 태생적으로 보르도 와인이 대상의 기백을 지녔다면 부르고뉴 와인은 귀족의 기품을 가지고 있다. © News1
부르고뉴 와인을 만드는 샤르도네 청포도와 피노누아 적포도 품종. 태생적으로 보르도 와인이 대상의 기백을 지녔다면 부르고뉴 와인은 귀족의 기품을 가지고 있다. © News1

시간으로 만드는 음식, 뵈프 부르기뇽, 투르트 부르고뉴

와인과의 마리아주와 섬세한 조리에 집중한 레스토랑의 문 밖에는 투박하지만 정성이 깊게 녹아있는 부르고뉴의 가정식 메뉴들이 있다. 뵈프 부르기뇽(Bœuf brouguignon)은 와인 소고기찜 요리에 해당하는데 허브에 재운 소고기에 와인을 부어 채소와 함께 오랜 시간 찐다. 

투르트 부르고뉴(Tourte bourguignonne)는 이 지역의 고기 파이로 작은 분량을 만들기 어려워 레스토랑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포도를 수확하거나 마을 잔치를 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식이다. (투르트는 둥글다는 뜻이다.) 

우리가 마블링을 고기의 등급 기준으로 삼는 것과는 반대로 프랑스위 소고기는 단백질 중심의 붉은색 살코기다. 이는 버터나 크림의 리포 프로틴으로 지방을 섭취하는 식습관과 더불어 낙농의 방법에 기인한다. 

방목을 하는 프랑스의 경우는 움직임이 적은 샤토브리앙(Châteaubriand) 같은 부드러운 안심을 선호하고 움직임이 없이 키우는 한우의 경우는 꽃등심 같은 움직임이 포함되는 부위를 좀 더 선호한다. 

생선의 조리에 있어서도 비슷한 경향을 볼 수 있다. 프랑스인이 가장 많이 먹는 생선요리는 단연 코드에 프리츠(Cods et Frits, 프렌치프라이 감자튀김을 곁들인 대구)이다. 기름기가 많은 고등어에 삶겨진 감자를 함께 쪄 먹는 우리 고등어찜 한 접시와 기름기 없는 생선에 대신 감자를 튀겨내는 대구요리는 결국 엎어치고 메쳐져 접시 위에 담긴 음식의 영양성분 총합은 매한가지가 된다. 

뵈프 부르기뇽과 부르고뉴산 소고기. 노르망디가 강릉처럼 산지의 신선함을 강조한다면 ‘부르고뉴풍’은 전주식의 손맛과 시간을 녹인 음식이다. © News1
뵈프 부르기뇽과 부르고뉴산 소고기. 노르망디가 강릉처럼 산지의 신선함을 강조한다면 ‘부르고뉴풍’은 전주식의 손맛과 시간을 녹인 음식이다. © News1
투르트 부르고뉴를 준비하는 오 코트 드 뉘 마을의 마담 니콜.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은 언제나 설렘과 기다림을 함께한다. © News1
투르트 부르고뉴를 준비하는 오 코트 드 뉘 마을의 마담 니콜.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은 언제나 설렘과 기다림을 함께한다. © News1

부르고뉴는 와인의 향기와 더불어 만보의 철학자가 되어 시간을 즐기는 농부들이 만드는 낙관적 음식이 유혹하는 곳이다. 여느 시골 마을이 그러하듯 부르고뉴의 밤은 일직 찾아온다. 미리내가 깔리고 밤하늘에 계절의 별자리가 가득 찬다. 아무런 불빛도 없는 포도밭에 별빛이 쏟아지면 이곳의 지명이 왜 ‘밤의 언덕’인지 알 수 있다. 부르고뉴의 포도는 햇볕이 아니라 별빛에 익어가고 잔잔한 시간들은 식탁의 깊이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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