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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 1925년·1968년·2014년…로마에서 서울까지 3번의 시복식

1925년 주교 2명과 신부 1명, 장면·장발 형제만…1968년 순례단 136명. 남종삼 후손도 참석

(서울=뉴스1) 염지은 기자 | 2014-08-10 14:38 송고 | 2014-08-10 15:28 최종수정
<br />1925년에 시복된 79위 순교자들의 복자화. 현재 서울 명동성당 대성전의 왼쪽 앞 벽에 걸려있다.(천주교 방준위 제공)© News1

1925년에 시복된 79위 순교자들의 복자화. 현재 서울 명동성당 대성전의 왼쪽 앞 벽에 걸려있다.(천주교 방준위 제공)© News1
오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릴 프란치스코 교황의 '124위 순교자' 시복식은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세 번째 시복식이다.

10일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위원장 강우일 주교)는 1925년과 1968년에 로마에서 있었던 시복식 풍경을 담은 김정숙 영남대 국사학과 교수의 글 '로마의 시복식과 서울의 시복식'을 간추려 공개했다.

한국 천주교의 첫 시복식은 일제 강점기인 1925년, 두 번째 시복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인 1968년에 두번 다 로마에서 열렸다. 각각 79위, 24위가 시복됐고 두 번에 걸쳐 복자품에 오른 103위 순교자들은 1984년 성인품에 올랐다.

1925년 79위 시복식은 개념도 생소한 '순교자 표창식'이었다. 

당시 한국 교회는 시복식이 대략 6월에 있을 거라 예측하고 로마로 미리 대표단을 보냈다. 70세를 넘긴 서울교구 뮈텔 주교와 대구교구의 드망즈 주교가 대표로 3월 17일 수행원도 없이 출발했다.

둘은 여객선을 타고 부산을 출발해 고베, 상해, 홍콩, 싱가포르, 사이공, 스웨즈 등을 경유해 프랑스 마르세유를 거쳐 로마로 가는 길을 떠났다. 이들은 3개월의 긴 여정 끝에 6월 17일 로마에 도착했다. 79위의 시복식이 7월 5일에 열린다는 것도 5월초에야 알게 됐다.

시복이라는 용어도 없던 터라 당시 신문은 '순교자 표창식'(동아일보 1925년 3월 19일자)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로마까지 갈 엄두도 낼 수 없는 가난한 신자들의 안타까움이 커지자 '경향잡지'의 편집을 맡고 있던 한기근 신부가 한국인이 한 명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어렵사리 여비를 마련해 5월 11일 로마를 향해 떠났다.

이어 7월 1일에 뉴욕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 중이던 장면(장익 주교의 아버지), 장발 형제가 시복식에 친인척은 아니지만 친인척 자격으로 참가했다.

한기근 신부는 시복식 풍경을 '경향잡지'에 '로마여행일기’로 연재해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이와 같이 좌정한 후 고등성직자 일위가 제대 좌편에 예비한 높은 제상에 올라서서 금상 폐하의 칙령을 낭독하니 이는 금상 폐하께서 조선 치명자 79인을 복자로 반포하시는 칙령이어라. 치명자들의 큰 상본(초상화)을 그려서 오처(다섯 군데)에 매달았으니 1은 대제대 뒤 벽상에 2, 3은 대제대에서 한참 나와서 양편 기둥에 4는 성전 정문 위에 5는 성전문 뒤 강복대(교황이 보세만민에게 강복하시는 높은 제상)에 매달았더라.(경향잡지 1925년 9월호)".

시복식은 일반인들에게 천주교를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두 번째 시복식은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됐다.

이 시복식에는 한국에서 전세기로 도착한 순례단 136명이 함께 했다.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 65명과 유럽에 유학 온 천주교 신자, 시복될 남종삼의 후손 7명도 함께 했다.

미사 주례는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대주교(1969년 추기경에 서임)가 교황을 대리해서 맡았다. 김수환 대주교도 할아버지 김보현이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순교자의 후손이었다.

시복식은 교황 바오로 6세의 '시복 칙서' 낭독에 이어 김 대주교의 선창으로 '떼 데움'(Te Deum·산은 찬미가)이 시작되고 성당 전면에 걸려 있는 복자들의 초상화를 가린 막이 걷혔다.

미사의 여러 부분에 한국어가 사용됐으며 시복식과 교황 바오로 6세의 특별 연설은 5개 국어로 중계됐다. 미사 마지막에 교황청 합창대가 '복자찬가'를 부르자 한국인 참가자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교황 바오로 6세는 강론에서 24위의 한국 순교자들을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신앙의 귀감'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멀리 떨어져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고 했다.

24위 복자가 로마에서 시복될 때 한국에선 한강변 새남터순교성지와 양화진 복자기념 성당에서 미사가 거행됐다. 

다음 날 한국 신자들은 김수환, 노기남, 장병화 주교를 모시고 교황을 특별 알현했다. 교황은 거듭 한국 교회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표했고, 1시간 20분이나 걸린 알현은 아리랑을 부르며 마무리됐다. 

두 번에 걸쳐 복자가 된 이들은 1984년 5월 6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이 땅에서 성인품에 오르게 됐다.




senajy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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