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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박정희-덩샤오핑-리콴유…18년의 평행이론

리콴유 마지막 가는 길..폭우 속 전 국민 애도
1997년 덩샤오핑, 2015년 리콴유..장례식 취재기

(싱가포르=뉴스1) 윤태형 기자 | 2015-03-29 18:57 송고 | 2015-03-29 19:14 최종수정
박정희 전 대통령, 덩샤오핑 전 중국 국가주석,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사진 왼쪽부터) © News1

 
리콴유(李光耀) 초대 싱가포르 총리가 29일 550만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싱가포르국립대 문화센터에서 국가 장례식(국장)을 치르고 북쪽으로 13km 떨어진 만다이 화장장에서 '한 줌의 재'로 돌아갔다.

리 전 총리의 운구는 국장에 앞서 시민들과 함께 시청, 파당공원, 싱가포르 컨퍼런스홀, NTUC 센터 등 15.4km에 달하는 싱가포르 시내 곳곳을 천천히 돌며 그가 사랑했던 조국과 국민들과의 마지막 이별을 나눴다.

이날 갑작스럽게 쏟아진 폭우는 '국부'를 잃은 싱가포르인들의 슬픔을 대변하는 듯 했다. 운구행렬 옆길을 가득 메운 국민들은 운구행렬이 나타나자 투명한 유리관 속에 국기에 쌓인 리 전 총리 시신을 향해 "리콴유, 리콴유, 리콴유"를 목놓아 외치며 꽃을 들고 국기를 흔들었다.

지난 23일 타계한 리 전 총리의 시신은 25일 이스타나 대통령 궁에서 가족 애도기간을 마치고 국민조문을 위해 영 연방 전통에 따라 포차에 실려 의사당으로 옮겨졌다.

석별의 정을 의미하는 올드 랭 사인 백파이프 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시민들은 '싱가포르 국부' 리 전 총리의 운구 행렬에 "땡큐, 파더"를 외치며 경의를 표했다. 흐르는 눈물을 참으려 들썩이는 부녀자들의 어깨가 더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리 전 총리의 '통합의 리더십'을 증명이라도 하듯 의사당에는 550만 인구의 4분의 1이 다녀갔다. 중국인, 말레이인, 인도인 등 다양한 민족의 싱가포르인들이 마지막 길을 떠나는 리 전 총리를 참배했다.

리콴유는 '독재자'라는 논란 속에서도 신생독립국 싱가포르를 31년간 통치하며 1인당 국민소득 아시아 1위, 세계 8위의 선진국 반열에 끌어올린 '아시아의 거인(巨人)'이었다.

국민들은 70년대 동남아시아 공산화 도미노 속에서 '자유시장경제'를 지켜내며 싱가포르를 부국으로 이끈 결단과 통합의 리더십에 마지막 감사를 표했다.

© AFP=뉴스1 2015.03.29/뉴스1 © News1


앞서간 '산업화 리더'인 한국의 박정희, 중국의 덩샤오핑처럼 리콴유의 서거는 이제 싱가포르 국민들에게 '단편(斷片)의 기억'을 남기고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싱가포르 국민들의 삶 속에 살아남아 변용되고 재평가될 것이다.

1세대 산업화 지도자로 '산업화 기적'을 일궈낸 박정희, 덩샤오핑, 리콴유 3명은 공교롭게도 18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을 두고 타계했다. 리콴유는 2015년, 덩샤오핑은 1997년, 박정희는 1979년에 각각 운명을 달리했다.

기자는 지난 1997년 2월19일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이 타계하자 베이징으로 특별취재를 갔다. 서우두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면서 바라본 수도 베이징의 하늘은 난방매연에 도시 전체가 뿌연 잿빛으로 가득했다.

당시 중국 CCTV 등 모든 채널에서는 덩샤오핑 추모 보도, '작은 거인'의 일대기를 담은 특집 드라마, 추모 다큐 등이 연속 방송되고 있었다.

추도식이 열린 26일 천안문 광장은 중국 대륙 각지에서 온 추모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일부 중국인들은 "덩샤오핑 동지, 우리는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팻말을 들고, 추도식이 열리는 인민대회당을 바라보며 덩샤오핑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장례식이 거행된 인민대회당 안에서는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이 "당 이론의 지도아래 기본 노선을 견지하며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사회의 전면적 진보를 추구하겠다"며 덩샤오핑의 유지를 받들겠다고 다짐했고, 덩의 공적을 기리는 부분에선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기자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부분은 '황허송(黃河頌)'이라는 추도 음악으로, 중국 민족의 발원지인 황하강의 포효를 통해 중국인민의 비상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덩의 서거는 '위대한 지도자. 작은 거인'과의 아쉬운 이별이 아닌 주요2개국(G2) 강국의 예언하는 '희망의 음악'으로 기억 속에 각인돼 있다.

기자는 장례식 취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에게 덩샤오핑 서거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기사는 "(덩의 시장경제로) 생활이 많이 편해졌지만, 대신 걱정이 많아졌다"라고 말했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덩의 기억은 곧 사라지고, 팍팍한 서민의 삶만 남게 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의 기적'을 이끈 박 대통령 서거는 기자가 초등학교 시절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정치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충격적 사건에 대한 집단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의 조각으로 '단편(斷片)'화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기자에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당시의 '단편'은 TV와 라디오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던 우울하면서 장중했던 음악이다.

그리그의 페르귄트 조곡 모음곡 1번 중 '오제의 죽음'이라는 음악이었다. 집에 돌아온 '탕자' 아들이 어머니의 죽음을 알고 비탄에 빠지는 내용인데, 당시 우리 국민들의 심금을 강하게 울렸었다.

서거 다음날 학교에 갔더니 담임선생님께서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며 말을 잇지 못하고 반 전체가 함께 눈물을 글썽거렸던 기억도 난다. 다음 날 학교 전체가 검은 색 '근조(謹弔)'리본을 달았다.

이렇게 당시 우리 국민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타계에 큰 충격을 느꼈고, 함께 슬퍼했다. 그리곤 12·12 군사반란, 광주민주화 운동이 발생했다.

다른 기억보다 추도음악에 대한 기억은 오래 남는 것 같다. 박 전 대통령 서거 때에는 어머니 오제를 잃은 ‘충격과 비탄’의 음악이었다면, 덩샤오핑 타계 당시 음악은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중국의 비상을 예고하는 음악이었다.

이제 리콴유 타계 때 잔잔하게 흐르는 '석별의 노래(올드 랭 사인)'는 이미 싱가포르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 놓은 '파파와의 작별'을 고하는 선율로 다가온다.   


birako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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