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토지' 9년 걸쳐 완역한 日 번역가 "몇 번이나 눈물 흘려"
700여 명에 달하는 등장인물과 서사 함께해…막판엔 번아웃 오기도
지난 10월 박경리 선생 묘 찾아 완간 보고…통영서 완역 기념회 열려
- 권진영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대하소설 '토지'를 일본어로 옮긴 번역가 시미즈 치사코 씨가 9년간의 작업 중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고 11일, 소회를 밝혔다.
니시니혼신문은 지난 10월 19일, 총 20권의 대작을 완역한 후 저자 경상남도 통영에 있는 박경리 선생의 묘에 다녀온 시미즈 씨와 함께 일한 요시카와 나기 씨를 동행 인터뷰했다.
바다가 내다보이는 언덕에 마련된 박 선생의 묘 앞에서 시미즈 씨는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무사히 완역해서 보고드리러 왔습니다"라고 안부를 전했다. 2016년, 이곳을 방문해 전권 번역을 약속한 지 8년 만의 재회였다.
시미즈 씨는 지난 8월, 생전 박 선생이 집필 활동을 한 원주에 머물며 마지막 토지의 최종권을 번역했다. 번역본 마지막에 "끝"을 적고 나자 "달성감과 함께 쓸쓸함, 공허함이 밀려와 번아웃 같은 상태가 됐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보듬어준 것도 박 선생의 글이었다. 그는 박 선생이 남긴 유고 시집 '산골 창작실의 예술가들'에 실린 시 한 편에 위로받았다고 했다.
요시카와 씨는 토지의 매력에 대해 "인물이 하나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환경에 따라 성격이 변하는 점에 리얼리즘이 있다"고 짚었다. 만주 간도·진주·통영·부산·서울·도쿄 등 다양한 공간을 무대로 하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약 700명에 달한다.
두 번역가는 토지에 나타난 간결하면서도 서정적 원문을 최대한 살리려 노력했다. 꼼꼼히 역주를 달아 빠지는 내용이 없도록 했고, 방언은 표준어로 바꾸어 일본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이번 통영 방문에 맞춰 열린 완역 기념회에는 '라이팅 클럽'의 강영숙 작가,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의 공지영 작가 등이 참석했다.
한편 19세기 말 한반도 남부 하동 마을의 소박한 삶과 나라 안팎을 둘러싼 혼돈을 그린 토지는 1969년 집필이 시작돼 1994년 8월 15일 광복절에 마침표를 찍었다. 일본어판은 지난 10월 15일 완간됐다.
한국 문학의 대모라 불리는 박경리 선생은 지난 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1955년 단편 '계산'으로 등단했다. 토지 외에도 '김약국의 딸들' 등 다작을 남겼으며 2008년, 뇌졸중으로 타계했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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