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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만취한 밤 16년 돌본 장애인 형 스스로 떠나보낸 동생

욕 듣고 욱해서 목졸라…다음날 숨진 형 옆에서 눈뜬 후 자수
항소심 재판부 “살해로 보기 어려워” 징역 6년→징역 3년 선고

(대전=뉴스1) 김종서 기자 | 2020-11-30 06:00 송고 | 2020-11-30 08:59 최종수정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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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피해자에 대한 간병으로 지쳐있는 상태에서 피해자로부터 욕설을 듣자 격분해 양손바닥으로 피해자의 안면부를 수차례…"

2020년 10월 16일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던 재판장은 방청석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커지자 잠시 말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피고인의 어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숨죽여 울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재판부가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자 통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들 둘 다 곁을 떠나면 어떻게 사느냐"라며 목 놓아 울던 피고인 어머니의 울음소리는 법정 밖을 나서서도 한참 동안 이어졌다.

부축을 받고 겨우 법정을 나서는 어머니를 울먹이며 바라보던 피고인 A씨(41)는 친형 B씨(43)를 목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날 B씨가 욕을 하지 않았다면, A씨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집에 있었더라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까.

B씨는 2003년 교통사고로 뇌병변장애 1급 판정을 받아 그때부터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평생을 침대에 누워 지낼 수밖에 없게 된 형 B씨를 동생인 A씨와 어머니는 정성으로 돌봐왔다. 세상과 단절돼 절망에 빠진 B씨가 소리를 지르고 기저귀를 던지는 등 갈수록 짜증이 늘어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16년을 간병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쳤다. 그러나 A씨는 형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2019년 9월 24일 오후 8시50분. 만취한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집에 들어서자 느닷없이 욕설을 하는 형을 본 순간 A씨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침대에 누워있던 형에게 다가간 A씨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리고는 욕을 하지 못하도록 위로 올라타 목을 졸랐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동생은 너무 취한 나머지 그 뒤에 일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형 옆에서 잠이 깬 A씨는 평소처럼 B씨에게 물을 떠다주고 담배를 건네다가 형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급하게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고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을 했지만 형은 이미 숨진 뒤였다. 기억을 되짚어 본 A씨는 지난 밤 자신이 형을 때리고 목을 졸랐던 사실을 떠올렸고, 경찰서를 찾아가 자수했다.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1심을 맡은 대전지법 제12형사부는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피해자의 목을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압박한 점을 살해 의사를 추단할 수 있는 강력한 요소로 봤고, 가장 유력한 사망원인이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된다는 점도 살해 고의성을 뒷받침한다고 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잠에서 깬 뒤 다급하게 형을 구하려 했던 모습은 살인의 고의성과는 연관이 없다고 판단했다.

A씨는 형량이 너무 무겁고 살해할 의도가 없었다며 항소했고, 검찰은 항소심에 이르러 공소사실에 상해치사를 예비적 죄명으로 하는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항소심을 맡은 대전고법 제1형사부는 이를 받아들여 A씨에게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에게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는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상해의 고의를 넘어 살해하려 했다고 완벽히 입증되지 않는다"며 "16년 동안 고충을 이겨내며 돌봐온 형을 한순간 살해하려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사인을 경부압박질식사로 단정할 수 없다는 부검감정서와 전문심리위원의 의견 등에서 고의로 목을 졸랐다고 보기 어렵다"며 "모친과 누나가 A씨의 선처를 호소하고 있고, A씨는 사랑했던 형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 속에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guse1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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