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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뭘 그런 일로 화내나" 말에 살인자로 돌변한 옆집 남자

층간소음 시비 말리려다 참변…모자, 살해·중태
정신질환으로 망상에 빠져 범행…징역 30년 선고

(대전=뉴스1) 김종서 기자 | 2021-01-17 07:00 송고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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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경시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생명은 과연 소중하다고 생각하는지…"

2020년 12월 9일.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40)에 대한 항소심 재판을 심리하던 재판장은 "안타깝다"며 선처를 호소하는 피고인을 향해 쏘아붙이듯 질문을 이어갔다.
재판부는 범행 당시 A씨가 정신질환에 따른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참작하고 있었지만, 이해와 용서는 다른 문제였다.

이어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살인밖에 없었나. 형을 마치고 사회로 복귀했을 때도 화가 나면 사람을 죽일 것인가"라는 재판장의 질문에 A씨는 "쌓여있던 감정이 폭발해서 그랬다. 수감생활을 마치면 산 속에서 혼자 살겠다"고 답했다.

A씨는 지난해 3월 24일 오전 8시30분께 대전 동구의 한 빌라에서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이웃집 모자에게 흉기를 휘둘러 B씨(63·여)를 살해하고 C씨(43)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B씨는 A씨가 층간소음 문제로 위층을 오가며 화를 내는 모습에 시비를 말리고자 "뭘 그런 일로 화를 내느냐"라는 말을 건넸을 뿐이었다.

순간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집에서 흉기를 챙겨 곧바로 B씨를 찾아간 A씨는 문이 열리자마자 B씨를 마구 찔렀다.

비명소리를 듣고 방에서 나온 아들 C씨는 자신의 어머니를 찌르고 있는 A씨의 오른팔을 잡고 막아보려 했지만, A씨는 허리춤에 있던 다른 흉기를 왼손으로 꺼내들고 C씨 역시 무자비하게 찌르기 시작했다.

A씨가 잠시 진정됐을 때, 자신과 어머니의 죽음을 눈앞에 둔 C씨는 A씨에게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A씨는 '살인이나 미수나 비슷하다'는 생각에 눈앞에 쓰러져있는 B씨의 목을 흉기로 다시 찌른 뒤 집으로 돌아가 태연하게 손을 씻었다.

A씨는 평소에도 B씨가 현관문을 일부러 세게 닫는다는 등 자신을 괴롭힌다는 망상에 빠져있었다. 지난 2010년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4년의 실형과 함께 치료감호를 받았을 때도 치료사들이 자신을 비웃고 무시해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A씨는 B씨에 대한 살인 혐의는 인정하지만, C씨에 대한 살인미수는 다가오지 못하도록 위협했을 뿐 살해할 의도가 없었고, 당시 정신질환이 극심해진 심신상실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1심을 맡은 대전지법 재12형사부는 A씨가 흉기를 두 자루나 준비했고, 가슴이나 배 등 치명적인 부위를 망설임 없이 노렸다는 점에서 고의가 없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정신질환에 의한 범행이라는 주장은 일부 받아들여 징역 30년과 치료감호를 선고했다.

A씨는 재판부가 사실을 오인했고, 형량이 너무 무겁다며 즉각 항소했고, 검찰 역시 항소해 1심과 마찬가지로 무기징역을 선고해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항소심을 심리한 대전고법 제1형사부는 재판 과정에서 A씨의 범행을 크게 질책했지만, 판결은 1심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지난 1월 15일 오후 2시 항소심 재판부는 A씨에게 원심과 같은 징역 30년을 선고하고 치료감호에 처할 것을 명령했다.

1심 재판부의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10년 부착 명령을 거둬 달라는 A씨의 청구는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미 흉기에 찔려 쓰러진 피해자의 목을 다시 흉기로 찔러 확실하게 살해했고, 이때 미수나 살인이나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 등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만 앞선 동종 범죄에 따른 치료감호 후 주변의 도움 없이 별다른 정신과적 치료를 받지 못했고, 이로써 충동적인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다시 장기간 치료감호를 통해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guse1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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