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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후예들, '신(新)미인도'로 한판 붙다

'미인도취전' 이동연, 신선미, 김현정 작가 인터뷰

(서울=뉴스1) 김아미 기자 | 2016-10-25 13:53 송고 | 2016-10-27 15:55 최종수정
왼쪽부터 이동연, 신선미, 김현정 작가. © News1
왼쪽부터 이동연, 신선미, 김현정 작가. © News1


이동연(48), 신선미(36), 김현정(28). 전통 한국화를 기반으로 하되 '현대적 한국화'를 그리는 국내 대표 여성작가들이다. 세 작가 모두 주로 한복입은 여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그 여인들은 대개  '미인'(美人)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같은 듯 다른' 이들의 그림은 종종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분명 다른 그림이지만, 형식 면에서 얼핏 닮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누가 먼저 그렸느냐'를 놓고 벌어진 갑론을박은 한때 '표절' 시비로까지 번졌다. 과거 한 방송 매체에서는 작가 이름과 그림을 잘못 내보내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세 작가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전시가 열렸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이 25일부터 12월4일까지 '畵畵(화화)-미인도취'라는 주제로 여는 기획전이다. 작가 25인이 각자의 방식으로 미인을 재해석한 그림들을 모아놨는데, 우연찮게도 세 작가의 작품들이 한 공간에 걸렸다. 처음 있는 일이다.

전시 개막에 앞서 24일 개별 인터뷰에 응한 세 작가들은 이미 작정한 듯 보였다. 김현정 작가는 "인터뷰 요청을 받고서 '오늘이 바로 그날인가'라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고, 이동연 작가는 "작정하고 정면승부를 벌이게 만드는 잔인한 전시"라며 웃었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묘하게 재밌는, 이 '발칙한' 전시에 소환된 세 작가는 대중의 편견과는 다르게 '쿨'한 모습이었다. "전시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는 반응이었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에게 선의의 경쟁 상대가 된다거나, 한국화를 대중에 더 잘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는 거였다.
1968년생인 이동연 작가와 1988년생인 김현정 작가는 무려 스무 살 차이가 난다. 1980년생 신선미 작가는 이동연 작가의 남편인 한국화가 임태규로부터 수묵화를 배웠다.

신윤복의 후예들, 이 시대 '신(新) 미인도'를 그리는 세 여성 작가를 '장유유서'를 깨고 '막내'부터 나이 역순으로 만나 봤다.

김현정 화가가 24일 '畵畵-미인도취' 전시 준비가 한창인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10.24/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김현정 화가가 24일 '畵畵-미인도취' 전시 준비가 한창인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10.24/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 김현정 "제겐 모두 좋은 선생님들…언젠가 한자리에서 뵙고 싶어"

"제겐 모두 좋은 선생님들이에요. 언젠가는 한 자리에서 다 만나뵙고 싶어요.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김현정 작가는 사뭇 당차고 도발적이었다. 선배, 혹은 스승뻘 되는 작가들과 나란히 비교돼 왔던 작가는 언젠가 한 자리에서 함께 인터뷰하고 싶다는 '욕심'까지 내비쳤다.

김현정 작가는 전통 한국화를 기반으로 미인도를 그리는 세 작가 중 가장 튀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화계의 아이돌'을 자처하는 작가는 튀는 외모도 그렇지만, 작품 속 여인처럼 공식적인 자리에는 꼭 한복을 차려입고 나타난다.

김현정 작가의 대표작은 '내숭' 시리즈다. 2012년쯤부터 본격적으로 이 시리즈를 시작했다는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21세기 풍속화"라고 표현했다. 한복 치마 속이 훤히 비치는 여인이 당구대 위에 올라가 있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등 단아한 듯 보이는 여성들에게서 '내숭' 이면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짧은 시간동안 대중적 인지도를 끌어올린 건 작가가 발로 뛴 덕분이다. 김현정 작가는 특정 갤러리에 소속되지 않고 작품 홍보를 직접 한다. "페이스북부터 웨이보까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만 12개"라며 "해외 홍보까지 꼼꼼히 챙기고 있다"고 했다. 관람객 6만7000여명을 기록한 이전 전시에서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전시장에 경호원들을 두기도 했다. 작가 스튜디오는 소규모지만 '기업형'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선화예중, 선화예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젊은 한국화가의 '복수전공'은 경영학이다.

"미대생들이 많이 하는 복수전공이 주로 미학이나 심리학이에요. 저는 옷을 좋아해서 의류학과 수업을 들었어요. 그런데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관두고 경영학 수업을 들었는데 너무 잘 맞았던 거에요."

그는 '화가는 왜 배고파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고 했다. "화가가 배고프다는 말, 너무 무서웠어요. 그래서 미술시장 구조를 이해하고 싶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경제학과를 들었어야 했는데 말이죠."(웃음)

김현정_내숭동산_한지위에 수묵담채, 콜라쥬_234×412.8㎝_2016 (세종문화회관 제공) © News1
김현정_내숭동산_한지위에 수묵담채, 콜라쥬_234×412.8㎝_2016 (세종문화회관 제공) © News1


작가의 말에 따르면 2013년 첫 개인전 때 100호 크기의 그림이 250만원 선. 지금은 그 10배 쯤 됐다고 하니 시장에서의 성장 속도도 무섭다.

판화도 직접 제작해 판매한다. 원목에 무광 유리까지 써서 10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고. "나이 어린 팬들도 내 작품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란다. 최근에는 카카오톡 이모티콘도 내 놨다.

"그림은 사치품이잖아요. 제가 명품백을 샀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그건 명품이 아니거든요. 마찬가지로, 작가 역시 그림을 보고 한 눈에 그 작가를 알아보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전시에는 '내숭동산'이라는 제목의 가로 4m 짜리 대형 작품 1점을 내 놨다. 작가를 닮은 한복입은 여인들이 회전목마 기구를 타고 노는 모습이다. 

전통 한국화를 기반으로 인물화를 그리는 선배 작가들과 끊임없이 비교돼 오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작가는 담담하면서도 단호했다.  

"소재가 같다고 해서 (따라했다고) 그렇게 얘기할 순 없지 않을까요. 소나무 그리는 작가만 해도 전 세계에 1000명은 넘을 걸요. 인물화도 마찬가지고요. 어느 특정한 지점에서는 서로 만나는 부분이 있겠지만, 나중에 결과물은 달라질 수도 있는 거고요. 분명한 건 그 분들은 제게 감사한 선배님들이라는 점입니다."

신선미 화가가 24일 '畵畵-미인도취' 전시 준비가 한창인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10.24/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신선미 화가가 24일 '畵畵-미인도취' 전시 준비가 한창인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10.24/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신선미 "한국 전통채색화 좀 더 쉽고 편안하게 받아들여졌으면"

김현정 작가의 '미인도'가 발랄한 20대를 그렸다면, 신선미 작가의 '미인도'는 좀 더 성숙한 30대의 모습에 가깝다. 김현정이 '보는 그림'이라면 신선미는 '읽는 그림'으로 평가된다. 스토리가 있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신선미 작가는 김현정 작가가 소위 '뜨기' 시작하면서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공론의 장에 가장 자주 소환됐다. 작가는 울산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2004년부터 전통 채색화를 기반으로 한복입은 여인의 '미인도'를 그려왔다. 단아한 듯 하지만 솔직한 매력이 넘치는 미인도, 해학미 넘치는 현대적 한국화다.

2007년 결혼, 2009년 출산을 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지만, 대외적으로는 한동안 공백기가 생겼다. 그리고 이 즈음 김현정 작가가 부각되기 시작했으니, 일부 신선미 작가 팬들은 비슷한 화풍의 그림을 나중에 그린 김 작가가 신 작가를 따라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신선미 작가는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화풍이 비슷했던 다른 작가들과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유독 김현정 작가와 많이 비교됐다"는 것이다.

"한복 시리즈가 이미 하나의 장르처럼 형성이 돼 있었어요. 그런데 김현정 작가는 워낙 유명하니까 이슈가 된 것 같고요. 그렇게 따지면 한복 입은 미인도를 그리는 작가들은 모두 신윤복을 따라한 게 되죠."

작가는 "10년 넘게 활동해 오면서 이렇게 뜨거운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다"며 "오히려 미인도를 그리는 한국화 작가들이 많아지면서 서로 윈윈하게 돼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선미_secret2_장지에 채색_133×79㎝_2012 (세종문화회관 제공) © News1
신선미_secret2_장지에 채색_133×79㎝_2012 (세종문화회관 제공) © News1


출산과 육아로 소위 '경력단절'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작가는 착실하게 작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오히려 아이를 키우면서 작가의 그림도 함께 성숙해졌다. "순수한 아이의 시선으로 어른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작업에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개미요정' 시리즈다. 마치 '걸리버 여행기'의 난쟁이들처럼 사람 모양을 한 작은 요정들이 한 화면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그림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개미요정' 시리즈를 포함, 아이와 어른을 함께 그린 근작 4점을 선보였다. 모두 소장자들에게 빌려 온 작품들이다. "장지에 40~50번씩 얇게 여러번 채색했다 말리기를 반복하며 그리는 방식이라 빨리 그릴 수도 없고 작품 수도 많지 않아 전시를 자주 열지 못했다"는 작가는 "앞으로 전시 활동 등을 좀 더 활발하게 할 생각"이라고 했다. 일단 오는 11월 3년만에 여는 개인전을 계획하고 있고, '한밤중 개미요정'이라는 타이틀로 그림책 출간도 앞두고 있다.  

작가는 이번 그룹전이 전통 채색화를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한국화가들이 채색화를 보여주면 다들 서양화로 착각해요. 한복을 그린 서양화로요. 이번 전시를 계기로 우리 전통 채색화를 좀 더 쉽고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됐으면 좋겠어요."

이동연 화가가 24일 '畵畵-미인도취' 전시 준비가 한창인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자신의 작품 <신 여협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10.24/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이동연 화가가 24일 '畵畵-미인도취' 전시 준비가 한창인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자신의 작품 <신 여협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10.24/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이동연 "젊은 작가들 참신하고 기발…이동연 만의 미인도 보여줄것"

"미인도로 정면승부를 벌이는 잔인한 전시예요.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하."

세 작가 중 가장 어른인 이동연 작가는 전시 개막을 앞두고 설레면서도 긴장되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미인도를 재해석 한 여러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보며 스스로 비교하고 반성하고 많이 배운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잘 해야 본전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재밌는 도전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요새 젊은 작가들은 참신하고 기발하고 실력도 있어요. 그 안에서 저도 제 나름대로의 미인도를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

'미인도'를 주제로 현대적 한국화를 그리는 후배 작가들과의 그룹전이 탐탁치 않을 법도 한데, 정작 선배 작가는 "못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흔쾌히 참여했다고 했다. 오히려 "외부에서 보는 시각이 문제"라며 "없는 말을 만들어내 (작가들끼리) 이간질 시키는 건데,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이동연 작가 역시 "젊은 작가들을 통해 한국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확장되고, 서로 상생하는 계기가 돼서 좋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모교를 비롯해, 고려대, 동국대, 단국대 등 대학 10여곳에서 약 20년 가까이 동양화를 가르쳐왔다. 올해 미국 뉴욕 초대전 등 큰 전시를 앞두고 지난해부터는 작업에만 전념하고 있다.

이동연 작가가 그리는 '미인도'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심상이 '중층적'으로 보여진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 전통과 첨단, 동양과 서양 등 복합적인 이중성들이 상징과 은유를 통해 내 자신을 대변한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게 '여협도' 시리즈다. 이번 전시에서도 글로벌 게임엄체 '라이엇 게임즈'와 협업 프로젝트로 게임 속 전사들을 동양화와 접목한 '여협도'와 '신여협도'를 선보였다.

"어린 아이가 칼춤을 추는 모습이에요. 아슬아슬한 그 모습에 제 마음 상태가 투영돼 있죠. 젊음을 잃어가면서 느끼는 결핍도 그 안에 담겨 있어요."

이동연_신 여협도_장지에 채색_192×112cm_2016 (세종문화회관 제공) © News1
이동연_신 여협도_장지에 채색_192×112cm_2016 (세종문화회관 제공) © News1


그는 한복도 마냥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현대 여성으로서 떨쳐버리지 못하는 굴레를 상징한다"는 설명이다.

"결혼과 동시에 출산, 육아를 병행하며 시댁 챙기는 일까지 여성이기 때문에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요. 제자들이 그래요. 선생님은 모든 걸 가졌다고.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 안고 가야했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눈물도 많이 흘렸고요. 그 모든 것이 답답하게 조여매는 한복처럼 느껴졌어요."

이 때문에 이동연의 '미인도'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미인 그 자체보다 미인을 바라보는 타자의 위선적 시선을 꼬집는다.

"제 있는 그대로 모습을 페이스북에 올리면 반응이 없어요. 그런데 과장되게 잘 나온 예쁜 사진을 올리면 '좋아요'가 폭발적이죠. 그걸 보면서 '미인이라는 게 소통의 무기가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미인도는 제 자신의 위선적 시선을 대변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을 비추기도 하죠."

"마냥 예쁘기만 한 미인도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이동연 작가가 앞으로 그리고 싶은 미인도는 '내려놓고 그리는' 미인도다. "재주를 좀 내려놨으면 좋겠다"는 한국화가이자 남편인 임태규 씨의 조언도 한 몫 했다.

"방금 목욕하고 나온 듯, 치장하지 않은 민낯의 여여한 여인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어요. 욕심을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자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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