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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통 기를 살리는 일"…대한제국 황제 칙서 활용한 서체 나왔다

박재갑 서울대 명예교수·김민 국민대 교수팀 힘모아 '재민체' 개발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2020-10-07 14:29 송고
박재갑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오른쪽)와 김민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 뉴스1 이기림 기자
박재갑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오른쪽)와 김민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 뉴스1 이기림 기자
"국운의 성쇠는 국민의 건강과 질병에 연유함이 많다.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을 살피건대, 위생사상이 아직 유치하고 의료기관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 짐이 태황제폐하의 성스러운 뜻을 이어받아 담당 관리들로 하여금 우방에서 장점을 취해 의술의 보급과 진흥을 도모하고자 대한의원을 창설하기로 하였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은 근대식 국립의료기관 '대한의원'을 설립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 글은 서울대학교 병원의 전신이기도 한 대한의원 개원일인 1908년 10월24일 순종이 내린 칙서에 국한문 혼용으로 담겼다. 국립암센터 초대원장, 국립의료원장 등을 지낸 박재갑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72)는 이 글에, 그리고 글씨체에 담긴 의미를 생각했다.

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박재갑 교수는 "일제는 한일합방이 이뤄진 1910년 이후에는 한글을 말살하려 해 한글서체가 발전하기는 어려웠다"며 "그런데 이 칙서가 쓰인 1908년은 그 이전이고, 게다가 황제의 옆에서 쓴 필체라는 점에서 '한글서체의 피크'라고 생각됐다"고 했다. 이어 "이 서체를 복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며 "대한민국 정통 기를 살리는 일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평생을 의사로 살아온 인물로, 서체나 디자인 등에 대해서 정통하지 않은 것이 현실. 이에 박 교수와 친밀한 관계의 김민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59)가 힘을 보탰다. 여기에 박윤정 국민대 겸임교수, 이규선 연구원이 조력자로 나섰다.

이들은 박 교수가 옮겨 쓴 '개원칙서'에 나오는 33자 한글 자소를 기반으로 총 2350자를 완성했다. 단순히 베낀 것이 아닌,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재민(在民)체'가 탄생한 것이다. 이 서체는 한국저작권위원회 웹사이트 공유마당에 오픈소스 형식으로 기증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박재갑 서울대 명예교수.© 뉴스1 이기림 기자
박재갑 서울대 명예교수.© 뉴스1 이기림 기자
김민 교수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언급한 부분이 인상깊었다"라며 "실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다뤄온 박재갑 교수를 이 서체에 담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윤정 겸임교수는 "칙서는 황제의 말을 옮겨쓰는 것이기 때문에 힘이 실린다"라며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뼈가 있는 외유내강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디자인적인 가치에 대해 설명했다.

박재갑 교수는 이 서체 등을 바탕으로 다시 쓴 '대한의원 개원칙서'와 더불어 지석영이 쓴 의학교 설립 요청서 '학부대신께 올리는 글', 조선 영조 시절 역질과 관련한 '영조 윤음'(임금이 신하나 백성에게 내리는 말), 무오년(1798) 독감에 대해 윤기가 쓴 글 등을 전시할 계획이다.

박 교수의 글과 그림 등이 전시되는 '함께 쓰고, 함께 그리다-개원칙서에서 한글재민으로' 전시는 574돌 한글날을 맞아 8일부터 11월12일까지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에서 열린다.


lg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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