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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훈의 북리뷰]크리스토퍼 히친스 '논쟁'

김승욱 옮김, 알마 刊

(서울=뉴스1) 김철훈 기자 | 2013-06-16 22:01 송고 | 2013-06-17 01:40 최종수정
김철훈 © News1
지난해 세상을 떠난 고어 비달(Gore Vidal·미국·향년87세)은 기인(奇人)같은 면모로 일세를 풍미한 저술가이자 평론가, 방송인이었다. 유머와 재치, 독설, 때로는 궤변으로 무장한 비평과 도발적인 언동은 미국과 유럽사회를 난처한 모습으로 웅성거리게 만들곤 했다.

최근 국내에서 번역 발간된 '논쟁'(원서명 ARGUARY·김승욱 옮김·알마)의 저자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미국·1949년4월 13일~2011년12월15일)는 비달의 후계자가 될 뻔한 사람이다. 그는 말년에 '지금까지 알려진 것들을 부정하고 괴팍한 수정주의의 주장을 퍼뜨리는' 비달을 '미치광이'라고 비판하며 '부자관계' '스승과 제자 관계'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비달에 대한 거친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히친스는 비달과는 달리 미국-유럽의 주류 언론과 실력자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글과 말, 머리가 되는 천부적인 저술가이며 평론가, 저널리스트였던 그는 영미 언론인으로부터 가장 믿을 수 있고 해박한 지식인으로 평가받으며 행복하게 눈을 감았다.

◇히친스-비달 공통점과 차이점

튀는 글과 언동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았던 비달과 히친스의 공통점은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불편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상대가 누구든 '그 것만은 제발!'이라는 대목을 용케 찾아내 상처내고 소금을 뿌린다. 어설픈 상대방이 '너무하지 않느냐'고 반발하면 박식하고 현란한 말과 글로 초토화시킨다. 그들은 입만 살아있는 것 같은 매우 불편하고 꺼려지는 존재로 인식된다.

두 사람의 차이는 다분히 '천성적'인 것이다.

동성애자로서 미국 문단사상 처음으로 게이를 긍정적으로 그린 소설 '도시와 기둥'(The City and the Pillar·1948년)을 세상에 내놓아 미국을 발칵 뒤집었던 비달은 제도와 관습을 초월하려는 이단아적, 탐미주의적, 고립주의적 성품을 지녔다. 그는 미국을 제국주의국가로 단정하고 '부시정부가 십중팔구 9.11테러에 가담했다'는 등 끊임없이 공격 해댔다.

히친스는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다. 코스모폴리타니즘과 민주주의, 자유주의를 신봉하고, 근본주의와 제국주의, 패권주의, 인종·여성차별주의, 지도자숭배, 미신을 배격한다. 특히 폭력과 테러, 허무주의를 증오하고, 태생적으로 패권주의가 될 수 밖에 없는 종교를 경계한다. 그는 중동과 아프리카, 한반도의 DMZ 등 분쟁과 갈등의 지역을 직접 찾아 취재하는 등 발로 뛰는 지식인이기도 하다. 그의 글과 말, 행동은 이같은 신념을 일관되게, 진성성 있게 관철시키고 있는 것이 미덕이다. 이것이 그가 비달의 후계자가 될 수 없는 이유이고, 평론가로로서, 또한 저술가로서 주류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배경일 것이다.
'논쟁'© News1

◇히친스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있는책

'논쟁'은 히친스의 다섯번째이자 마지막 글 모음집인 '아규어리'(ARGUARY)의 총 6부 중 4부를 담은 책이다.

히친스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에 대한 비평글들인 제1부 '순전히 미국적인'편을 통해 미국의 각성을 호소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잘못하는 일도 있지만 현존하는 가장 모범적인 민주, 자유주의 국가이며, 공화국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순수했던 건국의 아버지들을 다시 조명함으로써 미국의 좋은 전통의 불씨를 살리려했다고 밝혔다.

종교 알레르기를 갖고 있는 히친스는 정교분리의 전통을 확립한 토마스 제퍼슨을 소개하며 '종교적 중립성이 종교적 다원주의를 보장하는 최고의 요인이라는 점을 단호히 외면하려는 사람이 있다'고 경고한다. 노예들과 삶을 공유하며 노예제도 폐지에 앞장선 존 브라운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옹호하고, 미국 땅에서 나고 자란 순종 미국인으로서 미국을 단합시킨 링컨을 높이 평가했다.

또 질병에 시달리며 약물에 의존해 정치를 한 존 F 케네디의 실상을 알리고, 실험으로 동물을 학대하는 행위를 고발하며, 미성년자도 사형에 처하는 미국의 사법체계를 비판했다.

제3부 '외국 이야기'편에는 히친스가 필생의 화두로 삼았던 테마들이 정리돼 있다. 진보지식인이었던 그는 2001년 9.11사태 이후 다소 변화된 입장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는 자살폭탄테러 등 폭력과 테러에 대한 진보지식인들의 태도에 실망했음을 털어 놓은 적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범이자, 냉혹하고 사랑을 모르는 좀비…2001년 이후로 내가 쓴 글은 한 단어도 예외 없이, 노골적으로든 암시적으로든 그 증오스럽고 허무주의적인 주장만이 아니라 그 주장을 어떻게든 변명하려는 사람을 반박하고 물리치기 위한 것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네오콘'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글쓰기를 위해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파키스탄, 키프로스, 알제리, 레바논, 이라크, 튀니지, 우간다, 베트남, 북한, 한국, 쿠바, 베네주엘라 등을 찾아 폭력과 인종차별, 여성차별, 아동학대, 전쟁후유증 문제 등을 심층적으로 취재했다.

두차례 방문한 북한에 대해서는 '조지오웰의 1984년보다 못하다'며 '미국식 관용어로 북한은 노예국가라고 하는 편이 훨씬 더 정확하다. 이 나라는 노예국가이자 기근국가'라고 주장했다. 그는 밤에 찍은 위성사진과 북한 사람들의 평균신장이 남한에 비해 평균 15센치나 작다는 점이 '북한에 대한 충격적인 두가지'라며 '굶주려서 제대로 자라지 못한 이 난쟁이들은 어둠 속에서 살면서 영원한 무지와 두려움 속에 갇혀 있으며, 외부인을 증오하도록 세뇌받고, 군대처럼 조직화되어 죽음의 종교를 강제로 주입받는다'고 적었다.

또 대를 이어 재앙을 겪고 있는 베트남의 고엽제 피해자와 납치돼 노예로 부려지는 우간다 어린이들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하며 인류의 각성을 촉구하기도 한다.

제2부('즐거움, 짜증, 실망')와 제4부('말이 가치')는 여성과 동성애, 성풍속, 종교, 언어생활 등 히친스의 백과사전적 지식이 현란한 장이다.

히친스는 영국의 찰스 황태자가 2010년 옥스퍼드대에서 환경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영혼 내면의 심각한 위기'에서 문제가 발생하며, 인류의 '영혼 상실'은 십중팔구 갈릴레오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이라고 단언하자 그를 비판했다.

'우리가 힘들게 확립한 이성과 과학의 원칙이 신뢰를 잃으면…그 진공 속으로 쳐들어 올 사람들은 계시를 통해 이미 진실을 알고 있다고 자신하며 지금 이곳에서 진정한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온갖 종류의 단호한 근본주의자일 것이다. 아이작 뉴턴에서부터 조지프 프리스틀리와 찰스 다윈과 어니스트 러더퍼드와 앨런 튜링과 프렌시스 크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국 과학자들이 세상을 밝히려고 기울인 노력을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작업에 바탕이 된 것은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였다. 그런데 왕위를 찬탈한 하노버 왕가 출신으로 도덕적으로 지적으로 약해 빠진 인간이 그런 업적을 무심히 헐뜯는 꼴을 보아야 하다니….'

이 책은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국제 정치와 사회, 문화적 현상 뿐만 아니라 그 속에 깨알처럼 박혀 있는 지식도 함께 흡수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책을 읽으면 히친스가 입만 살아있는 빅마우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그는 또 있지도 않았던 대량살상무기를 핑계로 이라크를 침략한 미국의 네오콘과 같은 부류도 아니다. 세상을 뜨기 전 분명하게 자신이 언제나 '진보'였다고 밝힌 바 있다.

어떠한 주제와 현상에 대해서도 자신의 신념을 토대로 시시비비를 가렸던 진보지식인 히친스와 그의 생각을 이 책을 통해 만나보기를 권한다.


rans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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