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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계청소년선수권 우승 김진순 감독 "한국식 핸드볼, 경쟁력 있다"

세계여자청소년선수권서 8전 전승 우승
"애들도 안 우는데 내가 먼저 울었다"

(서울=뉴스1) 안영준 기자 | 2022-08-17 05:00 송고
 김진순 핸드볼 대표팀 감독(IHF 제공)
 김진순 핸드볼 대표팀 감독(IHF 제공)

김진순 감독이 '한국식 핸드볼'로 세계 정상에 오른 뒤 "경쟁력을 확인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어 "과거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표현되는 한국 핸드볼의 영광도 결국은 '한국식 핸드볼'로 일군 것"이라면서, 많이 뛰고 협동하는 핸드볼을 한다면 앞으로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으리라 전망했다.

김진순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 청소년 핸드볼 대표팀은 지난 11일(이하 한국시간) 북마케도니아 스코페에서 마무리된 세계여자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이전 최고 성적이 3위였던 한국의 사상 첫 우승이었다.

한국은 조별리그 3경기와 본선 리그 2경기를 모두 이기고 토너먼트에 오른 데 이어 8강, 4강, 결승전까지 연달아 승리, 8전 전승이라는 완벽한 기록을 남겼다. 

무엇보다 힘과 높이로 중앙 공격에 집중하는 유럽식 핸드볼이 아닌 스피드, 빠른 전환, 협동 수비, 측면 공격을 앞세운 '한국식 핸드볼'로 결과를 내 의미를 더했다.

현장에선 이미 대회를 마친 다른 나라 선수들과 북마케도니아 현지 팬들이 한국을 응원하는 흥미로운 모습까지 연출됐다. 국제핸드볼협회(IHF)는 홈페이지를 통해 "세계가 한국식 핸드볼에 매료됐다"는 찬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13일 트로피와 함께 귀국한 김진순 감독을 16일 전화 통화로 만났다.

대업을 이루고 돌아왔지만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는 "예민한 스타일이라 대회 내내 긴장했고, 잠을 못 잤다. 시차 적응까지 안 돼서 돌아온 뒤엔 이틀 동안 잠만 잤다"며 멋쩍게 웃었다.

주변에선 대회에 나서는 '김진순호'를 향해 입상(3위 이내)이 현실적인 목표라고 예상했다. 세계적 추세인 유럽식 핸드볼을 거스른 한국식 핸드볼이 성공할 지에 대한 의문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보란 듯이 최고의 성과를 냈다.

 핸드볼 대표팀 감독(IHF 제공) 
 핸드볼 대표팀 감독(IHF 제공) 

직접 지도한 입장에서 우승을 예상했을까. 김진순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힘과 높이는 어쩔 수 없이 (유럽에) 밀린다. 대신 머리가 좋고 발이 빠르다. 더해 국내 초중고 지도자들이 고생해준 덕분에 선수들 대부분이 협동 수비에 대한 개념이 확실하게 잡혀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특색이라고 판단했고,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이어 "남자 중학교 팀이나 인천시청 핸드볼 팀과 연습 경기를 해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내용이 좋았다. 그래서 조금만 다듬으면 (세계선수권에서)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대회 초반엔 뜻밖의 암초도 있었다. 경유지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거쳐 스코페로 가는 과정서 악천후를 만났다. 비엔나에서 8시간을 대기한 뒤 스코페로 향했던 선수들은 비행기가 회항하는 바람에 비엔나로 돌아와 다시 9시간을 기다렸다가 스코페에 도착, 스위스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를 앞두고는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김진순 감독은 "사실 첫 경기에선 우리가 준비했던 것을 하나도 못 했다. 다행히 스위스가 객관적 전력이 떨어지는 팀이다 보니 개인 실력으로 간신히 이겼다. 여기서 흔들렸더라면 이후에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첫 경기를 잡은 뒤엔 승승장구했다. 독일,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네덜란드, 스웨덴을 모두 잡고 4강 토너먼트에 올랐다.

김진순 감독은 우승을 이루기까지 가장 큰 고비로 4강 헝가리전을 꼽았다. 그는 "(결승에서 만났던) 덴마크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잘 하는 특정 선수 몇몇을 협동 수비로 막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봤다. 또 루마니아나 네덜란드전은 팽팽한 내용이 예상은 됐지만 그래도 질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반면 헝가리는 작년부터 무패 중이던 탄탄한 조직력의 팀이었다. 솔직히 걱정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한국은 강호 헝가리마저 스피드로 제압, 30-29로 승리하며 최대 고비를 이겨냈다. 역전과 재역전을 거듭한 끝에 이룬 감격적인 승리였다.

김진순 감독은 "그동안 준비했던 게 생각나 울컥해서 펑펑 울었다. 선수들이 하루에 3번씩 훈련하는 등 힘든 시간들이 있었고 그게 결과로 나왔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애들도 안 울었는데 내가 먼저 울었다"고 전했다.

그동안 고생했던 설움과 승리의 기쁨을 이때 모두 털어낸 덕분일까. 정작 세계 1위 덴마크를 꺾고 우승을 확정한 뒤엔 아무도 울지 않고 당당히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고 한다.

 핸드볼 대표팀 감독(IHF 제공) 
 핸드볼 대표팀 감독(IHF 제공) 

김진순 감독의 '한국식 핸드볼'은 현지에서 큰 이슈였다. 많은 팬들이 한국 벤치 뒤에 몰려 앉아 "사우스 코리아"를 외쳤다.

김진순 감독은 "유럽 열성 팬들의 나팔 응원이 우리 선수들의 기를 죽일까 염려했다. 그런데 대회를 치를수록 그들이 모두 우리 팬이 됐다. 나중엔 우리 홈구장 같았다. 큰 힘이 됐다. 아마도 유럽에선 잘 하지 않는 스타일로 승리하는 걸 보며 희열을 느낀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국식 핸드볼로 사상 첫 우승이라는 결과를 내고, 팬들의 마음까지 얻은 김진순호의 대성공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김진순 감독은 '한국식 핸드볼'의 경쟁력에 대해 자신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성과로만 비춰지는 점은 경계했다.

그는 "몇몇은 내가 '한국식 핸드볼'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실 그건 과거 한국 여자 핸드볼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1988 올림픽 금메달, 1992 올림픽 금메달,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2004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 등)을 냈을 때 이미 다 했던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한국 여자 핸드볼은 '우생순'으로 불리며 큰 성공을 거뒀던 바 있다. 

그는 이어 "성공에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한 번쯤은 과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한국 핸드볼은 두 번 세 번 더 뛰고, 한 명이 할 것을 두 명, 세 명이 협동해야 유럽을 넘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제 시선은 세계 정상에 오른 한국여자핸드볼 대표팀 선수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지에 쏠린다.

김진순 감독은 "이번 우승은 모두 선수들이 열심히 해 준 덕에 만들 수 있었다. 선수들에게 고맙다"면서 "지금 핸드볼에 대해 갖고 있는 순수함과 열정을 시니어 레벨로 올라가서도 잃지 않기를 바란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제자들에게 애정 어린 메시지를 전했다.


tr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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