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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 오늘 동성결혼 국민투표…세계흐름 역행할까?

(서울=뉴스1) 이준규 기자 | 2015-12-20 09:39 송고 | 2015-12-21 16:30 최종수정
지난 2012년 동성결혼 허용 국민투표에 참여한 슬로베니아 주민들.© AFP=뉴스1
지난 2012년 동성결혼 허용 국민투표에 참여한 슬로베니아 주민들.© AFP=뉴스1


동성결혼 인정 여부를 가리기 위한 슬로베니아 국민투표가 20일(현지시간) 치러진다. 전 세계적으로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나라가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이번 투표는 이미 허용된 동성결혼을 막기 위해 치러진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슬로베니아는 이미 지난 3월 의회의 결정으로 인해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동성 커플에게 결혼할 수 있는 권리, 입양을 할 수 있는 권리 등을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이 법안에 반대하는 보수층과 로마 가톨릭 신도들은 아직 법안 발효일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인 점을 이용해 이를 무효화하는 국민투표를 추진했다.

국민 절반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탓에 동성결혼 반대 단체인 '위험에 처한 아이들'은 국민투표에 부치는데 필요한 4만명의 서명을 어렵지 않게 이끌어 냈다.

슬로베니아 헌법재판소는 수개월 간의 숙고 끝에 국민투표를 승인했고 이날 치러지게 된다.

슬로베니아의 동성결혼 국민투표가 독특한 점은 동성결혼이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를 인정하느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의회가 결정한 내용의 이행 여부를 다시 투표로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는 22개 국가가 동성결혼을 인정하고 있으며 시민결합 제도를 포함하면 35개 국가가 동성 커플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나라 중 어느 곳도 이미 동성 커플에게 허용했던 법적 지위를 다시 거둬들인 적은 없다.

올해에는 아일랜드가 지난 5월 세계 최초로 국민투표를 통해 동성결혼을 허용했고 미국 대법원도 지난 6월 동성결혼을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와 다수의 동성애 옹호단체들은 이런 점을 들어 동성결혼의 합법화가 전 세계적인 추세이자 인권신장을 위한 거부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보리스 디트리히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 권리신장 국장은 "소수자들의 권리, 특히 평등은 결코 다수의 기분에 따라 결정돼서는 안 된다"며 "결혼에 대한 권리는 매우 기초적인 권리로 동성 커플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금지당하거나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앰네스티도 "동성결혼을 비롯한 소수자들의 인권은 투표가 아니라 정부에 의해서 보호받아야 할 마땅한 권리이다. 슬로베니아 국민들에게는 아직 평등을 위한 약속을 지킬 기회가 남아있다"며 동성결혼 허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보수층과 가톨릭 단체들은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를 지키는 것은 물론 아이들이 동성 부부에 의해 키워지는 것이 가치관의 혼동 등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국민투표로 이런 일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가톨릭의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모든 슬로베니아인들에게, 특히 공적 영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되고 있는 가족을 지켜줄 것을 당부하고 격려한다"고 말해 동성결혼 합법화 무산을 독려했다.

슬로베니아는 지난 2012년 동성결혼 허용 등을 포함한 가족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진행했지만 반대의견이 과반을 넘으면서 이를 부결시킨 적이 있다.

그 후로 비록 3년밖에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그 동안 전 세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미국과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가 동성결혼 허용국가로 돌아섰다.

이미 한 차례 동성결혼 허용을 막았던 슬로베니아가 세계적으로 부는 변화의 바람에 동참할지 아니면 전통적인 가족을 지켜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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