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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로 시작해 '문단권력'으로 불붙은 논쟁의 올해 무얼남겼나

[2015문학계 결산]'신경숙 표절·문단권력'…덮었던 논란, 다시 타오르다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5-12-14 17:53 송고 | 2015-12-14 18:16 최종수정
소설가 신경숙© News1
소설가 신경숙© News1

올해 문학출판계 최대의 사건은 지난 6월에 불거진 '신경숙 표절 논란'과 이에 따른 '문학권력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제기되었지만 소위 ‘침묵의 카르텔’로 억눌러진 표절과 문학권력 문제는 억눌려온 세월만큼 무서운 기세로 폭발했으나, 반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논의는 크게 진전되지 못한 상태다.

문학 계간지들은 가을호에 이어 올 겨울호에도 각각 기획과 좌담 기사 등으로 표절과 문학권력 문제를 짚었고, 대중들은 신경숙씨는 물론 그의 남편 남진우 문학평론가의 일거수 일투족에 여전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

뉴스1은 그간 나온 계간지 등의 자료를 분석하고 문학평론가, 소설가로부터 의견을 들어 올해 문화면은 물론 사회면까지 언론매체를 뒤흔든 표절사태와 문단권력 논쟁의 현주소와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색하고 진단했다.

문단의 '당사자'라고 할 문학평론가들과 소설가들은 신경숙 표절 논란에 대해 '대중적이고 선정적으로 소비되었을 뿐 생산적이지는 않았다'는 부정적 평가에서부터 '의미있는 토론의 단초를 마련해주었다'는 긍정적 평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생각을 내놨다.  

문학인들은 현재의 한국문학의 가장 큰 문제점에 대한 견해도 다양하게 밝혔다. 몇명의 스타 작가에게만 의존하는 '스타시스템', '비판부족', '독자들의 외면' 등을 지적하는 견해가 나왔다. "지금의 문학시스템이 작가가 아닌 출판사만을 위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표절사태 “작가들의 창작욕 위축” vs “문단과 평단 문제 드러내”   

작가 이응준씨의 글로 촉발된 신 씨의 표절논란은 법적인 고소고발사태, 창비의 백낙청 편집인에 대한 비난 고조, 한국문학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확대됐다. 중견 소설가 K씨는 표절사태에 대해 ”이슈 자체가 대중적, 감성적으로 소비되어 버리고 제대로 된 논의의 동력 자체가 소모되고 만 느낌”이라면서 “명백히 표절이 드러나 치명상을 입은 몇몇 작가를 낳았을 뿐 표절 기준이 세워지지 않아 창작의 위축만 가져왔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창비의 염종선 이사는 “심도있는 토론으로 가기 위한 단초가 마련됐다”고 했다. 권성우 평론가는 “이 시대 문단과 평단의 문제들을 투명하게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반면 손아람 작가는 “표절은 현상일 뿐 근본적인 것은 표절을 가능케하는 문단권력의 구조”라면서 문단권력의 문제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표절 가이드라인의 수립'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문단권력은 실체없는 감정적 용어일 뿐”vs.“출판사 인적쇄신은 위기관리 전략”

신씨 표절사태 이후 문학출판계의 '빅3'로 불리는 문학동네와 창비, 문학과지성사의 인적쇄신이 이뤄졌다. 문학동네는 강태형 대표와 1세대 편집인들이 물러났다. 강 대표는 대표직 사퇴 전에 “보유중인 문학동네 지분 43.5% 가운데 20% 남짓을 ‘대표이사 직위 지분’으로 내놓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인적 쇄신 뿐 아니라 실질적인 지분구조 변화를 시사했다.

뉴스1이 ‘대표이사 직위지분’을 받았는지 문의하자 신임 염현숙 대표는 “지금 추진 중인데 한국의 주식회사법이 생각보다 복잡해서 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지분 변동 결과는 2017년 금감원 공시자료에는 반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창비도 백낙청 편집인과, 백영서 편집주간, 김윤수 발행인이 동반퇴진했으며 내년 1월경에 쇄신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문학과지성사 역시 최근 서평가와 영상커뮤니케이션 전문가까지 포함한 새로운 편집동인 진용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미흡하다'는 의견과 '문단권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과장'이라는 이의제기도 있었다.

중견소설가 K씨는 “‘문단권력’이나 ‘권력의 축’ 등은 매우 불분명하고 감정적인 용어들이다. '권력'이나 '상업성' 등을 비판하면서 작가나 문예지, 출판사에게 정도 이상의 받아들이기 힘든 윤리 기준을 부과하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손아람 작가는 “문학상과 문예지로 권력을 유지하는 구조를 그대로 놔두고 편집위원만을 인적 쇄신하는 것은 근본적이라 볼 수 없다. 오히려 '기업 차원의 위기관리 전략'에 가깝다”는 비판을 내놨다. 이어 "자사에서 출간한 소설에 대해 집중적으로 비평을 청탁하는 행위를 부당한 압력으로 간주하고 비평가에게 완전한 비평적 선택의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광호 문학평론가 역시 “인적쇄신보다 중요한 것은 출판자본으로부터 문예지 편집의 자율성을 얼마나 확보했느냐”라면서 ‘자본과의 관계’를 문제삼았다. 염종선 창비 편집이사는 “한국문학의 어려움을 몇몇 문예지의 권력문제로 돌리고 이를 타격하는 것은 문제의 초점을 잘 잡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이 '인적쇄신'은 문단권력의 독점 해소를 위한 근본해결책은 아니라고 보았다.

◇다양한 문학잡지 출현 "문학잡지가 무슨 권력?"vs. "재정적·문학적 독립이 관건"

신경숙의 표절 논란은 문단과 문학권력이 가져온 다양한 욕망과 비양심이 낳은 결과라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를 키우고자 하는 문단의 무리한 욕망으로 인해 역량부족의 작가를 신화화했고, 그 과정에서 '역량부족의 작가가 기댈 수 밖에 없었던 것이 표절'이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자사의 문예지를 통해 배출한 작가를 주례사 비평을 통해 띄우고 다시 자사의 문학상을 수여해 권위를 부여하는 비양심적인 메커니즘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문단권력으로 지목된 창비와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에 거센 쇄신의 요구가 부는 과정에서 대안의 매체를 찾는 모색도 이어졌다. 그 결과 '악스트', '미스테리아', '문학과 행동', '뉴스페이퍼', '더 멀리', '아날리얼리즘', '주변인과 문학' 등이 창간됐다. 반면, 민음사의 계간 '세계의 문학'은 새로운 형태의 문예지를 모색하며 폐간되었다. 

대안을 추구하는 이런 움직임에 대해서는 기대와 함께 우려도 있었다. 중견소설가 K씨는 "본래 문학은 분권적이고 개별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며 "기존의 문학잡지가 권력이었고 새로운 문학잡지 창간이 '권력의 독점'을 깨는 움직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염종선 창비 이사는 "신생잡지들이 자생력과 지속가능성을 지닐 수 있도록 실력과 대중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새로운 문예지들이 기존 문예지의 구도를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 권성우 평론가는 "유보적"이라고 답했으며 손아람 작가 역시 "다양한 접근은 바람직한 일이나 권력 질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의미있는 변화인지는 지켜봐야한다"고 답했다.

이광호 평론가는 성공의 열쇠로 이들 잡지의 '재정적·문학적 독립'을 강조했다. "크라우드 펀딩 등을 통한 출판자본으로부터의 '재정적 독립', 기성의 잡지 스타일과 편집체제로부터 '문학적 독립'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국문학의 문제점은 '스타시스템', '비판부족', '독자들의 외면' 등

최근 몇년간 한국문학은 부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표절이 사라지고 문단권력이 해체되면 한국문학이 회생할 수 있을까. 표절과 문단권력 외에 한국문학에 다른 근본적인 문제가 없는지 묻자 이광호 평론가는 '시장 규모가 작은 데 비해 스타 시스템 등의 요인으로 양극화가 심한 것'을 들었다. 그는 "한 명의 100만부 작가가 아니라 100명의 1만부 작가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권성우 평론가는 '생산적인 비판과 논쟁의 부족'을 들었고 중견소설가 K씨는 '침묵하던 독자가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을 들어 작가들이 느끼는 위기감을 보여줬다. 손아람 작가는 "현재의 문단 제도는 작가나 독자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출판 기업의 안정적 수익원 확보를 위해 운영되는 제도이다. 이 제도 안에서 작가와 독자는 교환 가능한 부품 자원의 역할을 맡고 있을 뿐"이라면서 현재의 시스템에 대한 짙은 불신을 드러냈다.

그는 "다음 세대 예비작가들이 제도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이미 문학 제도는 재능있는 작가들에게 마땅한 보상이나 장기적으로 성장할 토대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작가들은 어렵게 등단해도 (자신이 아닌) 새 작가와 새 작품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출판사와 대중을 보게 될 뿐이다. 이 제도의 유지로 이득을 보는 것은 매번 출판사뿐"이라고 답했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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