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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의원 "선하게 쓰지 못한다면 권력 버릴 것"

[인터뷰] '문학진흥법' 입안·통과시킨 국회의원이자 시인 도종환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6-01-29 17:32 송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자 대변인인 도종환 시인이 27일 자신의 의원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며 웃고 있다. © News1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자 대변인인 도종환 시인이 27일 자신의 의원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며 웃고 있다. © News1


어깨를 두드리며 그는 내게 이제 다시 부드러워지라 한다
몇발짝 물러서서 흐르듯 이어지는 처마를 보며
나도 웃음으로 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저 유려한 곡선의 집 한채가
곧게 다듬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것을 본다
(도종환의 시 '부드러운 직선' 일부)
접시꽃같이 소박하고 지순한 아내를 암으로 먼저 떠나보낸 후의 슬픔을 담아냈던 시집 '접시꽃 당신'(실천문학사). 1986년 초판을 낸 이후 전 국민의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시인이자 현직 비례대표 국회의원인 도종환(61) 의원을 설명하는 데 이 시집을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한편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해직교사,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더불어민주당 의원 겸 대변인이라는 그의 '정치적' 면모도 설명에서 빠질 수 없다.

27일 오후 국회 내 도종환 의원의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도 의원은 직업병(?)인 듯한 웃음기 싹 가신 매서운 눈매를 자주 보였지만 그만큼 자주 웃음으로써 하회탈처럼 만면에 주름진 시인으로 돌아왔다.

그가 주축이 되어 입안하고 지난해 말 통과시킨 '문학진흥법'은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뚝심과 함께 문학에 대해 가진 진한 애정을 보여준다. 이날 인터뷰에서는 시인과 정치인(정당인)이라는 거의 대척점에 있을 법한 직업을 갖고 사는 고단함, 지난해 거의 사망선고를 받다시피한 한국문학과 문단을 뒤흔든 문학권력 문제 등을 이야기했다.
도 의원은 제도적, 재정적으로 문학을 회생시킬 수 있는 기초를 '문학진흥법'으로 마련했다고 보았으나 문인들이 논의에 적극 참여해 문학을 살리는 데 나서야 한다고 보았다.

도 의원은 또한 강한 현실참여와 서정적 문학 세계를 추구한 자신의 삶과 예술을 '부드러운 직선'이라고 표현했다.

다음은 도종환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정치인으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쁠텐데 시를 쓰는 데 어려움은 없나.

▶시간을 확보하는 게 늘 고민이다. 시 쓸 수 있는 시간, 혼자 조용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종종거린다.

-어릴 때 꿈이 시인이었나. 정치인은 아니었을 것 같다.

▶시인이 꿈이 아니었다. 어릴 때 꿈은 화가였는데 그 꿈을 못이루고 좌절하고 그 좌절이 시를 쓰게 했다.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 해본 적이 없다. 정치인은 더더욱. 그래서 내가 왜 여기(국회) 와 있을까, 앞으로 어떻게 되어 있을까, 누구 내 운명을 주관하는 분이 계실텐데 앞으로 어떤 일을 내게 시킬까 궁금해진다.

-문학진흥법이 창작자 개인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지금까지 내가 만난 개인들의 관심사는 '어떤 법이 생긴다면 나는 어떤 혜택을 받나', '내가 쓰는 작품이 어떤 인정을 받나' 하는 것이었다. 문학단체들은 '우리에게 얼마나 지원해줄 수 있나'였고. 그것 이상은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는다. '독자들이 어떻게 문학을 사랑하게 만들 수 있을까'는 물어보지 않는다.

문학판 자체를 살리고 한국문학이 세계적 문학으로 가는 것 이 두 가지를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문학진흥법은 이를 위한 제도적·재정적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국가가 개입해 문학을 살려낸 사례가 있었나.

▶해외 나가보니 각 나라 국민들은 자국 출신 문인들을 잘 알고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러시아는 국립문학관에 연구원이 150명이나 됐다.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되었기에 전국민적으로 자국 문인을 자랑스러워하고 향유하는 것이 가능했을 거라고 본다.

-왜 국민들이 책과 문학을 읽지 않는다고 보는가.

▶최근 조사에 따르면 모바일 기기를 들여다보는 시간은 하루 평균 2.3시간인 반면 책읽은 시간은 하루 30분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정보와 지식을 얻는 매체가 스마트폰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나이 어린 학생들이 예전에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분위기에서 자라났는데 이제는 '대학교를 어디로 가느냐'가 운명을 결정하니 책읽는 것보다 공부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게 됐다. 일본 학생은 우리 학생들보다 16배, 미국 학생들은 30배 책을 더 읽는다.

그리고 자기만 알고 이해하는 시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담은 소설 등 문학 자체가 반성할 점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20년전 영화는 영화진흥법을 만들고 영화아카데미를 만들어 인력을 키워내 봉준호 같은 감독을 배출했고 1000만관객이 드는 영화를 만들면서 한국영화의 수준을 점점 올려왔다. 만화진흥법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보며 문학도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문학진흥법도 만들게 됐다.

-지난해는 문학권력 논쟁이 문단을 뒤흔들었는데.

▶문학 말고도 영화나 무용 등 다른 분야도 다 권력이 있다. 그렇다고 권력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에서는 매체가 권력이다. 매체, 즉 문학잡지는 출판사를 끼고 있는데 출판사와 매체는 작가들을 자기들의 멤버로 들어오게 해 관리하고 많은 수익을 낸다. 그간 이들은 권력 소리를 듣고 소외된 이들로부터 원망의 대상이 됐다.

이 권력이 진짜 우리 문학을 살릴 수 있는 길이 뭔지 고민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지난해 문학의 궤멸 등의 말은 많았지만 어떻게 살릴지에 대한 논의는 잘 이뤄지지 않았다. 한두개 출판사가 아닌 문학계 전체가 참여해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문학을 회생시킬 수 있다고 보는가.

▶못살릴 수도 있다고 본다. 다 살려놨는데 다시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살릴 수 있게 고민을 함께 하고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정치인으로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삶을 조화시키기 어렵지 않은가.

▶정치는 논리적 접근이고 문학은 삶에 대한 정서적 접근이다. 이 둘이 조화가 될 때가 있고 안될 때가 있다. 하지만 '문학정신'을 지킬 수 없다면 나는 언제라도 정치를 그만둘 것이다. 문학이 내게는 훨씬 의미가 크니까. 시인으로서 나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달에 100만원 이하의 보수를 받은 문예인들이 70~80%일 정도로 예술계의 상황은 열악하다.

이들을 위해 누군가는 법을 만들고 예산을 만들고 해야 한다. 그렇다 해도 순식간에 내가 개량화되거나, 불의와 타협하거나, 권력을 선하게 쓰지 못할 것 같으면 나는 정치를 그만둘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정치를 한 게 손해막심이다. 일단 정치인이 되면 국민 절반이 싫어한다. 나머지 절반은 수많은 요구를 한다.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고 감옥에 들어가는 등 현실참여적인 인생을 살았지만 시 자체는 전통적인 서정성을 갖고 있는데 모순 아닌가. 

▶시가 내 삶의 방향과 같았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결국 '부드러운 직선'의 문학세계가 되었다고 자평한다. 부드러운 직선이란 모순인데, 절에 가면 유려한 추녀의 곡선을 만들어낸 것이 다들 개개의 곧은 나무들이었다. 좋은 결과를 낼때도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올곧은 인생과 그 인생으로 빚어내는 유려한 곡선의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해왔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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