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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 "사과할 일 있지 않나"…트라우마 끝 '학원 친구' 보복

초등생 시절 자신 괴롭힌 기억 못하자 흉기 휘둘러
1심 "엄벌 불가피"…항소심은 트라우마 인정해 감형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2021-03-05 06:58 송고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나 기억해?"

지난해 3월, 당시 17세였던 A군은 춘천시 소재 아파트의 초인종 버튼을 눌렀다. 문을 열고 나온 B군은 A군과 동갑내기로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A군은 B군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 기억해? 나에게 사과할 일 있지 않아?" A군의 머릿속에 B군은 가해자로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은 7, 8년 전 초등학생 시절 영어학원에서 만났다. A군은 당시 B군의 괴롭힘으로 심리적 충격(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우울증까지 겪었다고 한다. 부모에게 트라우마를 호소했으나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했다.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해 B군을 다시 만난 A군은 사과를 꼭 받아야겠다고 다짐했다. B군의 거주지를 알아낸 A군은 품에 흉기를 숨기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연 B군은 무엇을 사과해야 할지 기억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B군에게 A군은 화가 치밀었다. A군은 격분하며 흉기를 꺼냈고 이후 참혹한 장면이 연출됐다. B군은 크게 다쳐 약 4주간의 치료가 요구된다는 의학적 진단을 받았다. 

A군의 행위는 정당화할 수 없는 심각한 범죄다. 다만 '학교폭력 미투'가 최근 확산하면서 그의 범행 동기를 가볍게 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트라우마에 따른 사적 보복 행위로 해석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가 지속할 경우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악화한다. PTSD 보유자의 대표적인 특징은 분노조절을 하지 못하며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폭력에 노출된 사람이 시간이 지나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보고서도 많다. 

특수상해 혐의로 기소된 A군은 지난해 7월 1심 재판에서 장기 3년·단기 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를 두고 A군은 "무겁다"며, 검찰은 "가볍다"며 항소했다.

항소심을 맡은 춘천지법 형사1부(부장판사 김대성)는 감형판결을 내리면서 A군의 트라우마를 언급했다. 

어린 시절 괴롭힘에 따른 트라우마로 우울증을 겪었을 가능성이 상당하고 범행 전 트라우마를 부모에게 알렸으나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점을 고려해 원심을 깨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다는 것이다. 

앞서 1심 재판부는 "범행의 죄질이 좋지 않고 위험성이 매우 컸던 점, 피해자의 신체적 건강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한 데다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 또한 상당한 것으로 보이는 점에 비춰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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