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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민정기 전 비서관의 전두환 재산 해명

(서울=뉴스1) | 2013-08-06 07:24 송고 | 2013-08-06 07:40 최종수정


<보도 참고 자료>


(*아래의 글은 1980년9월부터 1988년2월까지 전두환 11-12대 대통령의 비서관을 지내고, 그후 1988년6월부터 1997년5월까지 전직 대통령(전두환) 비서관을 지낸 민정기가 최근 검찰의 전두환 전대통령 추징금 환수문제와 관련해서 언론매체들의 거듭되는 인터뷰 요청에 일일이 응할 수 없는 사정을 감안하여 질문받은 사항들에 관한 응답으로서 준비한 내용이다. 이 자료는 그동안 민정기에게 전화등을 통해 취재-방송출연을 요청해온 기자와 프로그램 작가들, 그리고 개별적으로 이 문제에 관해 의견을 표시했던 분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아래의 내용들은 민정기가 알고 있는 사실과, 그러한 사실들에 대한 민정기 개인의 생각을 밝힌 것이며, 이 자료 발표가 전두환 전대통령의 지시나 위임에 의한 것이 아닌만큼 전 전대통령의 입장과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전두환 전대통령 내외와 가족의 근황

-전 전대통령 내외는 힘들어 하는 가운데서도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다. 2년이 넘는 세월 전기도 안들어오는 한사(한사)에서의 유폐, 그리고 2년이 넘는 옥고를 이미 견뎌 냈다. 퇴임후 25년간 줄기차게 가해진 온갖 박해와 비난과 능멸은 전 전대통령에게는 이제 일상이다. 요즘의 상황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지금, 80여 성상의 생애에서 가장 힘든 세월을 통과하고 있지만 심신이 모두 건강하다. 전 전대통령은 고령 탓인지 간간이 기억력-집중력이 감퇴된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리 판단은 분명하고 일상생활도 정상적이다.

전 전대통령의 가족들은 지쳐가고 있는 듯 하다. 전 전대통령의 처남(이창석)은 그동안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것이 열세차례나 된다고 한다. 처남과 자녀들의 사업체는 장부란 장부는 모두 압수되어서 경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검찰이 수사체제로 전환할 것이라는 보도가 연일 나오고 있으니까 거래선들이 등을 돌리고 있고, 돈을 주기로 되어 있는 사람들이 벌써부터 돈을 안주고 있다는 것이다. 재산은 모두 압류되어서 처분할 수도 없다. 돈이 안돌면 사업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

전 전대통령 가족은 세상과 싸울 생각도 힘도 없다. 국가기관이 하는 일에 협조할 일이 있으면 협조해 왔다. 지난달 검찰의 가택수색과 재산 압류 집행에도 순순히 응했다. 검찰은 지금 전 전대통령 가족과 한판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권력을 놓은지 25년도 더 지난 전 전대통령은 검찰이 진검승부(진검승부)를 벌여야 할 상대가 아니다. 연이어 수사팀을 보강해가며 압박의 강도를 높여가는 검찰의 의지는 단지 한 가족과의 싸움에서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고 투지를 발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엄정한 법집행’ ‘사법정의의 구현’이라는 보다 명분이 뚜렷한 목표를 추구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 일에 검찰의 명예와 운명을 걸어야만 하는 것인가.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그 끝장에서 검찰과 국민은 과연 무엇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전 전대통령 가족은, 세상이 생각하는대로 이미 탈진 상태에 있는지도 모른다. 가족들이 얼마간 추렴이라도해서 미납 추징금을 대납함으로써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하지 않느냐는 선의의 권유와 강박을 동시에 받고 있으나, 가족들에게는 대책이 없다. 왜 그런지는 검찰의 조사로 밝혀질 것이다. 아마도 검찰은 이미 그 실상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전 전대통령 가족은 그 누가 혹시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까 서로서로 기색을 살피는 모습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전두환 전대통령 가족은 대통령 취임 이전부터 재산이 많았다.

-전 전대통령은 신혼초부터 8년간 처가살이를 했다. 전 전대통령의 장인(이규동 전 육군 경리감)은, 집안살림은 자신에게 맡겨 놓고 군무에만 전념하라면서 전 전대통령 내외의 재산을 관리하고 증식시켜 주었다. 그 덕분에 전 전대통령은 박봉이지만 봉급을 한푼도 안쓰고 모을 수 있었고 이순자여사는 미용사자격을 따고 편물을 배워 부업을 했다. 전 전대통령 집안의 재산 가운데 가장 큰 덩어리가 된 경기도 오산의 29만여평 땅과 경기도 성남시 하산운동의 땅, 지금 장남이 운영하는 시공사 사옥이 들어선 서초동 땅등은 모두 전 전대통령이 영관급 장교였던 1960~70년대에 장인이 자신의 명의, 전 전대통령 명의, 장남(이창석)명의등으로 취득한 재산이다. 그뒤 증여-상속등의 절차를 거친 것은 1980~90년대지만 취득시기는 그보다 훨씬 전인 것이다. 전 전대통령의 정치자금이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은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지금의 연희동 자택도 전 전대통령이 월남에 파병되었을 때 이순자여사가 직접 지은 집이다. 그곳의 땅들이 1970년대 이후 도시개발등으로 재산가치가 크게 불어났지만 서초동 지역은 취득 당시 경기도 광주군이었고, 1968년에 매입했다가 2007년에 판 오산의 땅도 장인이 산림녹화사업을 위해 잣나무를 심어 전국 독림왕(독림왕)을 수상했던 야산이었다. 처남(이창석)이 사업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처분한 성남시의 땅도 1960년대에 취득해서 1978년에 매각했다. 지금의 사저가 있는 연희동의 대지는 취득하던 1969년에는 논밭이었다. 1983년 공직자 재산등록때 전 전대통령과 이순자여사는 별도로 각각 20억원, 40억원 정도의 재산을 신고했었다. 지금의 자산가치로 따지면 최소 수백억원은 될 것이다. 이 재산은 대통령 취임 이전에 조성된 것이라는 증빙서류등이 첨부되어 있었을 것이다.

현재 사업을 하는 처남-자녀들의 자산운용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전 전대통령은 아는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 관계당국의 조사가 진행중인 만큼 과연 그러한 재산에 전 전대통령의 자금이 은닉돼 있는 것인지 여부는 조만간 판명될 것이다. 장인(이규동)은 전 전대통령이 1988년 퇴임 이후 백담사 유폐, 투옥등으로 시련을 겪고 외손(외손)들도 시달리고 있는 사실에 가슴아파하며 외아들(이창석)에게 단독 증여한 오산 농장을 처분하게 되면 전 전대통령의 자녀(이창석의 조카)들을 도와주도록 간곡히 당부해 놓았다. 장인은 작고(2001년)하기 직전 그때까지 보유하고 있던 금융자산을 이순자여사 등 네 자녀가 고루 상속하도록 유언을 남겼으며, 이순자여사는 현재 그 재산으로 연금보험등에 들어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는 것이다.


▼전두환 전대통령의 자금 관리

-전 전대통령은 군시절이나 대통령 재임때 부하들에게 격려금을 줄 일이 있으면 용처를 분명히 가려서 주었다. 부대나 부하장병들을 위해 쓸 돈과 개인에게 주는 몫을 별봉으로 만들어서 준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도 생전에 군 지휘관인 전 전대통령에게 격려금을 줄 때, 부대나 부하들을 위해 사용할 몫과 집에 가져갈 몫을 따로 챙겨 주었었다. 전 전대통령은 그 일을 본받은 것이기도 했겠지만 매사에 공(공)과 사(사)를 엄격히 가리는 것은 전 전대통령이 평생을 지켜온 생활수칙이다. 공적인 용도를 위해 마련한 정치자금을 자녀들에게 빼돌렸다는 의심은 전 전대통령을 잘 모르고 하는 억측일 뿐인 것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 전대통령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재력가인 장인이 집안의 재산관리를 맡아주었기 때문에 자녀들의 재산을 늘려준다거나 하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검찰의 조사가 진행중인만큼 조만간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자녀들의 사업활동에 종잣돈으로 사용된 자금이 상속-증여등으로 조성되었다면, 그것은 전 전대통령의 장인이나 처남(이창석) 또는 이순자여사의 개인재산에서 나온 것이지, 전 전대통령의 정치자금에서 흘러들어간 것은 아닐 것이다.

전 전대통령이, 자신과 자녀들이 평생을 돈걱정 없이 살기를 바랐다면 아마도 대통령 재임 시절 대재벌들과 사돈을 맺었을 것이다. 실제 당시 그러한 계제들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전 전대통령은 권력과 금력의 결합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3남1녀인 자녀들 스스로도 그러한 혼인을 원치 않았다. 전 전대통령이 정치자금으로 받은 돈을 정치목적에 쓰지 않고 자녀들에게 빼돌려 숨겨 놓기 위해 그 숱한 비난과 모멸을 견뎌내고 있겠는가.


▼추징금 2205억원에 대한 환수 집행 실적과 ‘전재산 29만원’이라는 언론의 왜곡

-비자금 사건 최종판결이 이루어진 1997년 모두 3백12억여원의 금융자산이 추징됐다. 그뒤 2000년 승용차가 압류 추징됐고, 2001년에는 장남(전재국)명의의 콘도가 압류 경매처분됐다. 2003년에는 법원이 검찰의 요청에 따라 재산목록의 명세서 제출을 명령했고, 전 전대통령은 법원에 출두하여 판사로부터 재산목록의 확인을 위한 신문을 받았다. 이때 잔고 29만원의 은행통장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1997년에 추징된 금융자산의 휴면계좌에서 6년간 발생한 이자였다. ‘전재산이 29만원’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압류된 수십점의 유체동산 가운데 현금 재산으로 29만원짜리 통장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피아노 응접세트 카펫 식탁세트 에어콘 TV 냉장고 컴퓨터 시계 도자기 서화등 수십점의 유체동산을 압류 추징했고 집에서 기르던 진돗개 두 마리까지 압류 경매처분됐다. 그런데 일부 언론이 사실을 왜곡해서 ‘전재산이 29만원 뿐’이라고 했다고 보도했고, 그뒤 모든 언론매체와 정치권등에서 사실을 확인해 보지도 않은채 ‘전재산이 29만원’이라며 배짱을 부린다고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뒤에도 2004년 연희동 사저의 별채를 압류 추징했고 같은해에는 이순자여사가 대통령 취임 이전부터 보유한 재산이 증식된 것으로 확인된 119억원을 검찰의 종용에 따라 대납했고 2005~2007년에 걸쳐 차남(전재용)에게서 세금 및 벌금으로 122억여원, 2006년에는 도시개발에 따라 도로로 편입되어 서울시에 기부체납되어 있는 땅까지 숨겨놓은 재산이라며 압류 경매처분했다. 2008년에는 1997년 이후 휴먼계좌에서 발생한 이자 4만여원을, 그리고 2010년에는 소멸시효가 완료되기 전에 얼마라도 납부해 달라는 요청에 따라 강연료 명목으로 받은 3백만원을 납부했다. 이처럼 계속 시효를 연장시켜 가며 환수하고도 아직 1천6백72억여원이 미납인 상태로 남아 있고, 검찰은 이 금액의 재산을 전 전대통령이 가족들의 재산속에 은닉해 놓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진실 여부는 검찰의 조사 결과 밝혀질 것이다.


▼정치자금과 ‘뇌물’

-검찰은 전 전대통령이 받은 정치자금이 대가성(대가성) 있는 뇌물이라고 규정하기 위해 수십명의 기업인이 돈을 건넨 이유를 ①공여취지의 유형 Ⅰ(금융 세제 운용등 기업 경영과 관련된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다른 경쟁기업보다 우대하거나 최소한 불이익이 없도록 선처하여 달라는 취지) ②공여취지의 유형 Ⅱ(정부 또는 정부투자기관 등이 발주하는 각종 국책사업의 사업자 선정, 금융, 세제 운용등 기업경영과 관련된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다른 경쟁기업보다 우대하거나 최소한 불이익이 없도록 선처하여 달라는 취지)라는 모호한 개념을 만들어내서 이른바 ‘포괄적 뇌물’이라고 한 것이다. 서로 경쟁관계일 수 밖에 없는 수십명의 기업인이 모두 ‘잘 봐달라’는 뜻으로 돈을 건넸다면, 전 전대통령은 ‘잘 봐줄’ 생각이 있는 기업인한테서만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잘 봐달라는 취지의 돈을 건네지 않은 기업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줬어야 검찰의 주장이 일말의 설득력이라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전 전대통령은 정치자금을 내지 않은 기업인에게 불이익을 준 일도 없다. 구제금융을 받은 처지이면서도 방만한 자금운영을 하다가 경영권을 박탈당한 국제그룹 사건이 정치자금을 내지 않아 ‘괘씸죄’에 걸린 대표적인 사례라는 주장이 있었지만 내용을 아는 재계에서는 아무도 그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고 국제그룹 총수는 동정조차 받지 못했다. 전 전대통령은 재임중 대기업들을 많이 도와 주었고, 그 대기업들이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10위권의 무역대국으로 성장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담당해 왔다. 중견기업-중소기업들이 가장 사업하기 좋았고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시기가 5공화국 때였다는 사실은 업계에서 더 잘 알고 있다. 대기업들의 횡포를 정부에서 견제해 주었던 것이다. 전 전대통령이 정치자금을 받으며 대가(대가)를 주려고 생각했다면 그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전 전대통령은 정치자금을 수수할 때 대가의 개념은 아예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정치자금을 건네는 자리에서 기업인들이 경제계의 일반적인 어려운 사정을 말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권과 관계된 무슨 일을 어떻게 도와달라고 청탁하는 등의 일은 없었다. 기업인이 대통령에게 돈보따리를 들고 와서 이권 문제를 부탁한다는 것은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 그뒤의 정권에서도 그러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전 전대통령이 재임했던 1980년대에는 정당운영비의 국고보조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았고 정당후원제도도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다. 과거 정권에서는 당의 재정위원회가 정부의 협조를 받아 기업등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모금해 왔으나 정경유착에 따른 비리 발생 소지가 있고 또 과거 물의를 빚은 사례들이 있어 5공화국에서는 정치자금의 창구를 대통령으로 일원화했다. 5공화국 이후에도 여당의 총재는 대통령이 맡고 있었지만 전 전대통령은 민정당 총재로서 당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전 전대통령이 기업인들한테 정치자금을 받은 시기는 1984년과 1987년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것은 1985년 2월의 국회의원 총선거와 1987년12월의 13대 대통령선거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에는 당 운영, 선거등 외에 국정운영과 관련된 통치자금도 필요했다. 군장병과 경찰, 벽-오지에 근무하는 공무원, 불우한 국민에게 줄 격려금도 필요하고,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공직자와 중요한 국가적 연구과제를 맡은 과학-기술인,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지원활동등에 쓰였다. 이러한 일에 필요한 자금이 모두 정부예산에 충분히 반영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인으로부터 받은 정치자금으로 충당했던 것이다.


▼10.26직후 청와대 비서실장실에서 나온 9억5천만원의 성격

-5.18특별법에 의한 수사가 짜맞추기 식으로 무리하게 진행된 또한가지 사례를 들자면 10.26직후 대통령비서실장실 금고에서 나온 돈의 성격과 그 행방에 관한 검찰의 수사결과다. 당시 합동수사본부는 10.26사건 공범 혐의자인 김계원 대통령비서실장의 방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금고를 발견하고 합수부의 우경윤 범죄수사단장등 3명의 입회하에 이 금고를 관리하던 권숙정 비서실장 보좌관으로 하여금 금고를 열도록 하였다. 금고안에서는 9억5천만원 상당의 수표와 현금이 발견되었다. 이 돈은 정부의 공금이 아니고 박정희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사용하던 자금이었다는 권 보좌관의 진술에 따라 합수부는 이 돈에 일절 손을 대지 않고 권 보좌관이 유가족에게 전달하도록 하였고, 권 보좌관은 샘소나이트 서류가방에 넣어 전액을 그대로 박근혜씨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 직후 박근혜씨가 10.26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밝혀달라는 부탁과 함께 합수본부장에게 수사비에 보태 쓰도록 3억5천만원을 가져 왔으며, 그뒤 이 돈의 사용처에 관한 내용은 이미 알려진 그대로다. 1996년 검찰은 합수본부장이 그 돈을 임의로 사용하였고, 박근혜씨도 마치 합수부로부터 깨끗하지 못한 돈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내용으로 발표했다. 그처럼 왜곡된 내용은 1989년 검찰이 이른바 ‘5공비리’ 수사결과를 발표할 때 나온 얘긴데, 권숙정 보좌관이 바로잡아줬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전 전대통령의 도덕성에 상처를 내기 위해 고의로 이를 묵살해 버리고 허위사실을 발표한 것이다. 1996년은 박근혜씨가 아직 정치를 시작하지 않았을 때였다.


▼최근 언론의 보도 행태에 관해

-1998년 ‘환란(환란)의 주범’으로 몰려 구속 기소되었다가 무죄로 풀려난 강경식 전 부총리는 ‘사려깊지 못함과 부화뇌동(부화뇌동)은 우리 언론을 비롯한 지식인 사회에 깊이 숨겨진 DNA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언론과 지식인들의 부박(부박)함을 개탄했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사건‘으로 역시 구속 기소되었다가 2010년 무죄 판결을 받은 바 있는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은 자신이 ’검찰의 공명심과 이 시대 광기(광기)의 희생자‘라고 절규했다고 한다.

AP보도상, UPI보도상을 수상하는등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출신 언론인 가운데 미국 언론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변종화씨는 윤창중 사건등을 보도한 최근 우리나라 언론의 보도행태에 대해 ‘공중변소 낙서 인용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기사 취재 보도의 가장 기본적 철칙인 ‘정확성’과 사실확인이 결여되고 ‘동대문 공중변소에는 이렇게 쓰였고, 서대문 공중변소에는 이렇게 저렇게 쓰였다는 식의 속보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실제 근간 전 전대통령 추징금 환수문제와 관련한 보도 행태를 보면, 대학교수라든가 변호사라는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루머가 있다’ ‘...라는 소문을 들었다’면서 스스로 ‘루머’요 ‘소문’이라고 규정한 내용들을 부끄러움도 모른채 열심히 실어 나르고 있다. 보도기사에서는 ‘....라는 의혹이 있다’ ‘...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추리소설들을 써대고 있다. 비겁하고 천박한 ‘하이에나 저널리즘’ ‘레밍 저널리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몇몇 매체는 전 전대통령 가족들의 부동산 소유 현황을 관련 등기서류등을 보여주며 보도하면서 1960~70년대에 취득한 부동산에 대해서는 그 자료들을 애써 외면한 채 ‘그 땅은 전 전대통령의 숨겨 놓은 재산이라는 것은 이곳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는 이웃 주민의 말을 인용하는 식으로 왜곡 보도하고 있다. 마치 정치자금을 은닉하기 위해 사놓은 것으로 오해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언론보도의 정도에서 일탈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일종의 죄악이다.


▼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한 경호를 철수하고, 국립묘지 안장을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의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데 대해....

-전 전대통령은 훗날 어떤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괘념치 않고 있다. 더욱이 돌아가신 후에 육신의 흔적을 어떻게 남기느냐 하는 것과 같은 문제에서는 초탈해 있다.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5명이 위헌의견을 냈던 1996년의 5.18특별법, 지난 6월 통과된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에 이어 특정인을 겨냥한 처분적 법률의 입법이 줄을 잇고 있다. 헌법주의에 대한 명백한 훼손이다. 법학자와 법조계에서 한마디 개탄의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것은 우리 지식인 사회에 양식이 실종되어 있다는 반증이다. 포퓰리즘과 떼거리 권력, 촛불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려는 것인가. 국회의원을 몇차례 지냈고 지금도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한 변호사의, ‘동학혁명때처럼 죽창을 들고 연희동으로 쳐들어가야 한다’는 광기어린 선동이 방송전파를 타고 있는 현실이다.


▼경위야 어떻든 추징금을 미납한 형편에 그동안 다수의 측근들을 대동하고 골프를 치는데 대해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데.....

-백담사에서 서울로 돌아온 후 5.18특별법으로 구속되기전까지는 1주일에 한번씩 측근 10여명과 함께 부부동반으로 등산을 했다. 1997년말 사면 복권으로 풀려나온 뒤에도 2003년경까지 한동안 산행은 계속됐다. 그러다가 일행 가운데 70세를 넘긴 부인들이 힘들어 하기도 하고 골프초청을 받는 일이 많아지자 그뒤 등산 대신 1주일에 한번 정도 골프장에 나갔다. GNP 2만불 시대에 들어선 지금, 골프는 부유층만의 운동인 것이 아니다. 프로야구장을 찾는 사람들보다 골프 인구가 더 많은 현실이다. 물론 추징금을 안내고 있다거나 ‘전재산이 29만원’이라고 했다는 왜곡된 소문이 족쇄가 되고 있는 상황이니까 근신하고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일 것이다. 2만불 시대에, 그 2만불시대를 만드는데 공헌한 전직 대통령이 초청받아 골프 좀 치는 것이 용납될 수 없는 일인가. 일행을 많이 거느리고 다니는데 무슨 돈으로 그 비용을 감당하느냐는 얘기들이 있으나 초청자측이,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 1~2팀을 함께 초청하는 것이고 그 비용도 당연히 초청자가 부담하는 것이므로 전 전대통령이 돈을 쓰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1~2백명규모의 골프모임에 참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전 전대통령을 위해 마련된 행사가 아니고 그 단체가 원래 자기들끼리 정례적으로 갖는 골프행사에 전 전대통령을 초청을 하는 것이다. ‘호화골프’라고 비난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퍼블릭 코스는 몇 곳 안되고 거의 모두가 회원제 골프장이니까 회원제 골프장을 이용하는 한 어디를 가든 비용은 별로 차이가 없다. 더욱이 우리나라 골프장에서는 관례적으로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린피를 면제하고 세금만 받고 있고 전직 대통령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장차관 등도 특별한 대우를 해 주고 있다. 전 전대통령을 초대해도 초청자는 큰 부담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