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병원 기밀 유출한 중국인 '무죄'받은 까닭[사건의재구성]

영업비밀급 동물실험 영상 中 기관·기업 발표용 자료에 사용
재판부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검찰 항소

서울동부지방법원 동부지법 로고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175억.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32년까지 휴머노이드형 수술보조 의료로봇(Physical AI) 개발에 지원하는 사업비 규모다.

해당 프로젝트는 의료인력 부족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그만큼 의료 로봇 기술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런 한편 의료 현장에서는 산업기술 유출에 대한 경각심도 커지고 있다.

검찰은 최근 서울아산병원에서 개발 중이던 의료 로봇 관련 영업비밀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중국인 A 씨(43)와 관련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형사11단독 서보민 판사는 지난 8월 27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과 업무상배임 혐의를 받는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 씨는 국내 대학원에서 정규 과정을 마치고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2017년 4월부터는 박사(F-5-15) 체류 자격으로 한국 영주권을 획득했다.

그는 2015년 말부터 2018년 4월 30일까지 아산병원사회복지재단 아산병원의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그가 근무한 연구소는 건물 11층에 있는 연구실에 각종 로봇 기술과 관련된 설계 및 알고리즘 정보 등을 보관했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연구동 1층 현관에서 출입 신분을 증명한 뒤 사무실마다 설치된 비밀번호 키를 입력해야만 했다. 이동 동선은 폐쇄회로(CC)TV에 기록됐다.

업무용 컴퓨터는 연구소 측에서 따로 제공받았으며 퇴사 시 반납해야 했고, 예외 승인 없이는 법인 내 컴퓨터에 USB 등 외부 저장 장치를 사용할 수 없었다.

이 밖에도 연구 기밀 사항은 퇴직 후에도 누설하거나 공개하지 않기로 서약서를 써야 하는 등 보안에 힘썼다.

검찰에 따르면 A 씨는 2020년 2월 퇴사 직전 연구소 컴퓨터에서 설계도면과 동물실험 데이터, 회의자료 등 총 1만2545개 파일을 개인 외부 저장 장치에 저장했다. 그는 이 장치를 가지고 중국으로 출국했다.

외부로 반출한 자료 중 일부는 중국 정부의 기관 내지 기업에 제출할 목적으로 작성된 PPT 자료에 쓰였다. 발표 자료 수는 17개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검찰은 A 씨가 영업비밀 중 하나인 '심장내과 중재 수술 로봇' 개발 과정에서 진행된 동물실험 동영상을 복사해 발표 자료에 붙여 넣었다고 공소사실에 적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찰 측의 증거들만으로는 A 씨의 범죄가 증명됐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각 자료는 피해 법인 외부에 공공연히 알려지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라 볼 수 있다"면서도 "각 자료가 피해 법인에 의해 비밀로 관리됐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일부 자료는 이미 학회 발표나 논문 게재로 외부에 공개된 상태였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이어 "피고인이 방대한 규모의 각 자료 중 극히 일부 사진을 PPT 자료 작성 등을 위해 사용한 것 외에 제삼자에게 전달하거나 이를 이용해 영리 활동을 했다고 볼 자료가 없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realk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