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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민간인학살(1)] '괴담·귀신·흉가?'…3500여명 학살 코발트광산

60여년 전 영혼·원한 아직도…미발굴 시신, 광산 어딘가에
행안부 "법령부재와 예산부족, 유골 발굴계획 없어"
유족회 "유골 찾고 좋은 곳으로 안치해 달라"

(경북 경산=뉴스1) 이문현 기자 | 2013-05-06 21:01 송고
편집자주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영혼들이 묻힌 폐광산이 하나 있다. 동네아이들 사이에는 '귀신이 나오는 곳'이라는 기괴한 소문도 퍼져있다. 지역민들은 외부인들에게 광산으로 가는 길조차 가르쳐 주길 꺼린다. 네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경북 경산시 평산동의 코발트광산이 바로 그 곳이다. 60여년 전 3500여명 민간인이 살해됐다고 알려졌지만 지역민 외에 외부인들은 잘 알지 못한다. 당시 진실은 무엇인지, 여전히 맺힌 원한을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등은 남겨진 과제다. 비극적인 역사를 기억하며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 학살사건'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에 널브러져 있는 유골들.(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 제공) © News1



"내 부모, 내 남편의 유골이라도 찾게 해주세요"


"컨테이너 박스에서 썩고 있는 내 친구의 유골을 제발 편한 곳에 안치시켜 주십시오"


60여년 전 한국전쟁 당시 3500여명 민간인이 군인과 경찰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한 경북 경산시 평산동의 코발트광산.


아직도 3000여구 시신들은 여전히 광산 어딘가에 묻혀 있다. 유골 발굴작업 도중 정부의 지원이 끊겨서다.


또 발굴된 유골들도 80여구는 광산 인근 컨테이너 박스, 420여구는 충북대학교 등에 임시로 보관돼 있다.


이로 인해 나머지 3000여구에 대한 유골 수습과 이미 발굴된 유골 안치를 위한 정부의 예산 편성과 법률 제정이 절실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7월부터 9월까지 수천명의 민간인들이 이 코발트광산으로 끌려가 사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대표이사 박의원)에 따르면 당시 학살된 인원은 3500여명에 달한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도 지난 2010년 보고서를 통해 민간인 희생자 수가 1800여명 이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결과 당시 국군 제22헌병대와 경산·청도지역 경찰이 이들을 학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희생자들은 모두 경산·청도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 1000여명, 당시 대구형무소 수감자 2500여명 등으로 알려졌다.


당시 군인과 경찰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국민보도연맹원과 형무소 수감자들이 북한인민군을 도와 후방을 교란할 것으로 판단해 이 곳 코발트광산과 인근 골짜기로 끌고와 학살한 것이다.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킨다는 취지로 결성된 국민보도연맹의 가입대상은 주로 사상적 낙인이 찍힌 사람들이었지만 당시 지역별 할당제가 있어 사상범이 아닌 경우에도 연맹에 가입된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사상범보다는 민간인 가입률이 높았고 이들은 한국전쟁 발발 후 후퇴과정에서 정부의 즉결처분 대상이 됐다.


유족들 증언을 따르면 학살된 보도연맹원들 중 70% 이상은 강압적인 상황에서 일명 '빨치산'에게 옷이나 음식을 제공하는 등 소극적인 활동을 한 혐의로 보도연맹에 가입됐다고 한다.


지난 2005년 유골 발굴에 대한 유족들의 지속적인 요구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이 특별법으로 제정돼 2007년부터 코발트광산에 대한 국가 차원의 유해발굴 작업이 시작됐다.


당시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광산에서 420여구의 유골을 발굴해 충북대학교 유골보관소로 옮겼다.


앞서 유족회 측에서 발굴한 유골 80여구는 아직도 광산 인근 컨테이너 박스 2동에 나눠져 보관돼 있다.


유족회 측은 "하루 빨리 나머지 3000여구에 대한 유골도 발굴해 안치시켜야 할 것"이라며 "해마다 광산을 찾는 유족들이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작은 기념관이라도 하나 세우고 싶다"고 밝혔다.


또 "정부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부 대응은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안전행정부 과거사 관련 업무지원단 관계자는 "진실화해 특별법이 지난 2010년에 종료됐기 때문에 추가로 유골을 발굴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없는 상황"이라며 "추가로 발굴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희생당한 이들을 위한 위령탑 등을 전국적인 단위에서 세우는 것을 계획하고 있지만 예산부족으로 코발트광산 희생자들만을 위한 지원은 현재로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한편 경산 코발트광산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에 소요되는 군사용 코발트 공급을 위해 1930년대에 채광을 시작한 대표적인 식민수탈지로 1942년께 폐광됐다.


이 코발트광산은 폐광 후 방치됐고 산 전체가 개미굴처럼 뚫려있어 당시 학살의 적지로 지목됐다.





mo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