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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티콘'기호로만 쓴 소설, 우리가 읽을 수 있을까?

중국 설치미술가 '쉬빙'이 쓴 '지서: 점에서 점으로' 출간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2015-08-10 11:36 송고
'지서: 점에서 점으로' 전시회 전경 (사진 출처 쉬빙홈페이지www.xubing.com)


"이 책의 해석 가능성은 당신이 어떤 언어를 쓰고 있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글을 읽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도 달려 있지 않다. 다만 당신이 얼마나 동 시대의 삶에 깊이 관여되어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저자 쉬빙(Xu Bing·60)은 '지서: 점에서 점으로'(Book from the Ground: From Point to Point)에 대해 "문맹자도 읽을 수 있도록 세계공통어를 염두에 두고 썼다"고 말했다.

그가 7년여 만에 완성한 이 책은 글자가 하나도 없다. '지서'는 전 세계를 돌며 수집한 '이모티콘'(Emoticon)과 '픽토그램'(Pictogram) 2500여 개만으로 쓰였다.

이모티콘은 문자를 이용하여 만들어낸 감정을 나타내는 기호들을 일컫고, 픽토그램은 공항, 국제행사 등에서의 사용을 목적으로 제작된 그림문자이다. 둘 다 사전 교육을 받지 않고도 모든 사람이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므로 단순하고 의미가 명료해야 한다.

그러나, 이모티콘과 픽토그램으로 이뤄진 이 책은 단순한 줄거리를 미리 알아도 따라 읽기가 쉽지 않다. '지서'의 내용은 이렇다. 평범한 직장인 '미스터 블랙'이 오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겪은 일들이 펼쳐진다.

미스터 블랙은 화장실 앞 남녀 기호의 그 남자다. 알람 소리에 맞춰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화장실에서 배변 문제를 잠시 겪는다. 직장에서 발표할 때는 땀을 뻘뻘 흘리며 긴장하기도 한다. 점심으로 스테이크를 먹을지 국수를 먹을지 고민한다. 블랙은 온라인에서 데이트할 사람을 구하고 약속을 잡아선 만나러 간다. 이 모든 이야기가 기호로 전개된다.

'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그렇게 치기 어린 소설이라고 치부하기엔 저자 쉬빙의 이름값이 무겁다. 그는 '중국 아방가르드' 1세대로 분류되는 서예가이자 설치미술가다.

서예와 탁본에 기초한 대규모 설치작업을 발표해왔으며 '문자'와 '소통'의 문제를 다뤄왔다. 9.11테러로 발생한 먼지를 수집해 그것으로 만든 설치미술 '먼지는 어디서 스스로 오는가?'와 로마자 알파벳을 한자의 상형문자로 그려낸 '새로운 영문자'(New English Calligraphy)가 유명하다.

다음은 '지서' 10~11쪽 이미지와 출판사가 제공한 해석 예시이다. 이 책은 문자언어가 인간의 소통에 얼마나 훌륭한 도구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지서: 점에서 점으로' 10쪽 (사진제공 헤이북스)
 

'지서: 점에서 점으로' 11쪽 (사진제공 헤이북스)


 ▲ 10쪽
알람시계는 : 음악소리를 내며 더 크게 울린다!! 비로소 눈을 번쩍 떴다! 시끄러운 알람을 끄고, 잠결에 밖을 보니 비가 내린다. 기분이 우울해져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이 깬 고양이가 주인을 찾더니, 침대 위로 뛰어들었다. 깜짝 놀라 짜증을 내며 고양이 주인인 미스터블랙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주인을 깨운 고양이는 의연하게 돌아간다. 미스터블랙은 일어나서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변기에 앉아 모닝X을 해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땀을 비 오듯흘리며 힘을 줘도. 웬일인지 모닝X은 나올 생각을 안 한다. 혹시 '내 장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라는 생각에 걱정된다. 미스터블랙은 스마트폰으로 트위터, 구글플러스, 페이스북 등을 오가며 웹 서핑을 하다가 갑자기 배에 신호가 옴을 느낀다. 한 번, 다시 힘을 주어 두 번, 드디어 시원하게 모닝X이 해결되니 미스터블랙은 기분이 좋아졌다. 깔끔히 뒤처리를 하고 자신의 X을 한 번 확인한 후 물을 내린다. 이후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면도크림을 발라 면도를 한다. 그리고는 세면대로 가서 양치도구를 챙겨 이도 닦는다. 모든 용무를 마치고
욕실을 나선다. 이제 미스터블랙은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속옷과 셔츠와 청바지, 흰 와이셔츠,

▲ 11쪽
흰 양말에 구두를 신었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본 미스터블랙은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셔츠가 문제인 것 같다. 초록색 셔츠로 갈아입어도 자신의 모습이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늘색 셔츠도 뭔가 아쉽다. 보라색 셔츠도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곤란한 미스터블랙은......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옷을 생각해 보니 역시 흰 셔츠가 나았겠다 싶다. 기분 좋아진 미스터블랙은 셔츠에 어울리는 넥타이를 매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 다 차려입은 미스터블랙은 드레스 룸을 나섰다. 준비를 마친 미스터블랙은 주방으로 갔다. 커피포트의 전원을 켜고 커피를 내린다. 각설탕을 넣고 휘휘 저으니 향이 좋은 커피가 완성되었다. 이후 가스레인지의 불을 켠 미스터블랙은 프라이팬을 예열했다. 계란요리가 하고 싶은 미스터블랙은 (계란 프라이와 베이컨 두 장을 노릇하게 굽고자) 생각한다

(쉬빙 지음·헤이북스·1만3800원)

'지서: 점에서 점으로' 표지 (사진제공 헤이북스)
 

저자 쉬빙(Xu Bing·60) (사진 출처 쉬빙홈페이지www.xubing.com)
 

'지서: 점에서 점으로' 전시회 전경 (사진 출처 쉬빙홈페이지www.xub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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