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호 대장 14좌 완등 도와주라 보냈는데"

고 서성호 대원 2007년부터 김 대장과 히말라야 10좌 등반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고산도전 성공 기대주로 주목받아

안나루프나 1봉 캠프1~캠프2 구간을 등반 중인 서성호 대원. (부산산악연맹 제공) © News1

"김창호 대장과는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다. 그냥 도와주고 올라가지 말라고 보냈는데…."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김창호 등반대의 대원으로 참여했다 하산 과정에서 숨진 고 서성호 대원(34)이 속한 부산산악연맹의 홍보성 회장은 안타까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홍 회장은 21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성호가 히말라야 10개 봉우리를 김창호와 같이 올랐다"며 "1년에 2~3개씩 등정할 정도로 워낙 체력이 좋은데 컨디션이 나빴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서 대원과 열 살 터울의 김창호(44) 대장 역시 앞서 "6000m급이든 8000m급이든 짐이 무겁든 가볍든 성호는 속도가 일정한 친구"라고 평가한 바 있다.

부산산악포럼 2010년 연감에 따르면 1998년 부경대학교에 입학한 서 대원은 학과 동기의 권유로 산악부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산악인생을 시작했다. 하지만 어린시절부터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등반을 하기 쉽지 않았다.

학비와 생계를 위해 학업을 중단할 정도였지만 2004년 봄 첫 해외 원정인 매킨리 등반 기회가 찾아오자 휴학하고 등반에 나섰다. 하지만 다른 한국 팀의 조난 사고로 구조에 참여하면서 정상등정의 시기를 놓쳐 실패했다.

첫 해외원정에서 고배를 마신 서 대원은 이듬해인 2005년 부산의 5개 대학 산악부가 히말라야 푸모리봉(7165m) 합동 원정대에 막내대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당시 원정에서 에베레스트 기슭에 위치한 푸리모 정상에 선배 대원들보다 2시간이나 빨리 올랐지만 하산 길에 같이 등반했던 2명의 대원이 조난을 당하는 사고를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서 대원은 "(동료 대원이)추락하는 순간 깜짝 놀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부산산악포럼 2010년 연감에서 회고하기도 했다.

마나슬루 정상(위)과 다올라기기 정상(아래)에 오른 서성호 대원의 모습. (부산산악연맹 제공) © News1

서 대원은 2006년 봄 부산 산악계의 8000m급 14개 거봉 완등을 목표로 추진된 '다이내믹 부산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고산 등반에 매진하게 된다.

봄 등정에서 서 대원은 북릉~북동릉 루트를 따라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면서 부산을 대표하는 고산등반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6년 가을 졸업을 앞두고 생계를 위해 자동차 생산업체에 입사한 그는 2007년 원정을 포기해야 했다. 2008년 봄에 예정된 부산 산악연맹의 시샤팡마(8027m)-로체(8516m) 원정을 회사 회장이 허락하면서 참가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서 대원은 원정대에 합류한 김창호 대원과 함께 에베레스트 준봉들을 하나씩 올라 연속 등반에 성공하게 된다.

갑작스런 입산 불허로 시샤팡마 남벽 대신 보다 어려운 마칼루 정상을 김창호·박정용 대원과 올랐고 13일 후에는 로체를 무산소로 등정하는 쾌거까지 이뤘다.

그는 마칼루와 로체 정상에서 푸리모 등반에서 조난당했던 2명의 선배 사진이 담긴 수통을 묻고 돌아왔다.

이어 회사에 사표를 내고 본격적인 등반에 나선 서 대원은 2009년 봄 마나슬루(8163m)와 다울라기리1볻(8167m), 안나푸르나(8091m) 3개 거봉 연속 도전에 나서 기상악화로 철수했던 안나푸르나를 제외한 2개 봉우리 등정에 성공하며 히말라야 자이언트 5개 봉우리를 정복했다.

서 대원은 이러한 등반경력을 인정받아 2012년 체육발전유공자 정부포상으로 맹호장을 받기도 했지만 김창호의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돕기 위해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하산해 베이스캠프에서 수면을 취하던 중 20일 숨졌다.

서성호 대원. (부산산악연맹 제공) © News1

pt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