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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보지 않을 자유…우리에겐 낙원동이 홍대나 강남"

게이바만 150여개 전국 최대 동성애자 거리…매일 밤 수백명 모여
상인들 동성애자 반기지만 혐오 시선 여전…전문가 "평등법 제정해야"

(서울=뉴스1) 정재민 기자, 최동현 기자 | 2017-02-26 07:00 송고
#. 해가 저물자 거리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포장마차마다 환한 불이 들어오고 손님으로 북적였다. 기차역 앞에 펼쳐졌던 한적한 동산은 어느새 소란스러운 번화가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2001년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첫 부분으로 주인공 치히로는 이름 모를 기차역에 도착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거리에 들어선다. 이윽고 밤이 되자 수많은 일본 신(神)들이 모여 향연을 벌이는 별세계를 만나게 된다.

남들은 좀처럼 알지 못하는 세상이 우리 주변에도 존재한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 거리는 어느 곳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모습이다. 하지만 해가 저물고 밤이 되면 낙원동 거리는 전혀 다른 풍경으로 채워진다.

길게 늘어선 포장마차마다 삼삼오오 짝지은 남성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귓속말로 밀어를 속삭이다가 뒤늦게 도착한 남자에게 "언니!"라고 외치며 손짓한다.

이곳은 밤마다 수백명의 성 소수자들이 밀회를 즐기는 낙원. 낙원동 동성애자 거리다.  
낙원동 동성애자 거리로 불리는 서울 종로구 낙원동 거리./뉴스1 © News1
◇편안함 찾아…차별 피해 낙원동 찾는 사람들

지인의 소개로 만나 9개월 동안 교제 중이라고 밝힌 동성애자 최모씨(28)와 김모씨(31)가 낙원동을 찾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들은 "눈치 보지 않고 동성애를 즐기기 위해 낙원동을 찾는다"고 말했다.

모두 지방에서 일하는 탓에 한동안 낙원동을 찾지 못했던 이들은 오랜만의 데이트에 설렌 표정이었다. 낙원동을 활보하는 내내 팔짱을 끼거나 손을 맞잡았다. 최씨가 지인에게 화상통화를 하자 김씨가 냉큼 달려와 최씨의 얼굴에 자신에 뺨을 비비기도 했다.

김씨는 "우리도 일반인과 똑같다"며 "일반인들이 홍대나 강남으로 데이트하러 가듯 우리도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 낙원동을 찾는다"고 전했다.    

이어 "다른 곳에서는 아무래도 주변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눈치가 보인다"며 "하지만 낙원동에선 모두 그런 사람(동성애자)들이니까 거리낌 없이 연애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온전한 연애'를 즐기기 위해 낙원동만을 찾아야 하는 현실에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최씨는 "외국보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색안경을 끼고 동성애자를 바라본다"며 "동성애에 대한 이해 없이 무조건 동성애를 혐오하고 비난하는 사람이 많아 아쉽다"고 전했다.

이들은 "하루빨리 동성애자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길 바란다"는 말을 남긴 뒤 다시 팔짱을 끼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게이바만 150여개…전국 최대 동성애자 '아지트'

3년째 낙원동 일대에서 게이바를 운영하는 이모씨(53)는 '동성애자 손님에겐 남다른 특징이 있느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자신도 '게이'라고 밝힌 이씨는 나긋한 목소리로 "동성애자들도 일반인처럼 술이나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즐긴다"며 "동성애자들이라고 특이한 행동이나 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오히려 게이들이 술 취해 소란을 피우는 경우도 일반 손님보다 더 적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일반인보다 여성스러운 면이 강하기 때문에 대체로 조용하게 음주를 즐긴다는 설명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서울 종로구 낙원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동성애자 구역'에는 150여개의 게이바가 영업 중이다. 같은 서울권인 이태원과 강남 일대는 물론 전국 어느 지역보다 많은 업소 수를 자랑하는 전국 최대 규모다. 규모가 큰 만큼 낙원동을 찾는 동성애자의 수도 하루 평균 수백명을 웃돈다.

이씨는 "20대 청년부터 70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동성애자들이 낙원동으로 몰려든다"며 "이에 따라 게이바도 젊은 층만 받는 게이바, 중년 이상의 동성애자만 받는 게이바 등 컨셉이 다양하다"고 전했다.

직업과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막노동일을 하는 동성애자부터 교수나 연예인, 국회의원까지 만나봤다고 이씨는 전했다.

그는 "뒤늦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가족 몰래 낙원동을 찾는 유부남들도 있다"며 "그들에게 이곳은 감춰뒀던 속내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해방구"라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낙원동을 "동성애자들의 아지트"라고 표현했다.

◇대다수 상인들, 동성애자 환영…"편견 사라져"

낙원동 일대 상인들은 동성애자들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동성애자 거리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임모씨(60)는 "동성애자들이 없으면 장사를 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이미 낙원동 일대는 동성애자들이 몰리는 곳으로 알려져 일반인 손님은 잘 찾지 않기 때문에 동성애자들이 주요 고객"이라고 답했다.

그는 "오랫동안 동성애자들을 대하면 누가 동성애자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며 "그들을 지켜보면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이 사라진다"고 전했다.

동성애자들이 연애 목적으로만 낙원동을 찾기보단 단순히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정모를 갖는 등 일반인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어 임씨는 "낙원동을 자주 찾는 일반인들도 동성애자들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별다른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며 "동성애자와 일반인 간의 시비가 있었던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낙원동 동성애자 거리에서 만난 커플./뉴스1 © News1
◇그들을 바라보는 혐오 시선 여전

하지만 이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눈도 여전히 많다.

낙원동의 한 편의점에서 3개월째 근무하는 심모씨(26)는 동성애자들에 대해 "혐오스럽다"고 답했다.

그는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많은 동성애자를 보고 놀랐지만 곧 이해하게 됐다"며 "하지만 지금은 혐오하는 감정이 생긴다"고 털어놨다.

하루에도 수 백명의 동성애자들을 대하지만 그들이 서로를 "언니"라고 부르거나 짙은 화장을 한 채 여성스러운 말투로 대화하는 모습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씨는 "이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은 베이비로션과 콘돔"이라며 "간혹 대여섯명씩 몰려와 베이비로션과 피임 도구를 사갈 땐 이것으로 무엇을 할지 상상이 돼 거부감이 든다"고 전했다.

이어 "특히 동성애자들은 편의점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돈을 찾아간다"며 "자신도 떳떳하지 못하니까 가족에게 숨기기 위해 현금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인근의 한 숙박업소의 관계자도 "동성애자들을 자주 대하는 우리도 이들에게 거부감을 느낄 때가 많다"며 "이들이 익숙지 않은 일반인들은 동성애자 이야기를 듣기조차 싫어한다"고 말했다.

동성애자들 때문에 영업에 지장을 받는다고 호소하는 상인들도 있었다.

낙원동 일대에서 사우나를 운영하는 이모씨(40)는 "동성애자들이 사우나 수면실에서 일반인을 추행하다가 적발되는 경우가 많다"며 "일반인도 이용하는 대중시설이다 보니 애정행각을 벌이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민원이 끊이질 않는다"고 호소했다.

이어 "음란행위를 하거나 성추행을 하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경고 문구까지 부착했지만 동성애자 간의 애정행각은 죄가 아니기 때문에 이들을 쫓아낼 명분도 없는 상태"라며 "영업방해를 이유로 내보내고는 있지만 근절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전문가 "차별은 동성애자 생존권을 박탈 문제…평등법 제정해 인식 개선해야"


전문가들은 낙원동 동성애자 거리를 "동성애자들이 나의 존재를 인정받고 지지받음으로써 삶의 증거를 확인하는 공간으로 인식한다"고 진단했다.

동시에 "낙원동의 존재는 성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유명 연예인의 커밍아웃이 잇따르고 성 소수자 인권단체가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한국은 성 소수자에 대한 사회인식이 급속도로 개선되고 있지만 중장년 세대나 보수세력은 여전히 성 소수자에 대한 거부감을 보인다"며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은 이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문제로까지 이어진다"고 우려를 표했다.

동성애자임이 밝혀지면 단순한 거부감이나 차별을 넘어 존재를 배제당하고 취업 등 생활에서도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생존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단순히 동성애자들을 인정하기보다 그들도 일반인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생겨야 한다"며 "기본법으로서 평등법을 제정하는 것이 인식개선의 첫 단추"라고 조언했다.
게이퍼레이드 행사에서 한 커플이 손을 꼭 잡고 있다.©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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