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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는 "김일성 만세" 왜?…고려대 대자보 열풍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의 있었으면"…'안녕들 하십니까' 2년

(서울=뉴스1) 차윤주 기자, 최은지 기자 | 2015-12-12 06:00 송고
11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서 학생들이 김수영 시인의 '김일성 만세'를 비롯한 대자보를 보고있다. 지난달 30일 경희대에서 한 학생이 김 시인의 '김일성 만세'를 게재했다가 학교측에서 10여분 만에 떼어버려 논란이 일었다. 고대에도 11일 같은 자보가 붙었으나 누군가에 의해 훼손됐다가 다시 붙여졌다. 2015.12.11/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김일성 만세"를 외치는 대자보 수십여개가 최근 고려대학교에 나붙어 관심을 끌고 있다.
 
김수영 시인의 시를 패러디한 학생들의 목소리는 경찰의 지난 5일 2차 민중총궐기 집회 불허, 정부·여당의 '복면금지법' 추진 등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 시대 상황을 비꼬며 대학가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12일 고려대와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9일 정경대학 후문에 붙기 시작한 '김일성 만세' 대자보가 현재 수십여개로 늘어났다.
 
김수영 시인의 시는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로 시작한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 밖에"라고 끝을 맺는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반대하는 4·19 혁명이 일어났던 1960년 쓰여진 시다.
  
이 시가 55년이 지나 대자보로 첫 등장한 것은 지난달 30일 경희대였지만 하루만에 학교 행정실에 의해 철거됐다. 
  
이어 지난 9일 고려대 정경대학 후문 게시판에 처음 나붙었는데 이튿날 밤 40대 남성 두명이 이를 무단 철거했다. 
  
당시 이를 목격했다는 전모(24)학생은 "저녁 8시쯤이었다. 중년 남성 둘이 '고려대에 이런게 붙을 수 있냐, 여기가 김일성 대학이냐' 면서 자보를 찢었고 경찰이 대자보를 가져갔다"고 했다.
11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서 학생들이 김수영 시인의 '김일성 만세'를 비롯한 대자보를 보고있다. 지난달 30일 경희대에서 한 학생이 김 시인의 '김일성 만세'를 게재했다가 학교측에서 10여분 만에 떼어버려 논란이 일었다. 고대에도 11일 같은 자보가 붙었으나 누군가에 의해 훼손됐다가 다시 붙여졌다. 2015.12.11/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그러나 그날 이후 오히려 대자보 열풍으로 번지며 풍자에 풍자가 이어지고 있다.

수학과 학생 이연학(21)씨는 11일 오후 본인과 친구들의 이름으로 대자보 30개를 붙였다. 시의 첫 구절인 '김일성 만세'를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로 바꾸고, 네번째 구절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경찰과 검찰이 우겨대니'라고 비틀었다.
  
이씨는 "대자보가 뜯어진 걸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지인들 30명이 함께 만들었다"며 " 문학작품 하나를 갖고 노발대발해서 대자보를 뜯고 경찰에 신고했다는 것 자체에 큰 문제의식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독재자 딸'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면 이런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되물으면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행하는 '고양이어'로 풍자한 대자보도 눈에 띈다. 시 내용 아래 "안녕하새오 고양이애오. 판사님 주인 자바가지 마라오. 또 때지 마라오(주인 잡아가지 말아요. 또 떼지 말아요)"라고 대자보 훼손을 꼬집었다.
 
11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서 학생들이 김수영 시인의 '김일성 만세'를 비롯한 대자보를 보고있다. 지난달 30일 경희대에서 한 학생이 김 시인의 '김일성 만세'를 게재했다가 학교측에서 10여분 만에 떼어버려 논란이 일었다. 고대에도 11일 같은 자보가 붙었으나 누군가에 의해 훼손됐다가 다시 붙여졌다. 2015.12.11/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학생들은 시험기간이라 바쁘게 걸음을 옮기면서도 '김일성 만세' 대자보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대학원생 이모(26)씨는 "나는 북한을 좋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와 별개로 표현의 자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면서 "(대자보 훼손이) 일종의 '트리거'(방아쇠)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14일 1차 민중총궐기 이후 정부와 새누리당이 '복면' 시위대를 규탄하며 금지법을 추진하자, 2차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다양한 '가면'으로 이를 비꼰 바 있다.
 
고려대학교 2009학번 주현우씨가 작성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 News1

고려대는 2년전 '안녕들 하십니까' 신드롬의 진원지기도 하다.
 
꼭 2년전인 2013년 12월13일 경영학과 4학년이던 주현우 학생이 붙인 자보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철도노조 파업이 한창이던 당시 '88만원 세대'의 고민,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정치적인 무관심 등을 담담히 얘기하면서 타인의 안부를 물은 '안녕들 하십니까' 자보는 2013년 대한민국을 환기하는 매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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