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으로 재판받는 나라' 대한민국, 그 1년의 기록
북한 '우리민족끼리' 글 리트윗한 박정근씨, 1심서 결국 유죄
지난 3월9일, 수원지방법원 410호에서는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가 운영하는 트위터 계정의 글 96건을 인용하고 혁명가요가 담긴 동영상 등 이적 동조물을 게시한 혐의(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등 위반)로 기소된 박정근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재판정에서는 검사가 피고인에 대한 공소요지를 조목조목 읽었고 이에 변호인은 사건에 대한 몇 가지 법률적인 쟁점을 짚었다.
변호인은 "공소장의 내용을 전부 부인한다"며 "검찰은 기소요지에서 피고인이 북한에 대해 노골적인 찬양을 하고 있다고 했으나 동의할 수 없다"며 피고인이 작성한 트윗을 판사에게 제출했다.
출력된 트윗을 읽는 변호인의 엄숙한 목소리가 조용한 재판정에 퍼져나갔다.
"2010년 11월10일 트윗. 장군님, 빼빼로 주세요"
방청객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나의 사랑 너의 사랑 아주 귀여워요, 요덕수용소의 무료숙박권을 드릴께요"
"장군님을 생각하며 주체주체하고 웁니다. 갓난아기들은 옹위옹위하고 웁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에 조의를 표하며 조문 대신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조의의 뜻으로 보내겠습니다"
진지한 법정 여기저기서 폭소가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검사·판사·변호인은 아무도 웃지 않았다.
변호인은 "이런 식의 트윗 580여개가 구속 직전까지 쓰였다"며 "검찰이 북한 계정 트윗을 리트윗(RT)한 것만 보고 북한의 대남주장에 편승해 놀아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이는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문제로 이적의 목적은 부인된다"고 덧붙였다.
이날 공판에 다녀온 트위터리안 @irhiet*****는 트위터에 "다들 '안 웃고 읽은 변호사와 안 웃고 듣는 판사가 대단하다'라는 의견. ㅎㅎ"라는 글을 남겼다.
박씨는 북한 조평통이 운영하는 트위터 계정 '우리민족끼리'의 트윗을 리트윗했다는 혐의로 지난해 9월21일 압수수색을 당했다.
당시 박씨는 트위터를 통해 "난 늘 소수였다. 비정규직 노동자였고 사실상 불안정노동자인 자영업자다. 철거민이었다. 장애인이다"라며 "이 모든 걸 국가보안법 위반, 찬양고무라는 이름이 적힌 딱지로 가려주셨다"라고 주장했다.
이날 압수수색을 통해 경찰은 '북'이라는 글자가 적힌 CD를 모두 가져갔다.
박씨는 트위터에 "그리고 제일 웃긴 건 내 방에 경찰이 와서 유심히 보고 간 게 뭐냐면... '북'촌 방향 플라이어..."라는 글을 남겼다.
압수수색에 이어 구속된 박씨는 보석금 1000만원을 내고 구속 40여일만인 지난 2월20일 보석으로 풀려나 3월9일부터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근처에서 만난 박씨는 시종일관 웃으며 밝은 모습으로 말을 이어가다가도 재판이나 주변인들에 대한 얘기에는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박씨는 "주변인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언론과의 인터뷰는 조심스럽다"며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했다.
그는 "압수수색영장에 '지식인'이라고 쓰여 있었다"며 "책을 쓴 것도 아닌데 지식인이라니까 친구들이 "너 국가 공인 지식인 됐다"며 농담했다"고 말했다.
이어 구치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박씨는 "구치소에 같이 있던 중국인이 '정근아, 여기 민주주의 국가 아니냐. 누가 누구를 어떻게 말하든 무슨 상관이냐'고 물었다"며 "웃기지 않나. 중국은 트위터도 안 되는 나란데 저런 말까지 한다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또 북한과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박씨는 "나는 반공교육을 받은 세대가 아니다. 머리 클 무렵에 남한 대통령이 김정일 만나던 세대다"라며 "TV에서 본대로 선생님이 가르친대로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국가가 '북한은 나라가 아니다', '괴뢰집단이다' 하는 것이 와 닿지 않는다"고도 했다.
단순한 리트윗과 농담 때문에 기소당한 이 사건에 대해 외신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뉴욕타임즈는 지난 2월2일 "북한 정부가 트위터 계정을 통해 쓴 내용을 다시 게재한 혐의"로 "표현의 자유 활동가를 이번 주에 기소했다"고 사건을 소개했다.
뉴욕타임즈는 국제엠네스티 샘 자리피 아시아태평양국장의 말을 인용해 "국가보안 문제가 아니다"라며 "한국 정부가 전혀 풍자를 이해하지 못한 슬픈 사건"이라고 평했다.
또 지난 7월3일 CNN은 "농담을 하고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박씨가 시도한 유머는 한국에서는 7년간 투옥될 수 있다"며 '한국에서는 농담하다가 감옥에 간다'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재판에서는 '표현의 자유'도 쟁점이 됐다.
5차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재판정에서 "일반적으로 술자리, 식사 자리 등 공중으로 사라져 버릴 말을 한 것으로 처벌하지 않는다. 법이 사람의 구두생활까지 통제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법은 언제나 최소한의 사적 공간을 남겨 줬고 트위터는 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 "국보법 제7조 찬양고무죄는 국민 모두를 북한에 가둔 것과 똑같이 대우하는 법"이라며 "'국가 안보에 위해'를 주는 찬양고무만 처벌한다면서 위해가 되지 않는 것을 처벌하니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안보가 튼튼해지려면 국가가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며 "이런 재판과 기소는 그런 신뢰를 떨어뜨리고 국가를 위한 희생, 예컨대 병역 등을 경시하고 군 등을 적대시하게 하며 정부 프로그램에 대한 적대시를 야기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지난 21일, '농담'으로 시작된 이 사건에 대한 첫 번째 결과가 나왔다.
이날 수원지방법원 형사3단독 신진우 판사는 "북한의 지속적인 대남 도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작금의 실정상 피고인의 죄질이 무겁다"며 "피고인이 초범인 점, 다시는 이러한 행위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한 점 등을 감안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다"고 재판봉을 두드렸다.
박씨는 선고 후 뉴스1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제 일상을 유지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항소 준비 기간 동안은 좀 쉬고 싶다"며 "지루한 싸움이지만 견딜만은 한데 재판 결과에는 화가 좀 난다"고 말했다.
박씨의 변호인은 지난 22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abilityk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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