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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 함께한 쪽방촌 '작은 장례식'…"삶의 흔적 기억할게요"

쪽방촌 주민 고 김철구(54)씨 위해 주민 등 100여명 참석 넋 기려
두레협동조합 "지자체와 힘 합쳐 작은 장례 계속할 것"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2016-01-21 18:03 송고 | 2016-01-21 18:34 최종수정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돈의동 사랑의쉼터에서 열린 고 김철구씨 추모식에서 돈의동 주민이 참배를 하고 있다.  © News1 박세연 기자
"당신의 삶의 흔적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작은 자리 만들었으니 부디 위로가 되소서."

21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돈의동 사랑의 쉼터 지하에 위치한 6평 남짓한 작은 공간. 이 곳에서 작지만 특별한 장례식이 열렸다.

5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쪽방촌 주민 고(故) 김철구(54)씨를 위해 돈의동사랑의쉼터와 서울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함께 마련한 추모식이다.

이날 추모식에는 쪽방촌 주민 30여명을 비롯해 사랑의쉼터, 서울조합, 주민센터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생전 고인의 모습을 담은 영정사진 밑으로는 향연이 하얗게 피어 올랐고 조문객들은 영정 앞에 이들의 마음을 담은 국화를 조심스레 놓았다.

이날 장례식에서는 무연고자인 김씨를 위해 김상현 서울조합 이사장과 이화순 사랑의쉼터 소장이 공동 상주로 나섰다.

6년 전부터 김씨와 교류한 이화순 소장은 고인을 "성격도 좋고, 덩치와 풍채가 참 좋았던 사람, 하지만 술을 먹지 않고는 자기 뜻을 밝히길 꺼려하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이 소장은 "개인적으로 김씨의 고민을 좀 더 들어주고 친근하게 다가갔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며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하지 못했는데 작은 장례라도 치를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우은주 서울조합 국장은 "김씨는 종종 오전 8시부터 주민센터에 들이닥쳐 소란을 피우곤 했다"며 "이런 과격한 행위 밑바닥에는 '날 좀 알아달라, 외롭다, 사랑받고 싶다'는 감정이 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 "가족과 함께 하겠다는 고인…꿈 못 이룬 채 생 마감"

쪽방촌 주민들에 따르면 김씨는 12년 전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지고 쪽방촌에 처음 들어왔을 당시만 하더라도 가정을 복원하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가족을 만나고 싶어도 찾아갈 수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김씨는 건설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다 몸을 다쳐 조건부수급자가 되었다.

김씨는 마음의 고통을 잊기 위해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술은 김씨 마음의 고통을 잠시 달래주긴 했지만 대신 간경화, 고혈압, 당뇨 등 또 다른 고통을 안겼다.

결국 김씨는 이 지병으로 인해 8일 서울 은평구 서부병원에서 합병증인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쪽방촌 주민 박동기(62)씨는 "어쩔 때 김씨는 5일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고 술만 마시기도 했다"며 "2달 전부터 술은 끊었는데 워낙 몸이 좋지 않아 이렇게 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우 국장은 "주민들은 베니어판 너머로 들려오는 다른 거주자들의 소음을 들으며 편안함을 느끼고 위안을 받기에 쪽방촌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한다"며 "'굶을 수도 있고 아파도 괜찮지만 외롭고 고독한 건 몸서리쳐지게 끔찍하다'는 주민들의 말을 듣고 가슴이 무척 아팠다"고 말했다.

이번 추모행사는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고인을 위해 돈의동사랑의쉼터와 서울한겨레협동조합이 상주로 나서 마련했다. 2016.1.2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 "가는 길만은 외롭게 않게…" 시민단체 나서 작은 장례 추진
 
가족도 없이 외롭게 세상을 떠나는 무연고자들. 이날 장례는 돈의동 쪽방촌 주민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돈의동사랑의쉼터와 2012년부터 무연고자들의 장례식을 추진해온 두레협동조합이 협약을 맺으면서 이뤄졌다.

앞서 사랑의쉼터와 서울조합은 이날 오전 10시30분 같은 장소에서 작은장례추진 업무협약식을 열어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실제로 이날 처음 열린 '작은 장례'를 통해 고인을 추억하고 주민 간의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주민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태우 서울조합 실장은 "주민들 중 '장례를 치르지 않는다면 혼자서라도 술을 방에 한 잔 따라놓고 김씨를 기리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쪽방촌 주민 이정희(62·여)씨 역시 "이렇게 동네 주민들과 함께 장례식을 하는 것은 처음"이며 "마지막 가는 길에 사람이 많으면 좋으니 잘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우 국장은 "예전에는 이웃 주민이 죽어 조등이 걸리면 알고 같이 슬퍼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이제는 애도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게 됐다"며 "공동체를 회복하겠다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지자체와 계속해서 협약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y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